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은 안되고 심심하니 짤림용 옮긴이의 말이나 써보자, 나여.

번역이 후지니 딴 얘기나 해보자. 나는 언어는 타협해서 쓰는 게 맞다, 고 생각한다. 예컨대 소시 적에 친구 집에 놀러 가면 친구 어머니가 어떨 때는 어서 와라, 하시고 또 어떨 때는 어서들 와라, 하셨다. 어서 와라, 하실 때는 나 혼자 놀러 갔을 때이고, 어서들 와라, 하실 때는 여럿이 놀러 갔을 때였다. 단수와 복수를 구별해서 그에 맞는 언어를 사용하는 것은 좋은데 문제는 그 다음이다. 단수와 복수를 구별한다면 복수 중에서도 많고 적음은 왜 구별하지 않는가. 가령 혼자 가면 어서 와라, 고 둘이 가면 어서들 와라, 라면 셋이 가면 왜 어서들들 와라, 가 아닌가. 넷이면 어서들들들 와라, 라고 말해야 하는가. 아니면 어서들 와라들, 이어야 하는가. 거 봐라들. 내 말이 맞다들! 어느 시점에서 우리는 언어와 타협할 수밖에 없다. 막말로 언어는 대충대충 쓰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런데 언어는 대충대충 쓰는 게 맞다는 말이 막말인지 아닌지는 모르겠다. 대충 넘어가자. 따지지 말고 살자. 비근한 예로 김치볶음밥은 김치 넣고 볶은 볶음밥이다. 허면 철판볶음밥은 철판 넣고 볶은 볶음밥인가. 거 봐라. 내 말이 맞다. 언어는 대충 쓰는 거다, 대충. 어떨 때는 뜻도 모르고 대충 쓰는 거다. 천할 비에 가까울 근 자를 쓰는 비근하다는 대체 무슨 뜻일까.

그럼 번역은 어떤가. 언어가 본디 대충 쓰는 것일진대 대저 번역이란 대충 쓰는 하나의 체계를 역시 대충 쓰는 다른 하나의 체계로 옮기는 것이니 번역도 대충대충 하는 것이 맞다. 이렇게 속 편한 소리 하고 자빠져 있으면서 번역을 했으니 안 봐도 엉덩방아일 것이다. 번역은 타협이며 결단이며 착복이며 날조다. 타협인 것은 더 설명 안 할 것이니 원하신다면 내 배를 째면 아프니 지나가는 돌멩이의 배를 째셔도 좋거니와 결단인 것은 여러 선택지 중에서 딱 하나만을 골라야 하는 상황이 21세기 초반 말로 ‘느무느무’ 많은 까닭이며 착복은 번역자가 혼자서만 챙겨 먹어야할 의미와 뉘앙스가 많다는 뜻이며 날조인 것은 에잇, 부끄러워 내 차라리 입을 다물고 말리라. 침묵.

나한테서 고맙다는 말 들어야 할 분들은 술 사줘서 고맙다는 말, 기다려줘서 고맙다는 말, 도와줘서 고맙다는 말, 잊어줘서 고맙다는 말, 기억해줘서 고맙다는 말, 이래저래 고맙다는 말, 기타등등 고맙다는 말, 여기 산더미처럼 쌓여있느니 각자 구미에 맞게 알아서들 보따리로 챙겨 가시기 바란다.

정작 무기가 필요한 사람은 따로 있다. 내가 정작으로 하고 싶은 말은 바로 앞 문장 딸랑 하나다. 다음 번 옮긴이의 말은 정성들여 쓰겠노라. 속세여, 잘 있거라. 나는 바로 입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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