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그렇게 꾸역꾸역 계란을 먹으며 상경한 우리 가족은 모래내 천변에 자리를 잡았다. 그 뒤 아버지는 처자식 먹여 살리느라 몇 달씩 집을 비웠고, 엄마는 개울 건너 공장엘 다녔다.
어느 해 여름, 정말 비가 많이 왔다. 누나와 형은 학교에 가고 나만 집에 혼자 있었는데 천장에서 비가 샜다. 무려 세 곳에서. 나는 부엌에서 노란 빠께스 하나와 검붉은 고무다라이 하나와 하얀 스덴 세수대야를 가져다가 방바닥에 주욱 늘어놓고 빗물을 받았다.
그러나 비가 너무 많이 왔다. 빗물은 곧 빠께스와 고무다라이와 세수대야를 흘러넘칠 기세였다. 나는 빠께스, 고무다라이, 세수대야에서 차례대로 물을 한 바가지씩 덜어내어 방문턱을 지나 부엌 문을 열고 밖에 버렸다.
점심시간이 되자 엄마는 허리까지 불은 개울물을 위태위태하게 가로 질러 집에 왔다. 난 그때까지 계속 바가지로 물을 퍼나르고 있었다. 가끔씩 걸레로 방바닥에 튀는 빗물을 닦아내 가면서. 내가 아직 국민학교에 들어가기 전의 일이니 아마도 지금의 나우만했었나 보다.
2.
나는 들국화 노래 ‘사노라면’의 2절이 1절보다 좋았다.
“비가 새는 판자집에 새우잠을 잔대도
고운님 함께라면 즐거웁지 않더냐.
새파랗게 젊다는 게 한 밑천인데
째째하게 굴지말고 가슴을 쫘악펴라.
내일은 해가 뜬다. 내일은 해가 뜬다.”
3.
78Kg.
달리기를 시작한지 4개월 만에 가져보는 몸무게.
감량목표치의 딱 절반을 줄였다.
더구나 이틀전부터 허리띠를 한구멍 안쪽으로 매게 되었다.
오늘도(혹은 밤 열두시가 지났으니까 어제도) 나는 뛰었다.
처음 뛰기 시작할 때 한방울 두방울 떨어지던 비는 다섯바퀴를 돌 때 쯤엔
굵은 빗줄기로 바뀌었다.
나무 밑을 지날 때마다 후두둑 빗소리가 났다.
비를 맞으며 달리는 기분 상쾌도 하다아. 종이 울려서. 장단 맞추니~
마음 같아서는 한 옥타브 위에서 노래라도 부르고 싶었지만
숨이차서 헉헉거리기도 힘들었다.
쫄딱 젖었다.
4.
내가 좋아하는 말 하나;
“젖은 자는 비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일본 속담으로 기억한다.
5.
비가 오면 하고 싶은 거 두 가지;
거리가 내려다 보이는 2층 창가에 앉아 뜨거운 빨간 체리 차 마시기.
고음으로 아주 까마득하게 올라가는 바이올린 듣기.
6.
헐.
비 맞고 한 번 뛰었다고 이거 너무 센치해졌다. 하니,
고마 해라. 많이 묵었다 아니가, 할랬더니 유행지났다 아이가. 고마
자자.
The rain makes all wet. Even my dried soul soaks in under the ra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