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귀자 지음, <<원미동 사람들>>, 살림, 2004(3판 2쇄)
모두 11편의 작품이 실려있는 연작 소설집이다. 좋은 책이다. 이제야 읽었다. 내가 읽은 것은 3판이다. 1판 해설 “원미동 ─ 작고도 큰 세계” (홍정선), 2판 해설 “밥의 진실과 노래의 진실” (황도경)이 실려 있다. 3판에는 발문 “내 마음의 거리, 원미동” (김탁환)이 있다. 읽어보지 않았다. 작가 후기는 1987년 10월자로 하나만 쓰여있다. 문지사 여러분께 감사한다니 초판은 문지사에서 나온 모양이다. 꾸준히 팔리는 모양이다.
<멀고 아름다운 동네> (한국문학 86.3)
원미동은 ‘멀 원’ 자에 ‘아름다울 미’ 자를 쓴다. 노모와 아이와 임신한 아내를 둔 가장이 한 겨울에 짐을 싸서 멀고 아름다운 동네로 이사가는 모습을 찬찬히 묘사했다. 짐칸에 실려가는 부부의 모습이 싸하다.
<불씨> (문학사상 86.4)
진만이는 개구장이다. 슈퍼맨 놀이 한다고 담장에서 뛰어내리다 이웃집 장독을 깨기도 하고 팔도 부러지고 그런다. 진만이 아빠는 실업자다. 아니다. 외판원이다. 그런데 도무지 말문이 터지질 않는 거다. 그래서 물건을 팔 목적이 아니라 순전히 말문이 트이게 할 목적으로 제 말을 들어줄 사람을 찾아 헤메인다. 드디어는 고속터미날에서 그렇게도 찾던 ‘스파링 파트너’를 만난다. 한번 말문이 트이자 술술 나온다. 그런데…
<마지막 땅> (동서문학 86.7)
강노인에게 원미동에 땅이 조금 있다. 그땅에서 식구들 먹을 푸성귀나 기른다. 똥을 퍼다가 거름을 뿌린다. 동네사람들, 여름이면 냄새 난다고 똥파리 꼬인다고 난리다. 사실 냄새도 냄새지만 동네에 강노인 밭이 있어서 집값이 안 오른다고 불만이다. 반상회를 열어 강노인이 농사 못짓게 할 대책을 마련한다. 자식놈들 다 소용 없다. 맨날 그 알량한 땅팔아 돈좀 달라고 난리다.
<원미동 시인> (한국문학 86.8)
오래 전에 TV에서 극화된 걸 본 적이 있다. 소설에는 김정환, 이하석, 황지우의 시가 인용되어 있다.
“너는 나더러 개새끼, 개새끼라고만 그러는구나……”(원주여자 ─ 아름다움에 대하여, 김정환)
“열입곱 개의, 또는 스물한 개의 단추들이 그녀를 가두었다.”
“마른 가지로 자기 몸과 마음에 바람을 들이는 저 은사시나무는, 박해받는 순교자 같다. 그러나 다시 보면 저 은사시나무는 박해받고 싶어하는 순교자 같다.”(西風 앞에서, 황지우)
TV에서는 원미동 시인이 황지우의 “여보, 지금 노량진 水産市場에 가서/ 죽어가는 게의 꿈벅거리는 눈을 보고 올래?”(<<나는 너다>>, 109)를 읊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제 다 나았어요?라는 제목으로 따위넷에 이미 인용한 바 있다.
<한마리의 나그네 쥐> (문학사상 86.8)
‘그 사내’가 어느 날 원미산으로 아예 들어가 버렸다. 그의 실종을 두고 동네에서 말들이 많다. 그 사내에게는 과연 어떤 사연이 있을까?
<비오는 날이면 가리봉동에 가야한다> (세계의 문학 86년 겨울호)
너희가,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을 아느냐?
너희가, 겨울에는 연탄 배달하고 구들도 놓고 수도고 고치고 안 하는 일 못하는 일이 없는 착실하고 성실하고 양심적인 임씨가 비오는 날이면 가리봉동으로 가야한다, 하는 이유를 아느냐?
