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니 빠진 나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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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년 6월 23일 서대문자연사박물관, nikon N50 tamron 28-200mm 3.8~5.6f fuji superia 200

Running in the Rain

1.
그렇게 꾸역꾸역 계란을 먹으며 상경한 우리 가족은 모래내 천변에 자리를 잡았다. 그 뒤 아버지는 처자식 먹여 살리느라 몇 달씩 집을 비웠고, 엄마는 개울 건너 공장엘 다녔다.

어느 해 여름, 정말 비가 많이 왔다. 누나와 형은 학교에 가고 나만 집에 혼자 있었는데 천장에서 비가 샜다. 무려 세 곳에서. 나는 부엌에서 노란 빠께스 하나와 검붉은 고무다라이 하나와 하얀 스덴 세수대야를 가져다가 방바닥에 주욱 늘어놓고 빗물을 받았다.

그러나 비가 너무 많이 왔다. 빗물은 곧 빠께스와 고무다라이와 세수대야를 흘러넘칠 기세였다. 나는 빠께스, 고무다라이, 세수대야에서 차례대로 물을 한 바가지씩 덜어내어 방문턱을 지나 부엌 문을 열고 밖에 버렸다.

점심시간이 되자 엄마는 허리까지 불은 개울물을 위태위태하게 가로 질러 집에 왔다. 난 그때까지 계속 바가지로 물을 퍼나르고 있었다. 가끔씩 걸레로 방바닥에 튀는 빗물을 닦아내 가면서. 내가 아직 국민학교에 들어가기 전의 일이니 아마도 지금의 나우만했었나 보다.

2.
나는 들국화 노래 ‘사노라면’의 2절이 1절보다 좋았다.
“비가 새는 판자집에 새우잠을 잔대도
고운님 함께라면 즐거웁지 않더냐.
새파랗게 젊다는 게 한 밑천인데
째째하게 굴지말고 가슴을 쫘악펴라.
내일은 해가 뜬다. 내일은 해가 뜬다.”

3.
78Kg.
달리기를 시작한지 4개월 만에 가져보는 몸무게.
감량목표치의 딱 절반을 줄였다.
더구나 이틀전부터 허리띠를 한구멍 안쪽으로 매게 되었다.
오늘도(혹은 밤 열두시가 지났으니까 어제도) 나는 뛰었다.
처음 뛰기 시작할 때 한방울 두방울 떨어지던 비는 다섯바퀴를 돌 때 쯤엔
굵은 빗줄기로 바뀌었다.
나무 밑을 지날 때마다 후두둑 빗소리가 났다.
비를 맞으며 달리는 기분 상쾌도 하다아. 종이 울려서. 장단 맞추니~
마음 같아서는 한 옥타브 위에서 노래라도 부르고 싶었지만
숨이차서 헉헉거리기도 힘들었다.
쫄딱 젖었다.

4.
내가 좋아하는 말 하나;
“젖은 자는 비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일본 속담으로 기억한다.

5.
비가 오면 하고 싶은 거 두 가지;
거리가 내려다 보이는 2층 창가에 앉아 뜨거운 빨간 체리 차 마시기.
고음으로 아주 까마득하게 올라가는 바이올린 듣기.

6.
헐.
비 맞고 한 번 뛰었다고 이거 너무 센치해졌다. 하니,
고마 해라. 많이 묵었다 아니가, 할랬더니 유행지났다 아이가. 고마
자자.

뉴욕 3부작

폴 오스터 지음, 황보석 옮김, < <뉴욕 3부작 The New Your Trilogy>>, 열린책들, 2003

어느 날 평소 웬수처럼 친하게 지내던 카피라이터의 집에 놀러갔다. 뭐 하러? 술 마시러! 그날도 우리는 뭐 “인생 뭐 있나?” “노세, 노는 게 남는 거네.” 하며 시시껄렁한 얘기나 나누었다. 무슨 얘기 끝에 이 카피라이터가 나더러 책 한권을 내밀더니 가져가라 했다. 나는 됐다, 그랬다. 안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그 집에 드나들며 그의 책을 한 권 두 권 말하고도 집어가고 말 안하고도 집어가는 걸 알고 있던 터에 나까지 그런 탐욕의 대열에 합류하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었다. (아, 그의 책이 우리 집에 딱 한 권 있기는 있다. 결국 나도 똥 묻은 개까지는 아니지만 겨 묻은 개정도는 되는 셈이다. 그리고 그 집에 빼오고 싶은 책이 아직도 한권 남아있다. The Body라고. 사진책이다. 치토스를 노리는 치타처럼, 언젠간 쌔벼오고 말거야.) 아무튼 그가 그때 날더러 가져가라던 책이 폴 오스터의 < <빵굽는 타자기>>였다. 나는 안 가져왔다. 속으로 참나, 빵 굽는 제빵기는 들어봤어도 빵 굽는 이상한 불량 타자기는 처음 들어봤다, 하면서.

