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

천명관 (지음), < <고래>>, 문학동네, 20??

천명관의 소설 < <고래>>에는 법칙이 많다. 아래 인용된 두 번째 문장, 즉 “그것은 관성의 법칙이었다”를 읽는 순간에 앞 부분 어딘가에 비슷한 문장이 있었다는 걸 인지했고, 세번 째 문장 “그것은 유전의 법칙이었다”를 읽는 순간부터 모종의 예감에 사로잡혀 해당 문장과 쪽수를 메모하기 시작했다. 다음은 그 결과물이다. 내가 가장 애정했던 법칙 앞에는 괄호로 추임새를 넣어 놓았다. 혹시 누락된 법칙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처음 메모한 상태에서 다시 하나하나 확인해 보지 않았으므로 쪽수가 틀릴 수도 있으며, 내가 읽은 책은 도서관에서 대출해온 것으로 판권 페이지가 뜯겨나가 몇 번째 판인지 모른다. 따라서 당신이 가지고 있는 책과는 쪽수가 다를 수도 있다. 구차하게 도망가기 바쁘다. 뭔 상관이람.

그것은 세상의 법칙이었다. p. 23
그것은 관성의 법칙이었다. p.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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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정 천국 감시 지옥

토요일 오전, 편안히 늦잠 주무시는 아내님 곁에 누워 있는데 방문을 열고 들어오던 막내가 보더니, 지금 안방에서는 미성년자 관람불가 신이 연출되고 있사오니 출입을 자제해 주시기 바랍니다, 라고 드립을 치고 나간다. 이어 그위의 형이란 놈이 들어 오더니, 뭐 이 정도 가지고 그러냐, 면서 그대로 몸을 날려 내 위에 올라 타서는 스타2 좀 해도 되느냐고 조용히 묻는다. 허락해 주지 않으면 애정행각은 이걸로 끝이라는 뜻일 터. 협상을 마친 녀석이 득의양양해져서 나가고 난 뒤, 이제 영화 좀 본격적으로 찍어볼까 하는데 이번에는 아내님이 일어나 나간다. 나가 버리신다.

그리하여 나는, 애들한테 컴퓨터도 빼앗기고 나는, 살찐, 낡은 소파에 처량하게 기대 앉아 아이폰으로 블로그에 이 따위 청승맞은 글이나 올리고 있는 것이다.

외로워라. 이 내 몸은 뉘와 함께 영화 찍을꼬.

@_@

1.
막내를 붙잡고 뭐 좀 가르쳐볼까 했더니 녀석이 급하고 중요한 일을 할 게 있다고 핑계를 댄다. 그럼 가서 너 할 거 해라, 했더니, 야호, 해방이다, 하면서 간다.

2.
최규석 단편집 <<공룡 둘리에 대한 슬픈 오마주>>를 아이들이 좋아한다. 의외다. 역시 아이들은 나와는 다른 세계에 살고 있는, 이해할 수 없는 족속들이다. 저것들은 내버려 두고 나는 내 인생이나 살아야겠다.

아내의 충고

사모님이 화장대에서 꽃단장을 하신다. 어디 좋은 데 행차라도 하실 모양이다. “가지마. 날 두고 어딜 가.” 나는 사모님에게 가 엉긴다. 사모님, 귀찮아 하시는 표정이 역력하다. 사모님, 기어코 한 마디 하신다. “올해는 두 가지만 해.” 당할 줄 뻔히 알면서 와서 엉긴 내 불찰이 크다. 1절만 하셨으면 좋겠다. “첫째는 살을 5킬로그램만 빼.” 뭐 이 정도 멘트야 들어도 싸다. 나머지 하나는 무엇일까. “그리고 제발 좀 말 좀 이쁘게 해.” 듣고 보니 사모님, 바람이 참 소박하기도 하시다. 내 말본새가 본디 좀 그렇긴 하니까.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니 이거 영과 육을 동시에 환골탈퇴하라는 거 아닌가. 결국 날더러 새 사람이 되라는 거 아닌가.

스도쿠

스도쿠를 하다 보면 안다. 어떤 숫자가 그 칸에 들어갈 정확한 답인지, 아니면 일단 넣어 놓고 보자는 심산으로 써넣는 숫자인지. 전자의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나면 성취감이 파도를 치며 몰려드는데 반해, 후자의 방법으로 문제를 풀고나면 어쩌다 운이 좋아 문제를 푼 것이라는 자각에 뒷맛이 영 개운치가 않다. 체스 천재를 다룬 <위대한 승부>라는 영화에 보면 사부님이 제자에게 체스판의 말들을 모조리 쓸어버린 다음 빈 체스판을 앞에 두고 수를 읽는 방법을 가르치는 장면이 있다. 스도쿠도 저 영화에 나오는 방법으로 어떤 칸에 들어갈 숫자를 콕 찝어내기 전에는 손을 움직이지 말아야 하리라. 오늘도 나의 스도쿠에는 빈 칸이 너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