너희가, 시인 유하가 바람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으로 가야한다, 하는 이유를 하느냐?
<방울새> (문예중앙, 85년 가을호)
제일 먼저 발표된 작품이다. 작가의 말에 의하면 연작으로 쓰여진 것은 아닌데 이 소설집에 끼워넣었다 한다. 감옥에 있는 남편을 둔 아내가 역시나 무슨 사연으로 혼자서 아이를 키우는 여자와 동물원에 간 이야기다.
<찻집 여자> (매운 바람 부는 날, 1987)
어쩌다가 여기 멀고 아름다운 동네 원미동까지 흘러들어 와서 찻집을 차린 여자가 있다. 그 여자를 보는 동네 아낙들의 시선이 곱지 않다. 어느 날 찻집 여자가 행복사진관에 와 증명사진을 청한다. 사진사 엄씨는 뷰파인더로 여자의 얼굴을 찬찬히 뜯어본다. 그러느라 시간이 제법 걸린다. 엄씨가 사진을 다 찍자 여자가 말한다. “사진 찍는 일도 쉽지는 않군요.” 한때는 예술 사진을 찍떤 엄씨였다. 이제는 증명사진이나 찍어주고 유치원 전속 사진사 노릇을 하기는 하지만. 드디어는 엄씨가 여자와 사랑에 빠졌다. 첫만남부터 “사진사라는 직업의 애환을 속속들이 알아버렸다는 투로 말하는” 찻집 여자와 행복사진관 엄씨가 사랑에 빠졌다. 그러나 그 사랑 위태위태 하다. 아니나 다를까. 엄씨의 아내가 그걸 알고 찻집 여자를 찾아가 개박살 내버렸다. 그날 저녁 둘이는 부천역에서 만났으나 딱히 갈 곳이 없다. 날은 추운데 인천 쪽으로 가봐야 그렇고 서울 쪽으로 가봐야 그렇다. 둘이는 꾸역꾸역 비빔밥을 먹고 둘이는 다시 찻집 여자의 찻집에 딸린 상자곽같은 골방으로 숨어든다.
“까마귀는 어디에 있어도 까마귀예요.”
“약국에 갔다 올게요.”
“아녜요. 먹던 약이 다 떨어졌어요.”
“여기서 헤어져요.”
“큰길로 가세요. 나는 이쪽으로 가겠어요.”
“불 켜지 말아요.”
“이리 들어와요. 한결 나은걸.”
“늦었을 거예요. 어서 돌아가세요.”
“다신, 이곳에 얼씬도 마세요.”
찻집 여자의 말들이다.
<일용할 양식> (우리 시대의 문학 6집, 1987)
‘김포쌀상회’의 경호 아버지가 상호를 ‘김포슈퍼’로 바꾼다. 쌀과 연탄만을 취급하다가 확장을 한 것이다. 기존의 ‘형제슈퍼’ 김반장, 열 받았다. 김반장도 연탄도 팔고 쌀도 판다. 한 판 붙었다. 가격할인경쟁. 끼워팔기경쟁. 난리다. 아줌마들만 신났다. 그 와중에 눈치없이 ‘싱싱청과물’이 문을 열었다. 찻집 여자가 쫓겨난 자리에. 뭐야? 저건 또 뭐야? 경호 아버지와 김반장이 카르텔을 맺어 싱싱청과물을 쫓아낸다. 싱싱청과물이 쫓겨난 자리에 새점포가 들어서는데 이번에는 ‘전파상’이다. 그건 시내 엄마의 업종이다.
