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리 와
독버섯처럼
사랑해 줄게
덤덤
br>
금이야 옥이야 애지중지하는 당신 막내 딸이 속아서 결혼한, 저 천하에 몹쓸, 저 천하에 갈 곳 없고 대책 없고 주변머리 없는 막내 사위 그나마 잠이나 꽃꿈 꾸며 자라고 장모님이 사재를 털어 마련해주신, 하나 밖에 없는, 저 김중배의 다이아몬드 반지 부럽지 않은, 꼭 춘향이 속곳같은 내 꽃솜이불에 저 어서 굴서먹다 들어왔는지 모르는, 저 근본도 없는, 저 고얀, 저 노숙 반려 동물 출신 고양이 덤덤이가 오줌을 찔끔 지려 지 앞으로 소유권 이전 등기를 마치고 나갔다. 잠이 안 온다. 내 방이 여관방같다. 내일은 나도 어디 가서 오줌이나 싸야 겠다. 이 냄새는 나의 것이니 여기는 내 땅이다, 하면서 |
센서
크리스마스에 멀쩡한 집에 불이나 담배를 다시 피워 물었다는 누군가에 비하면, 끊었던 담배를 다시 피우는 이유로는 영 왜소하지만 아무튼 나는 한 10개월 전에 출판다 갔다 오는 길에 한 참을 망설이다 담배 한 값을 샀다.
한 동안은 가족들 몰래 도둑 담배를 피웠는데, 결국 아내한테 들켰다. 아내는 아빠가 담배 피운다고 애 셋에게 소문을 냈고 그래서 지금은 다 안다. 그래도 자식들 앞에서는 피우지 말자 했는데 어찌하다보니 이제 아주 대놓고 피우는 경지에 이르렀다.
아무리 오밤중이라 보는 이 없다지만 주제에 체면에 잠옷 바람에 나갈 수는 없으니 바지 입고 외투 걸치고, 한 겨울에 담배 피러 밖에 나가려면 여간 귀찮은 게 아니다. 담배 피다 발가락에 동상이 걸리는 한이 있더라도 양말만은 차마 신을 수 없어 맨발에 2006년 여름에 롯데마트에서 산 ‘쓰레빠’ 끌고 나간다.
이 때는 가능한 한 계단을 이용하는데 그게 다 몸 생각해서다. 이상하다. 내려갈 때는 계단이 49개였는데 올라올 때는 50개다. 이만한 일에 바쁜 귀신들이 곡을 할 리는 없고 날 밝으면 다시 세어봐야 겠다.
아, 원래 하려던 얘기는 이게 아닌데 그건 날을 좀 세워서 해야 겠다. 제목을 괜히 저렇게 달아 놓은 게 아니다. 물론 언제 날이 설 지─”의존명사는 띄어 씀을 원칙으로 한다”<<한글 바로 쓰기>>(종로서적), p55─는 모른다. 오늘 밤에도 담배 연기가 바람에 스치운다.
아빠, 나 오늘 궁금한 게 있어.
김용규의 지식소설 <<알도와 떠도는 사원>>을 보면 알도가 11살 때부터 백과사전을 처음부터 읽어나가는 대장정을 시작했다는 구절이 나온다. 어린 시절 내게 백과사전이 있었다면 나도 알도처럼 백과사전을 끼고 살며 드넓은 지식의 세계로 빠져들었을까.
“아빠, 나 오늘 궁금한 게 있어.” 누나 형아가 이런 저런 일로 밖으로 나가고 나면 혼자 남은 막내가 내게 와 말한다. 오호, 구래 구래, 내 새끼. 크게 될 놈이로고. 그래 무엇이 궁금하냐? 그러나 녀석은 가령 상대성이론이라든가 은유라든가 혁명이라든가 하는 이런 거창하고 고상하고 근사한 건 정녕 궁금해하는 법이 법다. 고작 시계, 곤충, 공룡 따위나 궁금해 할 뿐이다. 그나마 궁금한 게 있다는 것도 실은 사기고 속셈은 심심한데 저랑 놀자는 것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녀석이 궁금하다는 표제어을 백과사전에서 찾아 녀석에게 디민다. 어찌어찌 하여 언문은 간신히 깨쳤지만 이제 국산 나이로 일곱살 먹는 놈이 읽기는 무얼 읽겠는가. 녀석은 그림이나 몇 개 보다가 금방 시들해 지고 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