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낮에 너무 많은 커피믹스를 내 몸과 믹스했나 보다. 잠이 안 온다. 잠도 안 오는데 명상이나 해보자. 요즘 나는 ‘100%의 나’가 아닌 것 같다. ‘나 아닌 뭔가’가 ‘나’와 잔뜩 믹스되어 있는 거 같다. 커피믹스에는 커피 말구 프림도 들어있구 설탕도 들어 있는데 그냥 커피믹스라고 부르니 ‘나 아닌 뭔가가 잔뜩 들어 있는 나’를 그냥 ‘나’로 불러도 시비걸 놈은 없겠지. 어느 날 설탕 조절이 마음대로 된다는 커피 믹스가 나와 설탕 조절이 마음대로 안 되는 커피 믹스가 졸지에 찬밥 신세가 되어 버렸다. 나도 이처럼 어느 날 신세 조지기 전에 하루 빨리 ‘뭔가를 내 맘대로 조절하는 나’를 만들어야 겠다. 명상은 끝났다. 그러나 오늘 밤의 명상도 결국 실패다. 순수한 명상에다가 불순한 결심을 믹스했기 때문인다. 나는 어쩔 수 없이 뭔가가 잔뜩 믹스된 인간인가 보다. 에라, 잠이나 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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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쑤시개론
직원 몇 명이 일과 후 소회의실에 모여 ‘네이티브 스피커’에게 영어를 배우던 때가 있었다. 물론 강사초빙료는 회사가 댔다. 우리는 그저 영어만 배우면 됐다. Do I make myself clear? 아무려나 어느 날 어버버버한 수업시간이 끝나고 우리는 회식을 하러갔다. 회식자리에서 무슨 얘기 끝에 나는 장난삼아 이쑤시개를 뽑아 네이티브 스피커를 찌르려고 했다. 그는 기겁을 했다.
그날 내가 그 띨빡 네이티브 스피커에게 하려던 얘기는 이렇다. 어떤 이에게 이쑤시개에 찔리면 따갑다고 말해주는 것과 그에게 이쑤시개에 찔린 따가움을 몸소 느끼게 해주는 것은 다르다는 것. 그리고 이건 평소 내 지론이기도 하다. 입 닥치고 이쑤시개로 찌르는 것. 그러므로 당신이 만약 술자리에서 내 반경 1m 안에 앉게 된다면 당신은 날 경계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내가 언제 미친 척하고 당신을 이쑤시개로 잽싸게 찌를지 모르는 일이니.
물론 내 카메라는 그 흔한 이쑤시개보다 못하다. 그러니 바르트가 말한 푼크툼punctum은 나에겐 기약없는 일일 터. 아무려나 내 사랑하는 이여, 오늘 아침에 내가 찔린 안개로 당신을 푹 찌를 수만 있다면. 오, 신이시여.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이 불쌍한 따위에게 이쑤시개 열통만 선물하소서. 아무튼 이 글의 결론: 이쑤시개에 찔리면 따갑다.
p.s.
어떤 비싸게 굴던 사이트 회원가입기념으루다가 함 써봤다.
육탈
─ fm2 50mm 1:1.4f, ILFORD DELTA 400
알아요 당신
나, 이미 시들었어요
아주 바싹 말랐지요
이제 곧 바스라져
가루가 되겠죠
하지만 괜찮아요
나, 한 때는 푸르른 초록으로 터져올랐으니
그리고 내 아슬아슬하던 뇌관을 건드려준 건
당신이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