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자에 보기 드물게 머리를 단정하게 자르고 왔더니만, 여식이 하는 말인즉슨, 머리가 길었을 때는 그냥 아빠 같았는데, 자르니까 아빠 같지는 않고, 독자 제위께는 좀 미안하지만, 그냥 잘생긴 남자 같단다.
머리를 자르면서 ‘원장님’과 떠는 수다, 재밌다. 그렇다. 꼰대가 되는 것보다는 어쩌면 아줌마가 되는 것이 나을지도 모른다.
근자에 보기 드물게 머리를 단정하게 자르고 왔더니만, 여식이 하는 말인즉슨, 머리가 길었을 때는 그냥 아빠 같았는데, 자르니까 아빠 같지는 않고, 독자 제위께는 좀 미안하지만, 그냥 잘생긴 남자 같단다.
머리를 자르면서 ‘원장님’과 떠는 수다, 재밌다. 그렇다. 꼰대가 되는 것보다는 어쩌면 아줌마가 되는 것이 나을지도 모른다.
오밤중에 금강석처럼 딱딱한, 마른 오징어 궈먹고 악어새표 치실로 입안을 청소하며 야간순찰 차 안방에 행차했더니 이제 막 잠자리에 든 막내가 한마디 한다. 아빠, 그걸로 자꾸 그거 하면 이 사이가 벌어진대. 내가 대꾸한다. 아빠 이는 이미 벌어질대로 벌어져서 그 사이로 공룡도 뛰어다녀. 이 대목에, 피식, 악성코드에 지칠대로 지쳐 하달받은 명령을 지지부진하게 실행하고 있는 컴퓨터를 상대로 인격수양을 하고 있던 아내가, 웃는다. 성공이다. 하여, 아들아, 너도 이 다음에 결혼하거든 이 아빠처럼 수시로 아내를 웃겨주는 훌륭한 남편이 되거라, 알겠느냐, 하려는데 이번에는 큰놈이 끼어든다. 그러면 세균하고 공룡하고 사이 좋게 막… (더 쓰기 귀찮다. 급제동)
1.
편의점 가는 길, 고양이 한 마리가 아스팔트에 고인, 살얼음이 언 물을 핥아 먹으며 갈증을 해소하고 있다. 혹시는 허기를 달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고양이는 내게 경계의 눈빛을 보내며 여차하면 달아날 준비를 한다. 새삼스럽지만 세상은 위험한 곳이다. 내가 고양이에게 해줄 수 있는 배려는 못본척 녀석을 멀리 우회하는 것 뿐이다.
2.
교회 앞 도로, 새끼 고양이가 이제는 눈이라 부를 수도 없는 잔설 무더기 위에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냉동돼 있다. 객사한 고양이의 살짝 벌어진 입안에 드러난 이빨이 날카롭다. 그런데 객사라고? 야생 고양이는 객사할 운명이 아니던가.
3.
얼마 전에는 아내가 국물 내고 건져둔 멸치를 슬며시 가져다가 고양이가 자주 지나다니는 길목에 놓아두었다. 나중에 확인해보니 흔적이 없다. 다저녁에는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아 거실 테이블에 며칠째 방치돼 있던, 구운, 마른, 딱딱한 오징어를 고양이 길목에 놓아두었다.
4.
누군가에게 전화가 온다. 고라니가 비닐하우스에 들어와 상추를 다 먹어대니 잡아달라는 전화다. 연전에 유튜브에서 본 덫을 설치하는 영상이 순간 머리를 스쳐간다. 방법을 알아보겠노라 대답하고 전화를 끊는다.
많은 일들이 오래 전 기억이었다. 작년이나 재작년 일은 존재하지도 않았다. 고독 자유 불면 사랑 문학 철학 혁명, 젊은 시절 그는 이런 뜨거운 말들을 부끄러움도 모르고 연애편지에 적었으나 말년에 그가 그 뜻을 온전히 아는 언어는 녹내장처럼 슬픈 말들 뿐이었다. 돌이켜보면 그는 어디서든 삐뚜로 서 있는 것이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그러므로 그는 살아 있는 묘비였다. 불길 속에서 타들어 가던 그의 관속에는 몇 개의 허망한 어휘들만 들어 있을 뿐, 가파른 문장 하나 들어 있지 않았다. 그 허망한 어휘들의 목록은 다음과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