<지하 생활자> (문학사상 87.8)
세를 얻었는데 화장실이 없다. 해서 방값이 싸다. 해서 얻은거다. 해서 세입자는 주인집 화장실을 써야하는데 주인 여자는 ‘지하생활자’에게 현관 열쇠를 주자니 영 께름칙하다. 주인집 여자는 열쇠는 주지 않고 자기는 언제든지 집에 있으니까 언제든지 문을 열어줄테니 언제든지 와서 볼 일을 보라며 걱정말라한다. 해서 계약했다. 싸니까. 그런데 똥 싸러 갈 때 마음 다르고 똥 싸고 올 때 마음 다르더라고 주인집 여자가 문을 안 열어준다. 허걱. 똥 마려운데 문을 안 열어준다. 급해 죽겠는데 아무리 두드려도 주인집의 문은 열리지 않는다. 지가 무슨 천국의 문이라고 열리지 않는다. 하여 똥마려운 시간을 옮겨보려고, 가능하면 직장에서 해결하려고 별 짓 다해보는데 그게 내 뜻대로 안된다. 내 맘대로 안된다. 하여 지하생활자는 처절하다. 똥 마려운데 똥을 쌀 곳이 없어 처절하다. “결국은 새벽에 잠이 깨어 낑낑거리며 똥눌 데를 찾아다녀야 했다. 낑낑거리며, 라는 스스로의 표현 앞에서 그는 문득 기가 막혔다. 개처럼 낑낑거리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나 할 수 없다. 바지에 싸기 싫으면 할 수 없다. 할 수 없이 밖에 나가서 싼다. 주차해 놓은 차 뒤에서. 개처럼.
<한계령> (한국문학 87.8)
작가에게 어느 날 소꿉친구에게서 전화가 온다. 전주 기차길 옆에서 함께 자란 만두집 딸, 은자다. 어려서부터 노래를 잘 하던 은자는 마침 부천역에 있는 나이트 클럽에서 밤무대 가수로 활동중이다. 얼굴 한 번 보자구 나오란다. 나가마, 했다. 그런데 작가는 쉽게 은자를 만나러 나가지 못한다. 왜일까? 글쎄다.
작가의 고향에는 큰 오빠가 산다. 어려서 돌아가신 아버지를 대신하여 집안을 일군 사람이다. 큰 오빠가 요즘 크게 상심해 있다. 고향집은 팔렸다. 곧 여관이 될 것이다. 주변에 여관이 그득하므로.
작가는 은자가 공연하는 마지막 날 은자를 찾아간다. 마침 은자일 것으로 짐작되는 가수가 무대에서 노래를 부른다. 한계령이다. “저 산은 내게 잊으라, 잊어버리라 하고 내 가슴을 쓸어 내리네…..” 작가는 그냥 돌아온다. 사흘 후, 은자에게서 전화가 온다. 은자 화났다.
“전라도말로 해서 너 참 싸가지 없더라. 진짜 안 와버리대?”
그러나 작가는 “‘한계령’을 부른 가수가 바러 너 아니었느냐는 물음도 하지 않”는다.
은자는 작가에게 “고향의 표지판”이다. 고향, 나이 먹으면 심사가 복잡한 말이다.
나는 ‘큰 오빠’를 읽으며 신경숙의 <<외딴 방>>에 나오는 ‘오빠’를 생각했다. 방위 받으면서 가발 쓰고 과외해서 돈 벌고 공무원 시험보고 공무원 되고 시골에서 동생들 불러 올려 공부시키던. 큰 오빠들이란!
10년 전
Q) 우리나라 최강의 여류소설가는?
A) 양귀자! 두말할 것 없이 양귀자!
(그 시절, 누가 양귀자를 깍아내리면
그와 맞짱뜰 의지와 열정이 내겐 있었다.)
그리고 몇년이 지난 뒤
난 양귀자의 서글픈 인터뷰를 읽었고
이 땅에서 소수의 매니아만이 인정하는
소설을 쓴다는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결국 더 넓은 커뮤니케이션을 지향한다는
애매한 변명과 합리화로 대중소설을 쓰게 되었다고
담담하게 고백하는 그녀를 보는 것은
정말 견디기 힘든 고문 같은 것이었다
(그러지 마. 내가 강매를 해서라도 베스트셀러
만들어줄께. 귀자 누나 그것만은 제발…)
그리고 그녀가 쓴 세편의 대중소설을
그래도 빠짐없이 읽어주었다.
