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는 빨대다

언제 기회 있으면 우리집 아이들에게 어린이가 뭐지, 라고 물어보라. 열이면 열 빨대, 라고 대답할 것이다. (암만 그래도 열은 좀 많다.) 어린이를 언필칭(고색창연쿠나) 빨대라고 대답하는 저 얼토당토 않은 은유는 물론 내가 세뇌 및 주입한 것이다. 늘 그렇듯 고상한 의미 따위는 없다. 그냥 어린이는 빨대처럼 모든 지식을 빨아들여야 한다는 아빠된 자의 강요를 아이들 눈높이에 맞추어 고상하게 표현한 것 뿐이다. 묻겠다. 어린이는 뭐지?

내 그럴 줄 알았다. 당신, 분명히 빨대,라고 대답했으리라. 떼끼. 그럴 때를 대비해서 나는 다른 대답을 준비해 두었다. 그게 뭐냐구? 기다려보라.

아무튼 우리집 아이들에게 어린이로서의 자부심과 지식습득에 대한 막대한, 그러니까 내 말은 타는 듯한, 갈망을 심어준 것 까지는 좋았는데 오늘 드디어 일이 터졌다. 늘 그렇듯 별 일 아니다.

밤 열시가 넘어서 ‘우’가 곳간을 뒤져 노란 귤방울이 방울방울 맺혀 있는 비닐봉다리(안다, 나도 봉지라고 해야한다는 거)를 찾아왔다. 맛있는 걸 보면 우리는 이렇게 말한다. 뒷다리 한 개만! 뒷다리 한 개만! 영화 센과 치히로의 해방불명에 나오는 대사다.

귤방울을 보자 침방울이 솓아난 나는 득달같이 달려가 뒷다리 한 개만!을 외쳤다. 얼마나 빨랐느냐 하면 예전에 다방구 놀이할 때 붙잡혀서 거점에 줄줄이 매달려 있는 친구들을 구하기 위해 잽싸게 달려가 ‘야도’를 외치던 그 정도 속도였다. 그리고 ‘우’에게는 두 개만 먹으라 말했다, 잠자리에 들기 전에 많이 먹으면 안좋다 말하면서.

나는 세 개를 꺼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바로 태클이 들어왔다. 아빠만 왜 세 개 먹어?

야, 이눔아. 봐라. 아빠 팔뚝이 더 굵지? 이 굵은 팔뚝을 들어올리려면 에너지가 더 많이 필요해. 그리고 아빠 코 봐. 크지? 이 코를 유지보수할래도 에너지가 더 많이 필요해. 그래서 아빠가 더 많이 먹어야 해. (김현의 <<행복한 책읽기>>에 이런 구절이 있다. “권위주의는 동어반복이다. 나는 권위 있느니까 권위 있다!”)

그러자 ‘우’가 눈물이 그렇그렁한 눈으로 이렇게 말하는 거디었던 거디었다. 나, 바로 귤 하나 더 꺼내 줄 수밖에 없었다. 그 말은 이랬다.

나는 어린이야. 어린이는 쑥쑥 자라야하니까 어른보다 많이 먹어야한단 말이에욧!

어린이, 빨대 맞다. 귤도 잘도 쪽쪽 빨아 먹는다. 그리하여 내 바야흐로 마침내 드디어 입 아프게 다시 묻는다. 어린이는 뭐지?

내 그럴 줄 알았다. 당신, 분명히 빨대,라고 대답했으리라. 떼끼. 그럴 때를 대비해서 나는 다른 대답을 준비해 두었다. 그게 뭐냐구? 글쎄 기다려보라.

선생님은 몇 번이고 ‘물’이라고 썼어요. …… 헬렌은 드디어 알게 되었어요.

