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 모텔

지난 밤부터 12시간 동안 지속된 안개가 정액처럼 끈적끈적하게 온 몸에 엉겨 붙는 아침, 안개 묻은 스타킹을 신은 여자의 뾰족구두가 안개 묻은 보도블록 위에서 또각거릴 때마다 여자의 발뒤꿈치에서 안개가 피자치즈처럼 쭈욱 늘어났다가 힘없이 툭, 툭, 끊긴다 안개는 차츰 금이 가기 시작하고 각자의 기분이 끈적끈적한 아침 안개 모텔의 302호쯤에서 시작된 어떤 균열이 금세 아침 전체로 번진다 안개는 자동차유리처럼 산산조각으로 깨진다 안개 묻은 사람들은 옷섶에 묻은 안개를 털어내며 각자가 기다리던 각자의 버스를 타고 각자의 기억의 습지를 찾아 떠난다 그러나 떠나는 버스 안에도 안개는 끈적거리고 입 안에도 안개는 끈적거리고 인생은 자꾸만 안개 쪽으로 문이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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