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오스터 지음, 황보석 옮김, <<뉴욕 3부작 The New Your Trilogy>>, 열린책들, 2003
어느 날 평소 웬수처럼 친하게 지내던 카피라이터의 집에 놀러갔다. 뭐 하러? 술 마시러! 그날도 우리는 뭐 “인생 뭐 있나?” “노세, 노는 게 남는 거네.” 하며 시시껄렁한 얘기나 나누었다. 무슨 얘기 끝에 이 카피라이터가 나더러 책 한권을 내밀더니 가져가라 했다. 나는 됐다, 그랬다. 안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그 집에 드나들며 그의 책을 한 권 두 권 말하고도 집어가고 말 안하고도 집어가는 걸 알고 있던 터에 나까지 그런 탐욕의 대열에 합류하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었다. (아, 그의 책이 우리 집에 딱 한 권 있기는 있다. 결국 나도 똥 묻은 개까지는 아니지만 겨 묻은 개정도는 되는 셈이다. 그리고 그 집에 빼오고 싶은 책이 아직도 한권 남아있다. The Body라고. 사진책이다. 치토스를 노리는 치타처럼, 언젠간 쌔벼오고 말거야.) 아무튼 그가 그때 날더러 가져가라던 책이 폴 오스터의 <<빵굽는 타자기>>였다. 나는 안 가져왔다. 속으로 참나, 빵 굽는 제빵기는 들어봤어도 빵 굽는 이상한 불량 타자기는 처음 들어봤다, 하면서.
결국 나중에 내 돈 주고 <<빵굽는 타자기>>를 사서 읽었다. 지금 그 책의 내용은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 (이 독후감 다 쓰면 다시 읽어볼 참이다.) 다만 책 표지에 적혀 있던 “젊은 날 닥치는 대로 글쓰기”라는 문구만 기억날 뿐이다. 젊은 날 닥치는 대로 글쓰기라니!
내가 폴 오스터를 더 읽어 보기로 한 건 어느 블로그를 방문한 게 계기가 되었다. 어떻게 해서 그 블로그까지 흘러 들어가게 됐는지 이제 와서 알 길이 없지만, 해서 지금 다시 찾아갈 수도 없지만, 그 블로거가 자랑처럼 찍어서 올린 책꽂이 사진에는 폴 오스터의 책들만 빼곡히 꽂혀있었다. 폴 오스터? 난 별루 재미 못 봤는데 이 정도로 그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니, 내가 그를 지나치게 저평가 하고 있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선택한 책이 이 책이다. <<뉴욕 3부작>>
3부작이니 세 편의 소설이 있다. “유리의 도시” “유령들” “잠겨 있는 방” 제목들부터 뭔가 있을 것 같다. 뭐 소설 제목들이 다 그렇듯이.
먼저 “유리의 도시”:
결론부터 말하자면 유리의 도시를 끝까지 읽게 한 힘은 내가 언제나 흥미 있어 하는 주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언어!
나는 나다. 나는 추리소설 작가다. 내 본명은 대니얼 퀸이다. 내 필명은 윌리엄 윌슨이다. 내 추리소설에 등장하는 탐정의 이름은 맥스 워크다.
어느 날 나는 전화 한통을 받는다.
__여보슈? 댁이 그 유명한 사립탐정 폴 오스터 선생이슈?
__그런 사람 없수다.
며칠 뒤 다시 전화가 온다.
__여보슈? 댁이 그 유명한 폴 오스터 선생이슈?
__(이번에는 장난삼아)그렇소만 무슨 일이슈?
__내 사건을 좀 해결해 주슈!
그 사건이라는 게 황당하다. 전화를 건 사람은 피터 스틸먼인데 그의 아버지가 그를 무려 9년이 세월 동안 가두어서 키웠다는 것. 대체 뭣땀시 그런 짓을? 실험을 위해서! 무슨 실험? 언어적 실험! 얼마나 끔찍했을까? “어린 시절 전체가 어둠 속에서, 세상과 격리된 채, 이따금씩 얻어맞는 것 말고는 어떤 사람과의 접촉도 끊긴 채“ 지냈으니. 그런데 지금까지 갇혀있던 그 아버지가 이제 풀려나 다시 자기를 죽이려 한다는 것. 불안해서 살 수가 없다는 것. 그로부터 자신을 지켜달라는 것.
오우케이. 노우 프라블럼!
이렇게 해서 맥스 워크라는 이름의 사립탐정을 주인공으로 하는 추리소설을 윌리엄 윌슨이라는 필명으로 써서 그럭저럭 머고 살아가는 대리얼 퀸이라는 본명을 가진 나는 창졸간에 폴 오스터라는 이름의 사립탐정이 되었다. 나, 아직은 멀쩡하다. “내 이름은 폴 오스터다. 그것은 내 진짜 이름이 아니다.” 아무튼 바로 작업 들어간다.
미행과 감시!
