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드킬을 다룬 영화, <어느 날 그 길에서>를 봤다. 찬사는 아껴두고 몇 가지 흠을 잡는다. 첫째, 편집을 다시 하면 좋겠다. 내용에 비해 너무 길고 자주 질질 늘어진다. 같은 그림을 되풀이 해서 보여주는 것도 눈에 거슬린다. 이것저것 걷어내고 압축하면 지금보다 단단하게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둘째, 자막이 유치하다. 워딩wording을 다시 했으면 좋겠다. 주제에 이런 말할 처지는 아니다만 감독이 글쓰기 훈련이 덜 되어 있는 것 같다.

아무튼 이러저러한 단점에도 불구하고 좋은 영화다. 인간, 죄 많은 족속이다.

“히로뽕은 필로폰(Philopon), 즉 ‘일을 사랑한다’라는 희랍어에서 유래한 상표명을 붙이고 대일본제약이 1940년부터 시판한 각성제로, 약물로서의 이름은 메스암페타민이다.”

─ 김연수,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p323

봄, 마지막 초읽기

빈문서 1쪽, 1줄, 1칸에서 1초 간격으로 명멸하는 커서―

마지막 30초, 하나, 둘, 셋, 넷,

늦어도 아홉에는 착점을 해야 하는데―

다섯, 여섯,

봄날은 가는데―

일곱, 여덟, 아…

나는 꽃에게도 원한을 품을 수 있는 사람이다.
.
.
.
마지막 30초,

아이에게도 봄날은 간다

셔틀버스 타고 수영장에 간 내 조직원, 돌아올 시간이 물경 30분이 지났는데 아니 온다. 실종신고를 내야 하나. 아니면 몸값을 준비해야 하나. 잠시 망설이다가 수영장에 전화를 건다. 여보세요. 거기 수영장이죠? 우리 아들 왜 안 와요? 그걸 우리가 어찌 아나요? 안 그래요? 아, 그렇구나. 모르시겠구나. 저 그럼 오늘 셔틀버스는 정상 운행중인가요? 네. 아, 그렇구나. 알겠습니다, 용가리치킨!

이게 어딜 갔지? 혹시 가출? 에이, 설마! 아내에게 전화해서 걱정시키고 본가와 처가에 전화해서 일을 크게 벌려야 하나. 고민하다가 수영장에 같이 다니는 친구 집에 전화한다. 우리 아들은 아직 안 왔는데 그집 아들은 왔나요. 뭐라구요. 오늘 수영장 안 갔다구요? 어라. 이거 사태가 심상치 아니하다. 가봐야지. 옛말 틀린 거 하나 없어. 무자식 상팔자야. 에이, 귀찮아 죽겠네.

어린이 보호구역 앞 과속방지턱을 과속으로 넘어 빨간 신호등을 파란 신호등이라고 간주하고 터보 제트 직렬 6기통 엔진 풀가동하여 전력 질주하여 우여곡절 끝에 가까스로 마침내 드디어 수영장에 눈 두 번 깜짝할 사이에 도착한다. 역시 난 카레이서가 되었어야 했어. 그나저나 이게 대체 어딜 간거야? 궁시렁거리면서 셔틀버스 주차장에 간다. 저기 있네, 2호차. 아저씨들, 형님들, 우리 아들 못 봤어요? 버스에 올라가보슈. 저기 있네. 내 조직원! 너 거기서 뭐해?

사연인즉슨 친구가 안 와서 딴 날보다 좀 일찍 나와 버스에 올라타고 출발을 기다리다가 봄볕이 좋아 깜박 잠들었다가 버스가 동네 한 바퀴를 돌아 다시 수영장 주차장에 도착해서야 잠이 깼단다. 내 팔자야! 하긴 사돈 남 말할 처지 아니다. 난 왕년에 술에 취해 지하철 2호선 타고 서울 두 바퀴도 돌았었는데 뭘!

자연얼굴 확인증

자연머리 확인증을 읽고 그럼 나처럼 잘 생긴 사람은 자연얼굴 확인증을 들고 다녀야 하나, 하는 실없는 생각이 들었다. (경고: 자연얼굴 확인증이 아니라 자연코 확인증이겠지, 라는 식의 악플 달면 3일간 절교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