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쓴 “해프닝”

에궁 내가 뭘 잘못했는지 어제 밤에 쓴 “해프닝”이라는 제목의 포스트가 흔적도 발자국도 소리도 소문도 없이 훌러덩 증발해버려뿌렸다. 제목이 해프닝이라서 그랬다보다. 어떤 불가사의하면서도 미러클하면서도 아리송한 일이 해픈happen해버렸는지 모르겠다. 오늘 밤에도 바람에 해프닝이 스치운다 에궁.

걸식이님의 열화와 같은 성원에 힘입어 어제의 기억을 오늘에 되살려 다시 썼다.

───── * ───── * ─────

새삼스럽게 말하겠는데, 바다는 넓었다.
바다를 본 감흥 따위는 없었다.
나는 백사장에다가 ‘이나우 바보’라고 적었다가
파도가 와서 그 낙서를 지워버리는 걸 보면서 신나게 놀았다.
(삼순아 어디 있니 돌아와, 라고 쓸 걸 그랬다.)

돌아갈 시간이 되어 텐트를 걷고 있는데
방송 소리가 들렸다.
여섯살 먹은 어린이를 해상안전어쩌구저쩌구 하는 곳에서 보관하고 있으니
칠칠맞은띨띨한 부모는 와서 냉큼 가져가라라는 것이었다.

느낌이 이상했다. 그런데 마침 내 아들녀석이 보이지 않았다.
일행에게 어디갔냐고 물었더니 누나 따라서 샤워 하러 갔다고 했다.
그리고는 싸던 짐들을 계속 쌌다.

나는 뭔가 미심쩍어 뭐 조국통일사업 말고는 딱히 할 일도 없는데 확인이나 해보자는 심산으로 터덜터덜 해상안전어쩌구저쩌구 하는 곳을 찾아나섰다.

여긴가, 아니네.
그럼 여긴가, 여기도 아니네.
그럼 저긴가,
하는데 다시 방송이 흘러 나왔다.
오우 마이 갓트, 내 아들이 맞았다. 뭐 됐다.

두 번째 방송이 나오고 10초 후에 나는 해상안전어쩌구저쩌구본부에 도착했다.
오우 마이 갓트, 내 아들이 거기 있었다.

나는 짐짓 천연덕스럽게 찌기, 거기서 뭐해, 가자, 라고 말했고
녀석이 튀어나왔다. 나는 고맙습니다 건성으로 인사를 하고는
울먹이는 녀석의 손을 꼭 잡고 다시 터덜터덜 걸었다. 룰루랄라.

한편, 두 번째 방송을 들은 일행은
난리가 날
뻔하다가
말았다. 귀 밝은 아빠가 이미 데리러 갔으므로
딴에는 해프닝이었다.

문제는 이렇다.
명색이 아빠라는 작자는 자식을 잃어버린 것도 모르고 있다가 사태를 수습해버렸는데
(이것은 일행도 마찬가지다.)
아들녀석만 부모를 잃어버린 경험을 찐하게 한 것이었다.

두고두고 아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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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Comments

  1. 헐 그 글 잼났는데,
    다시 읽고 댓글 달러 들어왔더니만
    그런 해프닝이 일어나버렸구랴

    아마도 국정원 블로그 감시팀에서
    삭제한 게 아닌가 싶소만
    국정원에서도 따위넷과 같은 불온한 블로그는
    예의 주시하지 않을까 하는

    아무리 봐도 내가 더위를 먹은 게 분명하오
    저런 소리를 하는 거 보니

  2. 헐, 내 다정다감한 목소리가 불법녹음된 테이프가
    검찰청에 압수되어 있을지 귀신 말고 또 누가 알겠는가?

    암튼, “잼났”다는 말에 용기백배하야
    기억을 구차하게 더듬어 다시 쓰기는 했는데
    정확하게 재현이 안 되는구려.
    나도 이제 확실히 총기가 사라져버렸소이다그려.
    오호통재라.

  3. 제 기억에는 ‘칠칠맞은’이 원본이었던 듯 싶습니다.
    ‘조국통일사업’같은 표현이 있었는지 조금 의심스럽고,
    아무튼 거의 100%완벽하게 재현하다니…
    글 쓰는 걸 업(?)으로 삼는 제 경험에 비추어 보면
    저는 절대 불가능한 일을 가능케 하시는 군요…존경합니다, 형님

  4. ‘칠칠맞은’이 원본인 건 본 따위도 생생하게 기억하는 바,
    다만 거보다는 ‘띨띨한’이 더 나은 거 같아서
    개정판을 내는 김에 고친 것이올시다.

    ‘조국통일사업’이 원본에 없었던 것도 원 헌드레드 빠센트 확실한데
    그 부분은 통 기억이 안나서 야메로 갖다 붙인 것이고…

    “글 쓰는 걸 업”은 피곤한 ‘업’이지.
    것보다는 역시 스포츠’업’이 좋아.
    세상에 “글 쓰는 걸 업”보다 못한 업은 딸랑 하나야.
    뭐냐면…
    이거야.

    생방송중성기노출’업’

  5. 칠칠맞은 아비인 게 부끄러워 지우셨나 했더니.. 그런 일이 있었군요.
    어딘가에 구술하여 녹취록을 만들어놓은 것은 아닌가 싶을 정도로
    원본과 거의 200% 완벽합니다.

    근데 미래에셋과는 별 관련 없으시죠?
    미래에셋 광고를 들을 때마다
    ‘미래 애셋?’ 흠칫흠칫 놀랍니다. 미래 애 하나라도 있었으면 좋겠구만.

  6. 아, 맞다. bloglines.com에는 원본이 남아있을 수도 있겠네요.
    혹시 수배하실 수 있으면 좀 올려주세요.
    비교나 좀 해보게 말입니다.

    그리고 아직 모르셨어요?
    제게 미래애셋 현 사장의 사돈의 팔촌의 아우의 형님의 전 여자친구의 전 남자친구였다는 사실을요.^^

  7. bloglines도 일단 한번 클릭하여 읽은 포스트는 더이상 보여주질 않습니다.
    따위넷은 bloglines에 글이 잡히자마자 우선 순위로 클릭질하여 일별하기 때문에 제 bloglines에도 원본이 남아있질 않네요.
    아예 원본과 다른 점을 찾으시오! 라고 했더라면 눈에 불을 켜고 찾았을 터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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