처음엔 슬픈 마음으로 그냥 들춰보는 마음이었으나
너무 재미었어서 손에서 뗄 틈조차 주지 않았다.
몇시간이면 뚝딱! 재미난 드라마 보듯 그렇게 읽었다.
책을 덮고 나면 언제나 담배 한대를 물면서
알 수 없는 슬픔에 잠겼었던 기억.
마치 ‘경마장 가는 길’에서 케이가
제이를 생각하며 우는 장면처럼
난 혼자 그렇게 독백했을 거야.
‘귀자 누나, 이따위 소설로 몇년이나 읽힐라구.
10년 지나서 도대체 어떻게 얼굴을 들고 다닐라구.
1년만 지나도 아무도 거들떠 보지 않는
이따위 쓰레기로 무얼 어쩌겠다구.
차라리 드라마를 써요. 연속극을 써요.’
천년의 사랑?
드라마…소위 하류계층, 혹은
저급 대중들을 위한 예술장르로 치부되다.
중독님께
김수현 드라마에 찬사를 보내는
저 자체가 저급 대중인 제가
설마 그런 뜻에서 썼겠어요?
예를 들어, 이중섭, 박수근이 될 재목이
대중성 운운하며 극장 간판을 그릴 때,
그 옆에 서서 그러지 마, 넌 그러면 안돼…
하면서 우는 기분인 거죠.
김수현도, 노희경도 위대한 작가인 건 사실이지만,
티브이 모니터 앞에서 잠시 깔깔거리고
눈물 몇번 훔치고 나면, 그들의 존재는
어디론가 사라져버리고 만다는 거…
적어도 문학 혹은 예술이 모종의 자존심 내지는
모종의 귀족성을 버려서는 안된다고…
그리고 위대한 예술은 궁극적으로…
‘불멸’이라는 가장 최상위의 판단기준을 통해…
구분된다고 믿는 나의 이 구시대적인 예술관이
욕 먹어야 한다면 욕 먹어야겠지만요…
양귀자는 당대만 즐겁게 해줄 작가로
남기에는 아까운 사람이라는 생각에서
그런 제 기분을 쓴 것이니…
이상한 오해 마시기를…
걸식님께.
저어… 본뜻은 그것이 아니오라..;;;;;;;
제가 무심히 남긴 말에 기분이 상하신듯 합니다.
부디, 마음을 푸셨으면 합니다. 진심으로.;;
따위님께.
물의를 일으켜 죄송합니다.;;;
비록 사고는 쳤으나, 앞으로 더 자주 놀러올 것입니다.
꾸벅.
중독님/ 하하. 물의는 무슨^^. 그리고 이게 “사고”라면 좀 약하지 않습니까?
제가 일 중독자만 빼면 알콜 중독자도 알고 마약 중독자도 알고 연애 중독자도 알고 중독자는 좀 아는데^^ “길에 대한 중독”자는 처음 뵙는군요. 오래 전 기억입니다만 정현종 시인이 어느 시에서 자신은 “밥 중독자”라 했었는데, 그 시에서 중독에 대한 정의가 “없으면 살 수 없는 것”이라 했던 것 같습니다. 알콜로, 마약으로, 연애로 자기정체성을 확인하는 저 까마귀 무리들 가운데 “길”로 자신의 아이덴터티를 확인하는 길 중독자라니.
내가 제일 좋아하는
“비오는 날이면 가리봉동에 가야한다”가 없으므로
이 포스트는 무효!
허걱, 마분지님, 조 위에 있는데……
음. 예전 서버에 있던 건 모두 다 가져온다 했는데 딱 하나가 빠졌군요. 아쉬워라.
마분지님의 천금 같은 댓글을 빼놓고 오다니!
마분지님, 혜량하시기 바랍니다.
아무튼 “낙장불입 코멘트 시스템”은 개선하기 어려울 듯 합니다. 무버블 타입이 그 모양이라서요.
r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