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은 무섭다. 내 몸은 밥을 원하고, 여자를 원하고, 잠을 원한다. 이게 전부다. 나는 정신이 아니다. 나는 몸이다. 나는 내 몸이다. 내 몸이 허용하는 만큼만 나는 나다.

Posted in 따위語 사전 and tagged , .

0 Comments

  1. 나는 동물이다. 나는 내 욕망의 전략에 이끌리어 내가 선택하고 사유하는 양 모든 것을 선택하고 사유하는 척한다. 그러나 내 눈에 들어오는, 예를 들어, 이쁜 여자의 젖.궁둥이, 내 코에 들어오는, 최루탄 가스 냄새-오, 이것은 생각하기도 싫다. 벌써 맵다-물비린내, 내 입에 들어오는, 맛있는 과일, 단 것들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내가 아니라, 내 욕망이다. 내 욕망은 그것을 욕망하는 것이 자신이 아니라 나라는 것을 인식시키기 위해, 그 나름의 필승의 전략을 짠다. 나는 백전백패다. 내 욕망은 나에게 억압하지 말라, 해방하라고 권유한다. 권유하는 것은 욕망이고 나는 수락하고 선택한다.
    끔.찍.하.다.

    > 1987.8.31

  2. MBC 창사 특집 다큐멘터리 <출가>를 보였는지 모르겠습니다. 지난 9월 오대산 월정사에서 열린 “단기출가학교”를 촬영한 것이었습니다. 10대 중학생, 20대 여대생, 30대 중반의 카피라이터, 40대 후반의 중년 여인, 60대 후반의 노신사 등 전국 각지에서 온 다양한 사람들이 입학하여 수행을 하는 모습을 나레이션도 없이 담담하게 보여주더군요. 정식으로 삭발도 하고 법명도 주어졌습니다. 50대 중반의 여인은 무슨 사연인지 자꾸만 자꾸만 눈물을 흘렸습니다. 커리큘럼이라 해야 하나 아니면 교과목이라 해야 하나 — 정확한 용어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 수행과정 중에는 3보1배, 삼천배, 용맹정진 등 “몸”으로 때우는 것도 있었습니다. 3보1배를 하는 노신사의 표정은 무척이나 힘들어보였습니다. 이 노신사는 프로그램이 끝날 때 자식들에게 줄 유언장을 완성해서 가더군요. “육신의 무덤을 만들지 말 것이며…”
    아무튼 위의 글은 그 동안 제가 너무 몸을 무시하고 살았다는 나름대로는 쓰라린 자각에서 쓴 것입니다. 그 알량한 영혼이니 넋이니 정신이니 하는 따위 말들에 현혹되어서 말이지요. 사정이 이와 같으니 제 글을 “욕망”의 시각에서 보신다면 저로서는 좀 섭섭하군요.

  3. 역시나 제 짐작이 맞았습니다. 긴가민가 했었는데 지금 책을 꺼내 확인해 보니 김현의 일기였군요. 황지우의 표현에 의하면 “한 시대의 문장가”인 사람도 이런 문장을 썼었군요. 번거롭기가 그지 없습니다.

    아무튼 저는 그의 마지막 일기가 인상적이었습니다.
    “나갈 길이 없다
    일어날 수도 없고, 누워 있을 수도 없다
    결사적으로 소리지른다 겨우 깨난다
    아, 살아 있다”

  4. 최근에 생각했습니다.
    제 욕망이 얼마나 교활하며 또 영악한지.
    욕망은 지가 원하는 모든 것을 ‘그 알량한 영혼이니 넋이니 정신이니 하는 따위의 말들’로 번지르르 포장해서 나를 속여왔습니다.(선생님의 몸을 학대한 것도 선생님의 ‘어떤 욕망’이 획책한 일일 겁니다.)

    몹시도 합리적, 체계적으로 쓰여진 나의 옛글 안에서 번들거리는 욕망의 얼굴을 발견한 순간,
    씁쓸히 미소 지을 수 밖에 없었지요.

  5. 개념정리를 위해
    평소
    각종 용어사전을
    자주 보는 편입니다.

    경제용어 사전,IT용어 사전…
    보고나면 기분이 *심드렁해집니다.

    난 왜 이리 모르는 게 많을까…

    따위어 사전을 보고 나도
    난 왜 이리 모르는 게 많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기분은 무척 좋아집니다.

    다른 사전과 따위어 사전의
    차이입니다.

  6. ‘심드렁해지다’
    라는 말을
    한동안 뇌수의
    한편에 묵혀 두었었는데…

    따위넷에 와서
    끄집어 올리게 됐습니다.

  7. 하하. 사전을 뒤적여야 하는 직업이라니!
    시쿤둥
    무덤덤
    어슬렁
    아 또 뭐가 있으려나.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