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부고속도로 상행선 서초에서 잠원 방향 우측 방음벽 위 표지판에 주거지역, 줄 바꿔서, 소리제한이라고 씌어 있다. 주거지역은 장소를 나타내는 부사어이며, 소리는 목적어이고 제한은 동사라는 생각이 반사적으로 떠오른다. 나는 안 된다.
서울추모공원, 줄 바꿔서, Seoul Memorial Park라고 씌어 있는 표지판을 보고 서울을 왜 추모하지, 서울이 죽었나, 서울이여 명복을 빈다, 라고 생각한 게 불과 몇 킬로미터 후방이었다.
그러니 이 모양이다.
버스가 남산1호터널을 지나 백병원 앞에 도착한다. 거기서 나는 또 중앙차로 버스전용이라고 씌어 있는 표지판을 본다. 보고 만다. 의식 속에서 메타-언어가 구더기처럼 들끓는다. 가끔 그런 날이 있다. 문법이 언어에 선행하는 날.
멈춘다. 멈추지 않으면 길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