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깨 너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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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가 셋인 집에 컴퓨터라고는 내가 업무용(무슨 업무를 하는지는 잘 모르지만) 혹은 예술작품창작용(역시 무슨 예술작품을 창작하는지는 잘 모르지만)으로 쓰는 이 노트북이 딸랑 하나 밖에 없으니, 자연 이 노트북을 사용하기 위한 경쟁이 치열하다. (데스크탑이 한 대 있었는데 그나마 고장나 버렸다.) 지금까지는 “1강(나) 1중(아내) 1약(우)”의 구도 였는데 이제 ‘엽’이까지 가세할 모양이다. 여태 어깨 너머로 제 누나가 하는 것을 지켜만 보던 ‘엽’이가 드디어 조금 전 ‘나도 해보고 싶다’고 ‘참전선언’을 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왜 애를 셋이나 키우려면 부자여야 한다고 했는지 조금씩 조금씩 알 것 같으다.

p.s. 해서 애들을 밖으로 내쫓아버렸다. 나가 눈 싸움이나 하라고. 애들 쫓아 나가서 사진이나 찍어야 겠다, 고 생각하고 있는 이 와중에 아내가 옆에 앉아 내가 언제 이거 다 쓰고 노트북 내주나 하고 있다. 쩝.

이번에는 축출하는 엔트리라는 이름으로 하나 더

머리 속에 이렇게 많은 생각들이 덜그럭거리고, 가슴 속에 이렇게 많은 느낌들이 질척거리는데 단 한 마디도 말할 수 없고 쓸 수 없고 그릴 수 없고 노래할 수 없다. 시간낭비하는 독서습관을 멈추어야겠다. 다독은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제 더 이상 책을 사지 않겠다. 집에 있는 책을 다 다시 한 번 읽을 때까지는. 문제는 그러나 이 결심은 별로 신뢰할 만한 것이 못된다는 걸 난 너무 잘 알고 있다는 것

또, 밀어내기 엔트리 하나

어제, 지상에 의해 강제소환 당했던 눈들이 녹으며, 지상의 더러움이 그 몸에 잔뜩 묻어 꼴보기 싫어지듯, 나는 도무지 내꼴이 꼴보기 싫어진 것이다. 뚱뚱해진 내 육체의 생김새와 긴장감을 잃어버린 정신의 생김새가 모두 그러하다. 이건 자학도 아니고, 연민도 아니다. 사실이다. 가치판단이 아니고 사실판단이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긴장하라. 극도로 긴장하라. 팽팽하게, 팽팽하게, 예민하게, 살짝만 건드려도 터지게, 터져 버리게.

11. 웃긴 얘기는 웃긴다

하나마나 한 얘기지만, 그러니까 말 안 해도 그만이지만, 웃긴 얘기는 웃긴다. 그러니 남을 웃기는 방법은 의외로 쉽다. 내가 보거나 들어서 웃겼던 얘기를 그 좋은 얘기를, 그 좋은 걸 아직도 모르는, 한심하고 불쌍하고 가엾고 불운하고 불우한 사람에게 얘기해 주면된다.

어느 날 내 관심을 끌었던 누군가의 메신저 아이디는 이렇다.
거리의 신문팔이도 머리 속에 헤드라인 몇 개는 가지고 다닌다.*

사정이 이러하니 내 하나 묻겠다.
당신은 머리 속에 웃긴 얘기를 몇 개나 쑤셔넣고 다니는가?
좋은 말로 할 때 몇 개만 털어놓으라는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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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거 어디서 많이 본거다 싶어 찾아봤더니 원문은 이렇더라.
The corner newsboy, too, has some headlines – in his head.
─ 핼 스태빈스 저/ 송도익 역, <카피 캡슐>, 서해문집. 169쪽,

직통

오직 젊은 예술만이 대중적일 수 있다. 왜냐하면 어떤 장르가 오래되면 그 현재를 이해하기 위해 과거의 발전단계들을 알고 있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이다. 어떤 예술을 이해한다는 것은 그 형식과 내용의 적절한 결합을 의식하는 것을 말한다. 예술이 젊은 동안에는 그 내용와 표현 형식사이의 관계가 자연스럽고 단순하다. 즉 주제에서 형식으로 직통하는 길이 열려 있는 셈이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는 동안, 이러한 형식들은 소재에서 독립하게 되며 점점 공허해져서 특별한 교양을 쌓은 소수의 계층밖에 이해할 수 없게 된다.

─ 아르놀트 하우저 지름, 백낙청 염무웅 옮김,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4> 315p

“직통하는 길이 열려 있다.” 직통하는 길이, 직통, 직통, 직, 통, 直, 通
이쪽 가슴에 파이프 하나 쌔리 박고, 한쪽 끝을 그쪽 가슴에 팍 찔러 넣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