어느 화창한 봄날이었어요.
선생님은 헬렌에게 컵을 들려 펌프가 있는 뜰로 나갔습니다.
헬렌의 손에 차가운 물이 쏟아졌어요.
깜짝 놀란 헬렌은 컵을 떨어뜨렸어요.
그 순간, 선생님은 헬렌의 손바닥에 ‘물’이라고 썼어요.
선생님은 몇 번이고 ‘물’이라고 썼어요.
‘네 손에 닿는 것이 무엇인지 알겠니? 물, 물이란다.’
선생님은 *애원하듯 자꾸자꾸 썼어요.
헬렌도 선생님의 손에 ‘물, 물’이라고 서툴게 썼어요.
헬렌은 천천히 손을 뻗어 물을 느껴 보았어요.
헬렌의 보이지 않는 눈이 반짝 빛났습니다.
‘물, 물, 물 … !
아, 이것이 물이구나!
이 차가운 것이 물이다!’
헬렌은 드디어 알게 되었어요.
세상 모든 것에는 제각기 이름이 있다는 것을 말이에요.
“헬렌, 드디어 **깨달았구나!”
헬렌은 손에 닿는 모든 것의 이름을 알고 싶어했어요.
그럴 때마다 선생님의 손등을 톡톡 쳤습니다.
헬렌은 동생이 ‘아기’라는 것을 알았어요.
‘인형’이라는 글자도 알았어요.
자기 이름이 ‘헬렌’이라는 것도 알았어요.

footnote:
*애원하다: 슬픈 소리로 간절히 바라다.
**깨닫다: 생각하던 끝에 알아내다.

─ 김종상(글), 박지숙(그림), <<헬렌 켈러>>, 한교, 1997

덧붙일 말은 나중에…

작황

그는 고집스럽게 고집을 피우며 고집을 부렸다, 는 식의 되도 않는 문장들만, 그것도 어쩌다가, 머리를 떠돈다. 우울하다.

핸드폰은 살아 있다.

예전에 부동산 중개소에서 계약서를 작성하고 난 뒤에 온갖 이사짐 업체로부터 여러 통의 전화를 받은 적이 있다. 그들은 하나같이 싸게해 줄테니 부디 자기네 업체를 이용해 달라고 말했다. 그런 전화가 세 번쯤 걸려오자 나는 부동산 중개소에 전화를 걸어 내 전화번호를 ‘그들’에게 알려준 적이 있느냐고 물었다. 중개소는 그런 적이 없다고 잡아 뗐다. 그러나 사실이 아니었다.

중개소가 잡아 떼고 난 다음에도 나는 여러 통의 전화를 받았다. 약이 바싹 오른 나는 다소 어리숙하던 어느 일진 사나운 업체의 직원을 ‘협박’하여 아무개 담당 실장의 이름과 전화번호를 알아낼 수 있었다. 나는 다시 그 아무개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는 그로부터 그가 담당 구역을 돌며 중개소로에서 잠재 고객들의 전화번호를 수집한다는 사실을 밝혀낼 수 있었다. 그는 내 이름과 이사 날짜까지 정확히 알고 있었고 업소에 약간의 사례를 한다고도 말했다.

나중에 부동산 중개 수수료를 지불하러 부동산 중개소에 들렸을 때 나는 다시 내 전화번호를 알려준 적이 있느냐고 물었다. 그 중개사는 여전히 부인했다. 돌아나오는 내 뒷통수에 느껴지는 그의 시선이 따가왔다. 아마도 유난을 떤다고 욕깨나 했을 것이다. 나는 요즘도 가끔 그 중개소 앞을 지나며 ‘저주’를 퍼붓는다. 망해라. 삼대가 망해라.

뜬금없이 예전 기억을 주절주절 늘어 놓는 이유는 이렇다. 요즘 나는 어쩌다 팔자에 드문 대리운전 한 번 하고 온 죄값으로 이틀이 멀다하고 대리운전 광고 문자 메시지를 받고 있다. 나는 딱 한 군데에 전화를 걸었을 뿐인데 그날 이후 온갖 대리운전 업체에서 문자가 날아오는 것으로 미루어 짐작해 보건대, ‘그들’이 내 전화번호를 공유한 것으로 추정된다. 목요일에 성업이 되는 지 오늘은 5통을 받았다.

그밖에 슬슬 시즌이 다가오는 지라 각종 연말 모임을 알리는 문자 메시지와 ‘은희’라는 이름의 사진을 보러오라는 문자 메시지(연결하시겠습니까?) 등 온갖 잡 문자 메시지가 날아온다. 어느 모임에서는 일주일에 한 번씩, 그리고 행사 일주일 전부터는 거의 하루에 한 두차례씩 문자를 보낸다. 참석하려고 했다가도 그 문자만 보면 마음이 아주 싹 가신다. 됐거든!

핸드폰은 살아 있으나, 그 핸드폰 주인은 죽을 맛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