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6년 서울아시안게임에서 깡마른 소녀 선수 한명이 800m, 1500m, 3000m 달리기를 석권하며 육상 3관왕이 되었다. 얼핏 보기에도 가냘프고 애처롭게 생긴 그는 집안이 가난하여 라면으로 끼니를 때워가며 연습을 했다고 했다. 감동적인 스토리였다. 그러나 나중에 밝혀진 바에 의하면 가난한 건 사실이었지만 라면만 먹고 뛴 건 아니라고 했다. 예나지금이나 ‘자랑스러운’ 우리의 언론이 만들어낸 일종의 ‘사기’였다. 얼마 전 본 뉴스에 의하면 이제 그는 모수입자동차 회사의 ‘어엿한’ 영업사원이 되었다고 한다.
느닷없이 임춘애 선수 얘기를 꺼내는 건 내가 오늘 라면만 먹고 뛰었기 때문이다. 금방 배가 고팠고, 금방 지쳤고, 결국 두 바퀴를 남기고 포기하고 말았다. 그 길로 약수물 받는 곳으로 가서는 수도 꼭지를 틀어 벌컥벌컥 찬 물을 들이켰다. 그러자 점심시간에 운동장에 나와 수도물을 마신다는 결식아동 생각이 났다. 집에 와서는 배고품을 참지 못하고 아내가 아침용으로 사다 놓은 빵에 기어이 손을 대고 말았다.
누가 팔뚝을 이쑤시게로 찌르면 따가울 것이라는 걸 아는 건 ‘머리’로 아는 거고 실제로 따가운지 찔러보아 느끼는 건 ‘몸’으로 느끼는 것이다. 그러니 굶으면 배고프다는 걸 머리로 아는 것과 굶어서 온몸으로 배가 고픈 건 다르다. 자꾸만 관념에 찌든 내 ‘머리통’을 아작내고 싶은 요즘이다. 아무튼지 평생에 요즘처럼 뛰어본 적이 없고 덕분에 ‘몸으로 생각하는 법’을 배운다.
대학 시절, 어떤 선배가 말씀하셨다…
“백수의 생활 수칙 첫번째! 밥 얻어먹고 절대 뛰지 않는거다…
배 빨리 꺼지니까 조심조심 걸어다니고 왠만하면 대화도 삼가해야…”
라면 먹고 뛰지 마소…밥 든든히 먹고 하니처럼 열심히 달리소….
그게 말입죠. 현재의 몸무게 까지는 달리면 달리는 만큼 효과가 그럭저럭 나타나, 저울 눈금 내려가는 게 고속도로 주행하면 유량계 바늘 떨어지는 것 맹키로 눈에 보이더니, 거의 한 달 동안은 운동은 운동대로 하는 데 몸무게는 그냥있다 이겁니다요. 뭐 지방이 빠지고 근육이 만들어지고 있어서 외형적 몸무게는 변함이 없지만 내면의 ‘성분’은 바뀌고 있다, 좋게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사람 맘이 어디 그렇습니까. 해서 운동만 가지고는 한계가 있고, 식사량 조절도 함께 해야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겁니다. 아무튼 그래도 거울 보면 한창 때보다는 몸이 많이 나아져서 기분은 한결 개운합니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