그런데 여보시오, 농부님네! 이 피터 스틸먼의 아버지가 하는 행동거지를 좀 보소. 하루 종일 뉴욕의 거리를 빈둥거리며 쏘다니는 게 일이다. 땅거지처럼 땅에 떨어진 물건들을 집어 이리저리 살펴보고 가방에 집어넣는다. 뭐지? 대체 저 작자가 뭐하는 시스템이지?
그가 하는 일은 이런 거다. “새로운 언어를 창조”하는 것. 새로운 언어는 만들어서 어따 쓰게? 그 자의 말을 직접 들어보자. “알다시피 이 세상은 산산조각이 나 있소. 그리고 그걸 다시 짜 맞추는 게 내 일이고.” 장하다.
그의 논리는 이렇다. 망가진 우산은 더 이상 우산으로써의 기능을 하지 못한다. 그래도 사람들은 더 이상 제 구실도 못하는 그 물건을 그냥 우산이라고 부른다. 정확한 거 좋아하는 사람도 기껏 망가진 우산이라고 하는 게 전부다. 그런데 이게 “심각한 오류”다. 그리고 이것이 “우리가 안고 있는 모든 문제의 원인”이다. 한때는 우산이었지만 지금은 우산이 아닌 어떤 것으로 바뀌었으니 그에 합당한 이름이 있어야 한다는 거다.
이제 그가 하는 일이 명확히 드러난다. 그는 뉴욕의 거리를 하릴없이 쏘다니는 게 아니었다. 그는 “날마마……조사할 가치가 있어 보이는 물건들을 수집한다.” 해서 그는 “쪼개지고 깨진 것, 움푹 파이고 으스러진 것, 산산조각이 나고 문드러진 것”에 그것에 합당한 새 이름을 짓고 있는 중이다.
‘본연의 기능을 잃어버린 사물에 새로운 이름을 부여하여 세상의 모든 문제를 해결한다.’는 이 발상이 내가 흥미를 느꼈던 부분이다. 흥미 끝!
나머지는 부분들은 대체로 껄렁껄렁 읽었다.
다음은 “유령들”:
사립탐정 블루는 화이트의 의뢰를 받아 블랙을 감시한다. 블랙은 맨 날 방구석에 쳐 박혀서 뭔가를 읽거나 쓴다. 블루는 정기적으로 화이트에게 보고서를 제출한다. 그러면 화이트는 돈을 보내온다.
모는 것이 명확하다. 블루는 블랙을 감시하고 있고, 아무런 의문도 없다. 첫 번째 보고서를 쓰는 그는 “하나하나의 단어가 서술된 일과 정확히 부합하도록 한”다. “그에게는 단어들이 그와 세상 사이에 있는 커다란 창문처럼 투명하고 지금까지는 그의 시야를 흐린 적도, 아니 거기에 있는 것처럼 보인 적도 없다.”
그런데 그게 그렇기만 한 게 아니다. 감시가 계속되면서 블루는 블랙을 감시하는 자신이 오히려 감시를 당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어쩌면 자신이 감시하고 있는 블랙도 자신을 감시하기 위해 고용된 자일지도 모른다.
“잠겨 있는 방”:
이 부분을 가장 흥미롭게 읽었다.
나는 평론이나 써서 그럭저럭 살아가는 그렇고 그런 글쟁이. 어느 날 소피 팬쇼라는 여자에게서 편지가 온다. 그녀는 이제는 연락이 끊긴 어릴 적 친구 팬쇼의 부인이다. 만나잔다. 그러지 뭐. 바쁜 사람 왜 불렀는데? 남편이 사라졌는데 이것저것 끄적여 놓은 게 많거덩. 출판할 수 있는지 검토해 줄텨? 그러지 뭐. 마침 심심한데. 근데 당신 예쁘군? 나도 당신 싫지 않어! 일이 이렇게 된 거다.
책은 잘 팔리고, 팬쇼는 유명해지고, 해서 “모든 작가가 꿈꾸는 동화 같은 일”이 일어난다. 둘이는 동거하며 팬쇼의 원고료 받아 잘 먹고 잘 산다. 팬쇼가 남겨놓은 애도 키우면서. 근데 이게 끝이면 허무하다.
어느 날 팬쇼에게서 편지가 온다. 내가 죽었는지 알았지? 아직 안 죽었다네. 메롱. 나 찾으려 하지 말고, 내 아내와 결혼해서 잘 살아. 한 가지 경고하는 데 날 찾을 생각일랑 하덜덜덜 말아. 날 찾으면 죽여 버리겠어.
허걱!
이렇게 해서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된다. 책의 나머지 부분은 팬쇼의 생을 추적하는 데 할애 된다. 그런데 팬쇼로부터 편지가 한 번 더 온다. 이 부분이 이 뉴욕3부작의 하이라이트! 이 부분을 읽으면 서로 관계가 없었던 세 편의 소설 “유리의 도시” “유령들” “잠겨있는 방”이 하나로 얽힌다.
