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비명

오늘도 슬프다 이외의 다른 언어는 떠오르지 않는다. 나는 슬프다, 라고만 쓴다. 내일 일기도 미리 써둔다. 슬프다. 앞의 문장은 마음에 든다. 없고 없을 내 무덤의 묘비명으로 써야겠다

bless you

추석이다. 처가에서 저녁 먹는다. 식탁에서 아들이 기침을 한다. 처형이 블레스 유, 한다. 아내도 블레스 유, 한다. 나는 블레스 유, 하지 않고 이런 말을 떠올린다. 엄니, 나 불렀시유? 그러나 발설하지는 않는다. 저녁 다 먹고 화장실 간다. 화장실에서는 이런 말이 떠오른다. 저 집에 불났시유? 명절적으로 명절이 간다. 아내 처녀적에 쓰던 방 책꽂이에서 낡을 대로 낡은 삼중당 문고 한 권을 슬쩍한다.

이 글은 끝나지 않는 문장으로 가득하다. 나는 끝나지 않는 문장이 가득한 글을 쓴다. 텅 빈 문장이 가득한 이 글은 끝나지 않는다. 이 글은 텅 빈 문장으로 가득한 끝나지 않는 글이다. 이 글은 쓰여진 적이 없는 내 글에 관한 글이다. 나는 쓰지 못하고 죽을 것이다.

토자식키격문

가소롭도다. 니가 아직 일개 휴먼으로서의 형상도 갖추지 못한 고작 한 알의 미미한 수정란이었을 때조차, 이 아버님은 이미 사서삼경을 마스터 하시고, 기소불욕물시어인을 실천하시매 그 인품의 고매하심과 그 지성의 번뜩이심이 세계만방은 물론이거니와, 저 아득한 우주의 사건의 지평선 너머에까지 익히 능히 알려진 분이거늘, 니가 이제 고작 그까짓 육신의 키가 이 아버님보다 고작 겨우 애걔 몇 밀리미터 높아졌다 하여, 아버님 소자 오늘 부로 아버님 키의 저보다 쪼매남을 삼가 업수이여기겠나이다, 하는 낯빛을 지으며 씩 웃다니, 내 도무지 분하고 도무지 원통하고 도무지 치가 떨려, 결코 가볍지 않은 네 죄를 묻자면 22세기까지 네 놈의 후회가 이어지도록 아주 가늘고 질기고 긴, 긴 벌을 내려야 마땅할 것이로되, 다만 너와 나 어쩌다 부모자식으로 만난 연을 특별히 이번 딱 한 번만 감안하여, 앞으로 석 달하고 열흘을 굶는, 도무지 벌 같지도 않은, 그냥 애들 소꿉장난 같은, 경미한 벌을 눈물을 머금고 내리는 것이니, 너는 오로지 반성하고 참회하고 회개하여 다시는 그런 어처구니 없는 언행을 하지 않도록 수신제가치국평주둥아리 해야 할 것이다. 알겠느냐, 이 20세기에는 존재치도 아니하였던 여드름 덕지덕지 중3 막내놈아.

착한 일 V

병원 간다. 내 피부는 백옥 같은데 저 자식 피부는 누굴 닮아 저 모양인지 모르겠다. 지 엄마 닮았나 보다. 피부과에 사람이 많다. 아주 줄을 섰다. 접수하면 한 시간 기다려야 한다. 못한다. 못 기다린다. 귀찮은데 잘 되었다. 그냥 가자. 무좀이 뭐 죽을 병도 아니고.

피부과를 돌아나왔는데 아 글쎄 이 녀석이 이번에는 바로 옆 소아청소년과로 쏙 들어간다. 목도 아프단다. 뭐 그러시다면야. 이 병원은 좋다. 환자가 한 명도 없다. 아픈 어린이도 없고 아픈 청소년도 없는 평화로운 토요일이다. 나는 마음이 아주 환하다. 아들 녀석이 바로 진료실로 들어간다. 나는 소파에 앉아 기다릴 참이다. 

안에서 의사 선생님이 편도선이 어쩌구 염증이 저쩌구 하는 소리가 들린다. 들어가 봐야겠다. 아임 유어 파더. 선생님이 아이에게 피부과 왔었느냐고 물으신다. 내가 끼어들어 설명한다. 선생님이 허면 무좀약도 주시겠다 한다. 아주 좋다. 착하게 살아야 한다. 원 하스피탈 투 프리스크립션즈, 원 스톤 투 버드즈.

나는 의사 선생님과 간호사 선생님을 웃겨드린다. 먹는 무좀약이 간에 무리를 줄 수 있다 하길래, 우리 아들 간 되게 안 좋다고 말해 웃겨드리고, 무좀균이 옮는다길래 아들 녀석에게 나가살라고 말해 웃겨드린다. 뭐 아주 재밌지는 않지만 중간은 가는 유머다. 위트면 좋겠지만, 위트 사라진지 오래다.

의사선생님이가 웃으시다가 아이에게 말씀하신다. “아빠 재밌으시다. 하하.” 아이는 웃지도 않고 지 아빠가 창피하다는 듯 무심하게 대꾸한다. “매일 보면 질려요.” 하긴 나도 내가 질리는데 넌들 아니 질리겠느냐. 오늘 착한 일은 좀 실패다, 마침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