결국 나중에 내 돈 주고 < <빵굽는 타자기>>를 사서 읽었다. 지금 그 책의 내용은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 (이 독후감 다 쓰면 다시 읽어볼 참이다.) 다만 책 표지에 적혀 있던 “젊은 날 닥치는 대로 글쓰기”라는 문구만 기억날 뿐이다. 젊은 날 닥치는 대로 글쓰기라니!

내가 폴 오스터를 더 읽어 보기로 한 건 어느 블로그를 방문한 게 계기가 되었다. 어떻게 해서 그 블로그까지 흘러 들어가게 됐는지 이제 와서 알 길이 없지만, 해서 지금 다시 찾아갈 수도 없지만, 그 블로거가 자랑처럼 찍어서 올린 책꽂이 사진에는 폴 오스터의 책들만 빼곡히 꽂혀있었다. 폴 오스터? 난 별루 재미 못 봤는데 이 정도로 그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니, 내가 그를 지나치게 저평가 하고 있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선택한 책이 이 책이다. < <뉴욕 3부작>>

3부작이니 세 편의 소설이 있다. “유리의 도시” “유령들” “잠겨 있는 방” 제목들부터 뭔가 있을 것 같다. 뭐 소설 제목들이 다 그렇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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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 급조한 광복동이 출생기

8월 15일 새벽 4시, 아내가 방문을 열고 들어오는 소리에 눈이 떠진다. 내가 눈을 뜨자마자 ‘아 오늘은 광복절, 태극기 달아야지’라고 생각했을 거 같은가?

따위: (졸린 눈을 비비면서)왜? 아퍼?
아내 : 응
따위: 많이?
아내 : 아니, 아직은 견딜 만해
따위 : 그럼 계속 견뎌라(또 잔다)

아직 견딜만한 아내는 씻는다. 나는 새벽잠을 깬 거이 억울하기도 하고 거사를 치루어야 한다는 생각에 약간 심드렁하기도 하면서 이리저리 뒤척거린다. 아내가 다 씻었다. 내 차례다. 샤워기를 틀어 물을 뒤집어 쓴다. 정신이 맑아온다. 맑은 정신? 맑은 정신이라. 내가 정신이 맑은 적이 있었던가?

출동준비가 끝나니 어영부영 새벽 5시 30분, 아직 작전을 개시하기에는 이른 시간인 것이다. 좀 더 자자. 진통은 30분 간격으로 오고 있다. 좀 더 자도 된다. 또 잔다. 자는 게 남는 거다.

모비딕’에 보니까 ‘Think not, is my eleventh commandment. Sleep while you can, is my twelfth’라고 있더라. 모세의 십계명에 이어서 ‘아무 생각 없이 잠만 디비 자는 게 열한번째, 열두번째 계명이란다’. 내 생활신조와 딱 어울린다. 그러므로 모비딕은 좋은 책이다.

아내가 다시 깨운다. 7시다. 10분 간격 진통이란다. 가끔은 나도 대신 아파 주고 싶을 때도 있기는 있다. 이제 그만하면 움직일 때가 되었다. 짐을 챙긴다.
기엽이가 깨서 나와서는 ‘The very hungry caterpillar’ 틀어 달란다. 뭐가 될라고 저러는지… 누나에게 애 봐달라고 전화를 건다. 온 댄다. 오더니 매형이 새벽 4시에 들어와서 부부싸움 한 게임하고 잠들자 마자 다시 깨서 온 거라고 투덜거린다. 다 동생 잘 둔 덕이다.

아내가 출발하기 전에 나우 자전거를 고쳐놓으란다, 나가 보니 안장 너트 하나가 도망가고 없다. 멍키스패너하나 챙겨 나가 ‘아랫돌 빼서 윗돌 괴기’로 반사판 너트 빼서 안장 볼트에 끼운다. 짝 잃은 반사판 볼트가 불쌍하다. 빼서 버린다. 반사판은 찍찍이로 고정시킨다. 임시방편이다. 임시가 상시가 될 꺼다. 다시 올라오니 이번에는 나우도 깨어있다.

따위 : 나우야 엄마 아빠 병원가서 ‘기떡이’ 낳아가지고 올께.
나우 : 응. 헤헤

예상 밖으로 순순히 떨어진다. 이상하다. 광복절이라 그런가

강변북로는 한산하다. 차에다 태극기 달고 달리는 애국자도 있다. 부끄럽다. 나도 애국을 해야 하는 건데. 이게 다 ‘기떡이’ 때문이다. 그래도 명색이 애 낳으러 가는 건데 비상등이라도 깜빡이며 폼나게 달려야 하는 거 아닌가 생각하면서 비상등 안켜고 후줄근하게 달려서 병원에 도착한다.

병원에 도착하면서부터 보호자는 심심하다. 그냥 기다리면 된다. 기다리다가 이거 해라 하면 이거 하고 저거 해라 하면 저거 하면 된다. 그래서 기다린다. 심심하다. 아내는 지금쯤 불안, 초초, 긴장 일 텐데 나는 한가하다. 철없는 남편 만나서 고생이 많다.