옮긴이가 후기에 썼듯이 다 읽고나면 독자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읽기 시작해야 할 듯. 형식상은 추리소설이라 하는데 독자가 머리 쓸 일은 없다. 그냥 차분하게 읽어나가면 된다. 소설 중간 중간에 바벨탑, 돈키호테, 브루클린 다리 등에 얽힌 얘기들도 나로서는 인상 깊었다. 휘트먼이 나오니까 반갑더라. <<빵굽는 타자기>>을 읽고 받은 ‘별로네’라는 평가는 취소한다. 그러나 아직은 폴 오스터를 잘 모르겠다. 몇 권 더 읽어 볼만은 하겠다.
폴오스터를 만나게 된 과정이 비슷하군요.
빵굽는타자기->뉴욕3부작.ㅋㅋ
우리나라에서 폴오스터가 상품성이 있다고 생각했는지 최근에는 music for Paul Auster라는 컴필앨범까지 나왔답니다.음악은 대략 재즈와 인디밴드의 음악들… 그럭저럭 들을만해요.
그나저나 휘트먼은 정말 뇌 없이 무덤에 누워있는건가요?
넌꾸님/ 혹 보셨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연전에 국립과학관에서 “인체의 신비전”이라는 걸 했습죠. 독일의 무슨 박사가 인체의 모든 지방성분을 휘발성 아세톤으로 대체시켰다가 그 휘발성 아세톤을 뽑아내며 그 모든 빈 자리에 유동 플라스틱을 강제 주입하는 공정을 거쳐서 만들어 놓은 작품?을 전시하는 거였는데, 독일에서는 찬반 양론이 분분했다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의외로 조용히 넘어가더군요. 거기서 아인슈타인의 뇌의 일부가 전시된 걸 본적이 있습니다. 전뭐 아무런 감흥도 없었습니다. 무뎌서 그런지는 몰라도.
휘트먼의 뇌가 그렇게 되었다는 건 이 책을 통해서 처음 접했는데, 글쎄요. 사실여부는 모르겠습니다. 그 뇌도 대단한 뇌는 대단한 뇌였을 겁니다. 그 속에서 이런 게나왔으니. 저야 뭐 워낙 날라리 꽈에 속하는 학생이어서 저 시가 뭔지는 잘 모르겠구, 훌륭한 선생님 밑에서 저 시를 배운 걸식이님은 혹시 아실지도 모르겠군요.
옛날에 걸식이 책상에서 발견을 하고 빌려서 읽었는데
다시 보고 싶어도 책을 구할 수 없네요.
걸식이네 집에 한 번 놀러가서 훔칠까 생각 중…
흠…혹시 새로 나왔나요?
아우, 영어로 된 걸 링크해놓구.. -_-;;
저번에 http://www.camerarequest.com는 열리지도 않더만.
인체의 신비전에 관한 건 기사랑 사진만 봤는데 좀 흉측했어요.
마분지님/ 뉴욕3부작을 말씀하시는 거라면 서점에서 쉽게 구하실 수 있을 듯합니다.
넌꾸님/ 바로 ‘그게’ 휘트먼의 머리 속에서 나온 거라니깐요. 잘은 모르지만 미 문학사의 문제적 작품입죠.^^
그리고 http://www.camerarequest.com은 저도 지금 해보니 안 열리네요. 망했나?
폴 오스터의 ‘빵 굽는 타자기’는 물론…’뉴욕 3부작’보다 재미 없다…
왜냐? 폴 오스터가 쫄쫄 굶는 무명작가로 지내던 시절을 그린 자전소설이니까…
그 비참했던 시절의 회고가 재미있을 턱이 없다…
그런데…나는 그 당시 ‘빵굽는 타자기’를 읽고 감동 받았던 거다…
훌륭한 작가가 되신 폴 오스터가 그 비참한 시절을 오기로 버티어내는 과정이…
가슴 절절하게 와닿았던 거다…
그러니까, 기필코 내 글 써서 먹고 살리라…다짐하는 인간이라면…
한번쯤 꼭 읽어야 할 책이라고 생각해서…그때 권하였던 거시다…
*어릴 적 하던 야구게임을 장난감박람회에 가서 팔아먹으려고 애쓰는 폴 오스터…
그 대목이 ‘빵 굽는 타자기’의 백미라고…개인적으로 생각하는 바이다….
따위/헐…나 영문도 모르고 영문과 다닌 거 알면서…에이…
선생님이 훌륭하다고 제자들이 모두 훌륭한가? 예수 밑에는 유다도 있다네…쩝…
걸식이님 겸손하시긴. 역쉬 A급 혈액형은 다르십니다그려. 장난감박람회 대목이 백미임을 알아보시다니. 아주 훌륭한 ‘심미적 이성’을 지니셨습니다그려. 따위 같은 B급 혈액형 보균자들은 감히 범접도 못할 이성입니다그려. 아무렴.
아, 글고 ‘심미적 이성’ 이런데 쓰는 거 맞지요? 아닌가?
헐…B형이 아니라 B급이라니…
실상 B형이 세상을 지배하는 A급 혈액형이라오…
혈액형에 대해 이래저래 말이 많은 A형이야 그에 비하면 B급이지요…
험…서점에 있더이다…하드커버로 나왔더군요…비쌉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