미셸 우엘벡 (지음), 이세욱 (옮김), <<소립자 Les Particules élémentaires>>, 열린 책들, 2003
브뤼노와 미셸은 한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아버지가 서로 다른 형제다. 누구나 그렇듯 이들도 각자의 세계에서 각자의 생을 산다. 먼저 학교 선생님인 브뤼노의 세계를 보자.
“그[브뤼노]는 카프카가 그리고 있는 세계가 어떤 세계인지 금방 알아차렸다. 수치심으로 얼룩진 그 슬로 모션의 세계, 존재와 존재가 별들 사이의 텅 빈 공간만큼이나 막막하고 허허로운 공간에서 마주치기만 할 뿐 그들 사이에 어떤 관계도 맺어질 수 없을 것 같은 세계, 그것은 바로 브뤼노의 정신 세계였다. 이 세계는 느리고 차가웠다. 그래도 따뜻한 것이 있기는 했다. 여자들의 두 다리 사이에 있는 게 바로 그것이었다.”
이쯤 되면 이 인간, 바로 견적 나온다. 한 마디로 그는 섹스를 간절하게, 간절하게 원하는 인간이다. 하지만 현실에서 그는 찬밥 신세다. 하는 짓도 꼭 변태 짓이다. 가령, 그는 자신이 가르치는 여학생의 허벅지를 만지고 그 앞에서 물건을 꺼내 수음을 하기도 한다. 그가 이렇게 된 데에는 물론 사연이 있다. 자식 나놓고 나 몰라라 하며 자신의 인생만을 즐긴 어머니, 기숙사에서 동료학생들에게 당한 폭력 등이 그것이다.
그러다가 브뤼노는 가까스로 한 여자를 만난다. 드디어 차가운 세계를 벗어나 따뜻한 “거기”에 도달하게 된 것이다. 그들은 섹스에 탐닉한다. 그야말로 아주 징허게 한다. 묘사도 징허다. 그러나 행복은 오래가지 않는다. 하반신 마비가 되어버린 여자가 먼저 자살해 버린 탓이다. 한편 그에게는 전처와 살고 있는 아들이 있다. 브뤼노는 아이의 학교 앞에 가서 먼발치에서 아이들 바라본다.
이 부분에 찡한 구절이 하나 있다. ” 저 애는 내가 없어서 고통을 받았을까? 아마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아이는 그런 내색을 한 적이 없었다. 아이들은 어른들이 건설해 놓은 세계를 잘 견뎌 낸다. 아이들은 최선을 다해 그 세계에 적응하려고 애쓴다. 훗날 그들은 대개 그 세계를 답습한다.”
이제 “그는 자기 삶이 끝났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끝나 버린 이유를 이해할 수 없었다. 모든 것이 어둡고 고통스럽고 모호했다.” 그길로 그는 다시 언젠가 머물렀던 정신병원에 찾아간다. “나 다시 왔소.”
반면에 DNA를 연구하는 생물학자인 미셸은 “간명하고 사건이 별로 없는 세계”에 살고 있었다. 다음과 같은 게 그의 관심사다.
“인간의 뇌 내부에서 뉴런과 시냅스 사이에 전자가 교환되는 것은 원자 수준의 아주 미묘한 현상이다. 이 현상은 원칙적으로 말해서 양자 역학에서 말하는 불확정성의 원리의 지배를 받는다. 하지만 대다수의 뉴런은 작은 차이들을 통계적으로 무효화시킴으로써 인간의 행동에 결정론적인 성격을 부여한다. 그래서 인간의 행동은 다른 모든 자연계의 운동과 마찬가지로 일정한 틀을 벗어나지 않게 된다.”
물론 미셸에게도 사랑이 있었다. 그러나 형과는 달리 그에게 “사랑은 작은 위안은 되겠지만, 그것도 희망이 될 수 없기는 마찬가지”다. 성격은 담백하다. 이런 식이다. “미셸은 가타부타 말하지 않았다. 겪어야 할 일이라면 그냥 겪으리라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중간은 냅두고 결론:
“그는 자기 연구에 꼭 필요한 시간만 견뎌”내고 연구를 마치고 실종되었다. 그 “연구”란 “인류는 사라지고 인류 대신 새로운 종이 생겨나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떻게 됐냐구? 새로운 종이 생겼다.
그럼 인류는? 멸종!
끝으로 인상 깊은 구절 하나: “자아란 간헐적으로 찾아오는 신경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