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 가

─ 이 영 광

나는 아니야, 하지만
너도 아니니까 잘 가
우리 다시는 마음 열지 말자

을지로에서 한 잔 종로에서 두 잔
마시고 욕하고 외면한 다음
여기 안암로터리
돌아서 걸어가는 친구의 뒷모습이
그도 결국 혼자였음을 알려준다

넌 이제 아무도 없는 곳으로 걸어 들어가
문을 잠그겠지
홀몸이므로
얼마나 오래 불타야 할까

이봐, 홀몸이란
자기 속으로 숨어버리는 몸 아닌가
숨을 곳을 찾는 몸 아닌가

이봐, 몸을 떠난 내 목소리 안 들려?
몸이 떠나버린 혼잣말 안 들려?

나 또한 아무도 없는 곳으로
돌아서면서
나의 집, 그 텅 빈 응급실에
병 걸린 사람처럼 눕기 위해
돌아가면서

─창비시선 226 <<직선 위에서 떨다>>

낯 선 시간 속으로

졸다가 화들짝 눈을 뜨니 낯 선 거리 낯 선 가로등 낯 선 표지판 낯 선 이정표 낯 선 시간 낯 선 밤 낯 선 어둠 낯 선 위도 낯 선 경도 낯 선 지도 낯 선 주파수 낯 선 URL……

이 밤을 건너도 내 쉴곳 은 아니오. 그러니 나는 또 낯 선 꿈에 들어야지. 낯 선 나여. 아침에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