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겨울 바람 심하게 부는 날 버즘나무 이파리들의 집단기도를 빙자하여 장난스레 표현해 보는 오늘 내 으스스했던 기분

“질식한 후 재로 뒤덮인 희생자들의 몸에 의해 생긴 빈 공간에 석고를 부어넣음으로써 고고학자들은 폼페이 최후의 날의 비극을 강렬하게 재현했다.”(미쉘 피에르, <<열정의 이탈리아>>, 효형출판, 2001)

바람을 가로 막은 죄를
이 흔들림으로 사하여 주옵시고
제게도 작은 “빈 공간”을 허락하시어
누군가 “재현”할 혹은 개무시할 이 존재의 떨림을
제가 앞으로 부재할 공간 속에 영원히 판박아 짱박아 주소서.
날이 추워 오뎅을 다 판
우리 오뎅장수의 이름으로
건성건성 기도하옵나이다.

오후만 있던 일요일

1.
일요일, 온 가족이 빈둥댔는데 드디어는 마음이 또 근질근질 해진 우가 산에 가자고 졸랐다. 날도 쌀쌀한데다 귀찮기도 해서 이 핑계를 대서 결국 우의 마음을 돌렸다. 한 숨 자고 났는데 아직도 마음이 근질근질한 우가 이번에는 공원에라도 가자고 졸랐다. 이번에는 저 핑계를 대서 역시 가지 않았다. 녀석은 결국 다 포기하고 저 혼자 나가서 줄넘기를 하고 들어오더니 얼마 후 그림 반 글 반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어깨 너머로 보니 이렇게 썼다. “밖에 나가서 줄넘기를 했다. 재미 있었다.” 순간 이번에는 내 마음이 마구 간지러워졌다. 산에 다녀왔으면 틀림없이 이렇게 썼으리라. “아빠와 산에 갔었다. 재미 있었다.”

2.
언이가 프라하의 연인을 보다가 TV 모니터에 가까이 가더니 전도연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한 마디 했다. “아빠, 얘 정말 예쁘다.” 나는 살짝 어이가 없었다. 아내에게 말했더니 아내가 기어코 아이를 시험에 들게 했다 . “어니야, 엄마보다 더 이쁘든?” 아이는 엄마 눈치를 살짝 보더니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내는 자식 새끼 키워봐야 소용없다고 말하며 분개하더니 이렇게 덧붙였다. “짜식, 눈은 높아 가지고…”

“그런 물음에 대한 정답은 무엇이었을까?”

웰스가 스티븐에게 찾아와서 말을 걸었다.
“말해 봐, 더덜러스, 너 잠자리에 들기 전에 어머니에게 키스를 하니?”
스티븐이 대답했다.
“키스해.”
웰스가 다른 녀석들을 향해 말했다.
“얘들아, 매일 밤 잠자리에 들기 전에 어머니에게 키스를 한다는 녀석이 여기 있단다.”
다른 녀석들이 게임을 중단하고 돌아서서 웃었다. 스티븐은 그들의 눈총에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키스 안 해.”
웰스가 말했다.
“얘들아, 잠자리에 들기 전에 어머니에게 키스를 하지 않는다는 녀석이 여기 있구나.”
그들은 모두 다시 한 번 웃었다. 스티븐도 그들과 함께 웃으려고 했다. 그 순간 그는 온 몸이 달아오르며 혼란스러워지는 것을 느꼈다. 그런 물음에 대한 정답은 무엇이었을까? 두 가지의 답을 했는데도 웰스는 매번 웃기만 했으니. 웰스는 문법반에 속해 있으니 정답을 알고 있으리라.

─ 제임스 조이스, <<젊은 예술가의 초상>>

정말이지, 저런 물음에 대한 정답은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