기다리는데 지나가던 웬 아저씨가 ‘셋째 낳으러 오신 분이죠?’ 한다. 아저씨가 아니고 의사다. 따위가 셋째 나러 왔다고 벌써 병원에 소문이 쫘악 돌았나 보다.

간호사가 오더니 수술동의서 작성하란다. 읽어보지도 않고 서명한다. 어쩌라구? 이제와서 동의서 읽어보고 문구 따지다가 그러면 딴 병원으로 가라고 하면. 안그런가?

조금 있다가 간호사가 또 쪼르르 와서는 무슨 마취를 할꺼냐구 묻는다. 수술 끝나고 덜 아픈 거는 15만원 더 내야 한단다. 그럼 그걸로 하지뭐. 돈 내고 오란다. 에이 그냥 평범한 걸 루 할걸!

돈 내러 가니까 원무 담당 직원이 열라 바쁘다. 외환딜러처럼 전화기를 2개들고 통화를 하지 않나. 키보드들 열라 두들겨 대질 않나, 전화교환원 노릇을 하질 않나. 다재다능하다. 스카우트해야겠다. 암튼 다들 먹고 살기 힘들다.

돈 내는데 그래서 20분 걸렸다. 아무려나 돈 내고 있는데 수술실에서 빨리 오란다. 나도 가고 싶다고, 근디 저 다재다능한 쟤가 열라 바쁜척 돈을 안받아서 그런거 아냐, 투덜이 따위 투덜거리며, 가니까 나한테 수술용 초록색 까운 입히고, 모자 씌우고, 마스크 씌우고 따라 오란다. 쫄래쫄래 따라간다. 가다가 손 씻으란다. 빠악빠악 씻는다. 손 씻으니까 들어 오란다. 쭈볏쭈볏 들어간다. 들어가니까 수술은 이미 진행중이다.

수술대 위에 큰 대자로 묶인(정말이다 내 아내가 묶여 있다. 어쭈구리 이놈들 봐라 싶다. 니들이 뭔데 내 아내를 묶어? 꼬와도 꾹 참는다.) 아내 머리 맡에 쪼그리고 앉으란다.

마취과 의사는 “쓰레빠” 신은 발 까불까불 거리면서 계기판를 보고 있다. 저 기계의 이름이 무슨 스코프더라. 아내의 혈압과 맥박이 그래프와 함께 그려진다. 얼핏보니 뭐 정상이다.

그 와중에 지들끼리 뭐라고 뭐라고 하더니 “썩션” 또 뭐라고 뭐라고 하더니 “야 나온다” 하더니 “으앙” 울음소리가 들린다. 이 험한 세상에 뭐 볼게 있다고 날 오라고 했느냐는 반항의 울음 소리같다.

애가 나오니까 “아빠 이리오세요. 손가락 발가락 다 다섯개씩이죠. 척추 똑바르죠. 보세요. 항문도 있죠, 몸무게는 3.3Kg이구요. 보시다 시피 아들이구요. 그렇게 가만히 서 계시지 말고. 뭐라고 말씀을 좀 하셔야죠, 아이가 아빠 목소리 듣게. 지금부터 탯줄 자를꺼예요. 요기 자르세요, 네 잘하셨어요, 아이와 산모 손목에 채울 name tag에여, 확인해 보세요, 지금부터 병실에 올라갈 거구요. 산모는 회복실에서 한 3시간 있을 거구여”. 아 거 되게 말 많드만.

병실로 올라가면서 간호사가 아빠가 안고 올라가는 거란다. 이 병원은 좀 유난스럽다. 안는다. 가볍다. 세월이 가면 무거워 질 것이다.

‘산다는 건 갈수록 무거워 지는 거야 임마. 니가 지금은 뭘 모르겠지만 조금 있으면 알게 될거야. 니 위로 깡패같은 누나에다가 말썽 피우는 형이 있다구, 어때 상황파악이 좀 되냐? 아무튼 지구에 온 걸 환영한다’

아이 신생아실에 ‘입방식’치루고, 전화질 시작이다.

“네 장모님 전데요….”

“어머니세요…”

“어 누나 난데…”

으 또 고생 시작이다.

(나중에 생각나면 계속…)

2002년 8월 20일 (언이 태어나고 5일 후)

p.s.
뒤지는 김에 더 뒤져보자, 했더니 이런 것도 있네요. 보아하니 예전에 어떤 커뮤니티 사이트에 올렸던 거군요. 원래 제가 재탕 삼탕은 잘 안하는 스따일 이기는 하지만 뭐 애 셋 블로그에 막둥이 출생기 있는 게 구색도 갖추고 좋을 듯하여 올립니다. 이상타. 이 밤에 뭔 말이 그렇게 많지. 비 맞은 중모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