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냄새

어제는 큰아들 생일이었고 오늘은 딸아이 생일이고 내일은 작은아들 생일이라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먹었다. 검소하게 샐러드바만 이용했다. 아이들은 애먼 주스하고 아이스크림으로 헛배만 잔뜩 불린 다음, 대기실 컴퓨터 앞에 매달려 있는데, 나는 본전을 뽑겠다며 5차 시기, 6차 시기, 7차 시기에 도전했다. 그런 날 보며 아내가 뿌듯해 했다.

자식 하나 있는 집은 이런 데 와도 부담이 없을 거야. 그래 맞아. 너는 왜 그렇게 주착 맞게 줄줄이 낳았냐? 적당히 좀 하지. 야, 내가 낳았냐? 니가 씨 뿌렸지.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아, 배는 불러 죽겠는데 여기저기서 주방에서 갓 내온, 지글거리는 스테이크 냄새가 풍겨오니까, 군침이 돌면서 그게 또 먹고 싶어 진다. 우우, 저, 스테이크 한 조각만 먹을 수 있다면 메피스토펠레스에게 그까짓 영혼이 아니라 영혼의 할애비라도 팔겠나이다.

우리도 스테이크 하나 시켜 먹을까? 배 안 불러? 부르지. 근데 또 먹고 싶어? 응. 냄새 죽인다.

아, 이래서 그랬구나. 소고기라는 게 이렇게 강력한 욕망의 대상이어서 저들이 그랬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생각이 또 널뛰기 시작하여 지금까지 그 어떤 문명도 설탕을 거부한 적이 없다는, 언젠가 어느 책에서 읽은 구절이 떠올랐다. 설탕이 그토록 강력한 욕망의 대상이기 때문에 아프리카에서 그 수 많은 사람들을 잡아다가 죽어라고 패가며 설탕을 만들게 시킨 거라는 것. 책 제목은 잊었다.

에라, 연어나 한 접시 더 먹자.

집에 돌아와 혹시나 책 제목을 찾을 수 있을까 인터넷을 뒤지다가 “백색 결정의 공포“라는 글을 읽었다. 설탕을 소화시키려면 비타민과 미네랄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오늘밤에도 스테이크 냄새가 바람에 스치운다.

p.s.
인간과 SCV의 공통점은?
살아 있는 동안 죽어라 미네랄을 캐야 한다는 것.

공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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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책? 나쁜 책? 이상한 책?

아버지가 책을 한 무더기 내미신다. 뭐예요? 갖고 싶은 거 골라 가져라. 마포 아저씨한테 얻어 왔다. 그래요? 어디 보자. 나는 책을 살핀다. 무슨 추리 소설, 무슨 연애 소설이다. 그나마 중간은 빼먹고 2, 3, 5권 이렇게 있는 것도 있다. 나는 심드렁하다. 노인네 정성을 생각해서 한두 권 챙기기는 해야겠는데 건질 게 없다.

다시 찬찬히 살핀다. 이상한 책이 하나 있다. <<100% 프랑스인>>이라는 책을 집어든다. 이건 뭔가? 표4에 보니 “50%의 남자는 여자의 신체부위 중 젖가슴을 가장 좋아한다.” “90%의 프랑스 부부는 침대에서 함께 잔다.” “100%의 프랑스 여자는 산이나 들판에서 성행위를 하고 싶어 한다.” 따위의 문장들이 보인다. 훌륭한 책이네. 나는 아버지에게 말한다. 이걸루 할게요. 고맙습니다. 아버지, 나머지 책을 챙겨가신다.

한국갤럽조사연구소에서 1990년에 발간하고 1994년에 보정판으로 펴낸 책이다. 1%부터 100%까지 앞에 예로든 식으로 기술되어 있다. 오늘은 이상한 책 습득 기념으로 1% 부분을 읽었는데, 이 문장이 눈에 들어온다. “1%의 프랑스인은 적어도 10권의 책을 소유하고 있다.” 심심할 때 마다 들쳐볼 생각.

p.s.
어제는 아이들을 고아원에 맡기고 아내와 영화를 보았다. 영화보다 졸려 죽는 줄 알았다. 이 포스트의 제목은 그 영화에서 따왔다. 나오면서 “아무개 개새끼”라고 욕을 했다. 여기서 아무개는 감독 이름이다. 제 아무리 잘 생기고 멋진 놈들이 나와도 이쁜 여자 안 나오는 영화는 볼 게 없다. <브로크백 마운틴>은 예외다.

F=ma

아이들에게 질량과 무게와 가속도와 힘에 대해 설명하다. 속도를 미분하면 가속도라는 말은 차마 하지 못하다.

과학으로 만드는 배

유병용(지음), <<과학으로 만드는 배>>, 지성사, 2005

1.
언젠가 아들 녀석이 쇠는 물보다 무거운데 쇠로 만든 배는 어떻게 물에 뜨느냐는 질문을 해온 적이 있다. 아르키메데스의 원리와 부력을 들먹이며 대충 설명을 해주기는 했으나 말하는 나나 듣는 아이나 잘 모르기는 매일반이었다.

이 책은 도서관에서 우연히 발견한 책인데 ‘쉽게 풀어 쓴 물과 배, 그리고 유체역학 이야기’라는 부제를 보고 냉큼 대출해서 읽었으며, 녀석의 질문에 답해줄 만큼의 지식은 얻었다.

2.
요즘 리처드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 레오나르도 믈로디노프의 <<유클리드의 창: 기하학 이야기>>, 그밖에 여기에 쓰기에는 내키지 않는 공학책들을 몇 권 들여다 보았거나 보고 있는데 이런 류의 책에는 그 좋아하는 인문학 책에서는 맛볼 수 없는 재미가 있다. 내 어린시절의 꿈이 괜히 과학자였던 게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3.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생, 엔지니어로 살았어도 괜찮았을 것이라는 생각은 덤이다.

p.s.
도킨스의 책에 대해서는 따로 독후감 쓸 일은 없으니 말 나온 김에 몇 마디 해둔다. “비행 스파게티 괴물 복음서”같은 구절이나 “수많은 사람들에게 동시에 알아들을 수 있는 신호를 보내고 그 모든 사람들로부터 동시에 메시지를 수신할 수 있는 신은 절대 단순한 존재일 리가 없다. 그 엄청난 대역폭을 생각해보라!” 따위의 문장들만 눈에 들어 올 뿐, 이렇다할 감흥은 없었다. 나 같으면 “비행 스파게티 괴물” 보다는 ‘날으는 스파게티 괴물’이라고 했을 것이다. 백과사전에서 모르몬교 항목을 찾아 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