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하다. 내 추억은 내꺼다. 샘나는 건 알겠지만 행여 달라하지 마라. 어림없다. 경제도 어려운데 추억하나 가지고 뭘 그러느냐 하지마라. 호빵은 줄수 있다. 그러나 추억은 안 된다. 이거 내가 절대 야박한 게 아니다. 사실 추억은, 주고 싶어도 못 준다. 추억이란 그런 거다. 내 추억은 온전하게 나의 것인 것이다. 그러니 모쪼록 남의 피 같은 추억 탐내지 말고, 자신의 추억을 어쩌면 장님처럼 더듬을 일이다.
어려서다.
내 나이 세살 혹은 네살 쯤. 낮잠 한잠 늘어지게 자고 일어나 보니 아무도 없던 날이 있다. 상황파악 하는 데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가족들이 나만 두고 다 어디 가버린 거다. 어디 갔을까? 산을 넘고 물을 건너, 공연한 수사가 아니라 진짜루 산을 넘고 물을 건너서 가야하는 큰 할머니댁에 가버린 거다. 이거 너무들 하는 군. 상황파악을 했으면 이제 상황에 대처를 할 차례다. 가자. 나도 큰 할머니집에 가자. 내 비록 어리지만 두 다리 있고 두 눈 있고 똘똘한 ─ 지금은 아니지만 예전에는 제법 그랬다. ─ 머리 있으니 가자.
갔다. 징검다리를 건너는 데 동네 아줌마가 “얘야 너 어디 가니?” 했다. 예나 지금이나 내 말본새는 이모양이다. “저 갈 길 가지요.” 때마침 비 온 뒤끝이라 개울에는 물이 철철 넘치는데 서너살 먹은 애 혼자 위태위태하게 징검다리를 건너니 이 아줌마가 나를 번쩍 안아 맞은 편에 내려주었다. 내가 고마워 했을 리가 없다. 나 혼자 건널 수 있는 걸 건네 주었다고 승질을 부리며, 사실은 울면서, 정확히 아줌마가 나를 번쩍 들어올린 돌까지 되돌아가서는 거시서 부터 다시 개울을 건넜다. 잘났다. 물을 건넜으니 이제 고개를 넘어야지. 타박타박 타박네야. 너 어디메 울고 가니. 갔다. 계속 갔다.
한편, 울 엄마 막내 재워놓고 옆 집 잠간 갔다 오니, 오메 얘가 어디 갔나 하늘로 솟았나 땅으로 꺼졌나, 허겁지겁 버선 발로, 아닌가, 아무튼 허겁지겁 나를 찾아 나섰다가 아까 그 동네 아줌마를 만났다. “야, 니 아들 저기 가더라. 고 녀석 승질 한번 드럽더라. 이담에 크게 되겠더라.” 이렇게 해서 울 엄마 화적 소탕하는 관군처럼 나를 추쇄하여 오고…… 한편, 울 아부지 큰 집에서 황소 한 마리 빌려 이랴이랴 이눔아 어서 가자 어서가 해지기 전에 밭 갈자 하며 고갯길을 내려 오시다가, 오메 저 놈 저거 울 막내 아닌가 저 놈이 저거 여기는 웬일이지……
이쯤 하자. 추억이란 원래 그런 거다. 빠지면 옆길로 새기 딱 좋은 거. 그렇다면 연애와 추억은 무슨 관계가 있을까? 별거 없다. 그냥 둘의 추억을, 그 좋은 둘만의 추억을 들입다 만들어야지. 둘을 제외한 세상 사람은 아무도 모르는 그런 둘만의 추억을 차곡차곡 쌓아야지. (이게 연인들에게는 정신적으로도 그렇고 물리적으로도 그렇고 둘만이, 오직 둘만이 함께 있을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한 이유의 하나이다.) 그 추억이 나중에 아픈 추억일지 좋은 추억일지는 몰라도. 아시겠지만 때로은 좋은 추억이 더 아픈 법이다.
그러나 둘만의 추억이란 어쩌면 이 세상에 없을지도 모른다. 나만의 추억이 있을 뿐이지. 너와 함께 했던 나만의 추억이라니. 이런 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