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은유

글쎄다. 잘 하는 짓인지 모르겠다.
잠자리에 누운 아이들 곁에 가 누우면 아이들이 이런다.
“아빠, 또 오늘의 은유 하려고 그러죠? 주제가 뭐예요?”

나는 책이니, 아침이니, 엄마 젖가슴이니 하는 주제들을 불러준다.
아이들은 알고 하는 건지 모르고 하는 건지 한 마디씩 떠든다.
나는 합격, 불합격으로 아이들의 오늘의 은유를 평가한다.

아이들의 수준은 이렇다.
“엄마 젖가슴은 찐빵이다.”
“책은 우주다.”
“백운대는 바늘이다.”

아이들을 재워 놓고 서울대 출판부에서 나온 <<은유>>를 꺼내 읽는다.
마음에 드는 구절이 있어 옮겨 적는다.

“중세기의 기독교 사회에 있어 기본적인 은유는 세상은 神이 著述한 책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다른 어떤 책과 마찬가지로 이 책도 표면적으로 ‘말한 것’보다는 더 많은 것을 ‘뜻’할 수 있었고 또 했던 것이다.”

글쎄다. 옛날 말로 호적대장에 잉크도 안 마른 놈들을 상대로 오늘의 은유라니.
이게 뭐하는 짓인지 모르겠다.
혹자는 아이들 참 엽기적으로 키운다 할 지도 모르겠다.
애비가 엽기적이니 할 수 없다.

같은 책의 앞머리에 이런 구절이 있다.
“比喩言語(figurative language)란 그 언어가 서술하는 바를 의미하지 않는 언어이다.”

나는 무엇을 의미하고 싶었던 것일까.
오늘 밤에도 의미가 바람에 스치운다.

사진과 금기

엽이가 언이의 사진을 오렸다고 우가 와서 일렀다. 과연 그랬다. 나는 사진은 오리는 거 아니라고 말해 주었다. 언이는 자기가 오리라고 그랬다고, 그러니 괜찮다고 말했다. 나는 어/쨌/든/ 사진은 오리는 거 아니라고, 다시는 오리지 말라고 말했다. 나는 왜 사진은 오리면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었을까?

엽이가 오려놓은 언이의 사진을 본 아내가 누가 그랬느냐고 물었다. 자초지종을 말해 주었다. 부부간의 대화를 들었는지 컴퓨터를 하고 있던 언이가 쪼르르 달려나와 자기가 오리라고 그랬다고, 그러니 괜찮다고 말했다. 그러더니 자기도 사진을 오려도 되냐고 물었다. 나는 안 된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나는 왜 사진은 오리면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었을까?

언이는 방문을 닫고 들어 갔다. 나는 녀석이 삐졌나보다고 단순하게 생각했다. 얼마 후, 언이가 손을 등뒤로 감춘 채 나왔다. 손에는 사진에서 오려낸 제 모습이 들려 있었다. 녀석의 얼굴에는 득의가 양양했다. 나는 두 번 다시 오리면 안 된다고, 한 번만 더 오리면 아주 혼내 주겠다고 말했다. 나는 왜 사진은 오리면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었을까?

나?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사진에, 따라서 그 기억에, 따라서 내 정체성에 길길이 방화한 적은 있어도 사진을 오린 적은 없다. 그래서 그게 뭐 어쨌다는 건가?

금기가 없는 아이들이 무섭고 부럽다.

따위 자전거포

찾아가지 않으면 반출하겠다는 공고와 함께 자전거들이 수위실 옆에 며칠 동안 진열되어 있다. 사지육신이 멀쩡한 놈은 거의 없다. 자전거라면 워낙 사족을 못 쓰는 지라 수위 아저씨께 말씀 드리고 개중에 쓸만해 보이는 놈을 골라 들여와 수리를 시작했다. 멍키 스패너로 눈에 보이는 모든 너트를 풀어 자전거를 완전히 해체하고, 걸레를 빨아가며 먼지와 기름때를 닦아 냈다. 자전거포에 가서 부품을 무려 2000원 어치나 사서 튜브에 끼우고 쭈글쭈글한 바퀴에 바람을 넣고, 다시 가조립을 해보았다. 진단 결과, 느슨해진 체인을 팽팽하게 당기고 브레이크만 손보면 아쉬운 대로 탈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기름칠─WD40이라는 훌륭한 제품이 있다─은 해야지. 욕심 같아서는 도색도 새로 하고 싶지만 그건 일이 너무 커질 것 같아 꾹 참아야 할 것 같다. 오늘 밤에도 자전거가 바람에 스치운다.

달리지 못하는 질주

계절의 주차장에 오래 머물러 있던 자동차의 시동을 걸고 가속 페달을 밟았다. 느티나뭇잎 하나가 와이퍼 밑에서 쓸쓸하게 흔들리는 게 보였다. 나는 자동차의 속도를 높여 나뭇잎을 굳이 떼어냈다. 나뭇잎은 공중으로 잠시 솟구쳐 올랐다가 아스팔트에 떨어졌다. 느티나뭇잎이 떨어진 네거리에 직진 신호가 거의 끝나가고 있었다. 워셔액을 뿌려 창문을 닦았다. 고작 나뭇잎 하나에 시계가 흐려지다니. 가족에 대한 의무감이 안전벨트를 매게 하는 나이. 미동도 없이 또 한 계절을 지나가는 발작들. 달리지 못하는 질주들.

 

 

 

오늘의 문장

“그것[자연의 기하학]은 우리의 가옥이나 도로 등에서 발견되는 유클리드 기하학이 아니라 숲속의 나무들과 그 줄기, 가지 그리고 뿌리에서 발견되는 프랙탈 기하학입니다.”(p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