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해 – 序

어려서 뭐든지 내 손에 들어오면 남아나는 게 없었다. 드라이버로 나사를 돌리고 망치로 뽀개고 칼로 자르고 하면서 뭐든지 뜯어서 내부를 살폈다. 나는 사물의 내부가 궁금했고 작동원리가 궁금했다. 그러나 뜯는 건 사람의 일이고 조립하는 건 신의 일인지라 조립은 맘대로 잘 안됐다. 무엇보다도 멀쩡한 물건을 뜯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니 이미 망가지거나 고장난 것들만 뜯었기 때문에 다시 조립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적었고, 나사를 풀어 떼어낸 것은 다시 나사를 조이면 그만이었지만 망치로 뽀개거나 칼로 자른 것은 원상복구할 방법이 없는 탓이기도 했다. 조립하는 데 있어서 특히 골치가 아팠던 건 용수철이었다. (아 오랜만에 용수철이란 단어를 쓰니 감회가 새롭다.) 한번 튕겨나가면 원래 모습으로 제자리에 집어 넣기가 쉽지 않았다.

대충 기억을 더듬어 보니 세이코 손목시계, 대한전선 TV, 삼성 VHS 캠코더, 골드스타 녹음기, 괘종시계, 벽시계, 아내가 혼수로 해 온 침대, 검정색 구형 전화기, 어머니의 오래된 장롱, 여러대의 컴퓨터, 하드 디스크, 선풍기, 냉장고, 재봉틀 등등을 분해했던 듯하다. 부피를 줄여서 버리기 위한 것도 있었고, 모터를 빼서 쓰느라고 그런 것도 있었고, 수리를 위해서 그런 것도 있었다.

이제 나이깨나 먹어서 분해 같은 건 잘 안했었는데 최근에 우연치 않게 낡은 카메라에 관심을 좀 가지다가 보니, 카메라 수리를 잘 하시는 분들에 대한 얘기를 여기저기서 보게 되었고, 그게 자극이 되었다. 카메라 수리라…이든 듣기만 해도 마음이 마구 파도치는 일이다. 해서 취미삼아 이것저것 분해하고 재미삼아 그 과정을 카메라로 찍어 일삼아 올리기로 결심한 것이다.

예상되는 문제점들이 몇 개 있다. 이제 고장난 물건이 없어서 분해를 하자면 멀쩡한 물건을 해야 하는 데, 그럴 수는 없으니 분해할 고장난 물건을 찾아 다녀야 한다는 것. 해서 의 “고장난 시계나 머리카락 팔아요~” 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것. 아내에게 가뜩이나 좁은 집 어지럽힌다고 지청구 들을 게 뻔하다는 것 등이다.

이 “분해” 카테고리의 첫번째 희생자는 페트리Petri카메라가 될 듯하다. 어서 생겼는데 렌즈 경통이 찌그러져 있고, 레인지 파인더 안에서도 부품이 달그락거린다. 가능한한 고칠 수 있었으면 좋겠는데 아무래도 카메라는 처음이니 실패확률 99%!

문득 고등학교 교련시간이 생각난다. M1 소총을 분해결합하는 걸 배웠었다. 미역줄기가 줄줄 늘어진 모양의 교련복 입고(촌스럽기도 하지.) 4열 횡대로 땡볕에 깔 것 깔고 앉아가지고서는 “빽씨(교련선생님 별명, 사실 ‘님’자 붙여드리기도 아까운 사람이었지만)”의 신호에 맞춰서 재빠르게 분해했다가 재결합하는 것으로 시험을 치르곤 했었다. 그때의 배웠던 구호가 잊혀지지 않는다.

“청결하고 깨끗한 곳에서”

팔팔했던 우리는 이 구호를 다른 곳에 응용하는 상상을 하면서 즐거워했었다. 청결하고 깨끗한 곳에서,라니! 나는 청결한 곳하고 깨끗한 곳하고 어떻게 다른지 알지 못한다. 혹시는 내 기억이 고장난 것일 수도 있다. 하여튼 이것도 다 지나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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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년 7월 fm2 nikkor 50mm 1.4f fuji superia autoauto 200

소나기

맑은 하늘에 먹구름이 우르르 몰려와 소나기를 갈겨대기 시작한다. 맨살의 아스팔트, 살점 뚝뚝 떨어지고 풀잎들, 시퍼렇게 멍든다. 비닐우산, 너덜너덜 해진다. 잠시 후 비는 그치고 태양이 구정물과 흙탕물과 핏물과 젖과 꿀이 흐르는 지상을 야유하고 위로하며 적외선과 자외선과 가시광선을 내리갈긴다. 지상은 무슨 일 있었냐는듯 그냥, 저하던 낮은 포복이나 계속한다.

 
 
 

‘이성간의 어깨동무 및 손잡고 다니는 행위’는 50점 ‘동성간의 비정상적인 교제’는 80점

지난해 3월 인천외고에 부임한 이남정 교장은 명문 고등학교 변신 계획의 총대를 메고 있었다. 이교장은 학생들에게 스파르타 교육을 했다. 2003년에는 유급 제도를 시행해 1·2학년 34명을 유급 대상자에 올렸다가 학부모의 서약서를 받고 철회했다. 2004년에 는 벌점제도를 만들었다. 벌점제는 그 기준의 투박함 때문에 호사가들의 입방아에 올랐다. 지각은 벌점 5점, 두발 위반은 10점, ‘이성 간의 어깨동무 및 손잡고 다니는 행위’는 50점, ‘동성 간의 비정상적인 교제’는 80점이다. 규정상 벌점 100점이 넘으면 퇴학시킨다고 되어 있다.

Running in the Rain

1.
그렇게 꾸역꾸역 계란을 먹으며 상경한 우리 가족은 모래내 천변에 자리를 잡았다. 그 뒤 아버지는 처자식 먹여 살리느라 몇 달씩 집을 비웠고, 엄마는 개울 건너 공장엘 다녔다.

어느 해 여름, 정말 비가 많이 왔다. 누나와 형은 학교에 가고 나만 집에 혼자 있었는데 천장에서 비가 샜다. 무려 세 곳에서. 나는 부엌에서 노란 빠께스 하나와 검붉은 고무다라이 하나와 하얀 스덴 세수대야를 가져다가 방바닥에 주욱 늘어놓고 빗물을 받았다.

그러나 비가 너무 많이 왔다. 빗물은 곧 빠께스와 고무다라이와 세수대야를 흘러넘칠 기세였다. 나는 빠께스, 고무다라이, 세수대야에서 차례대로 물을 한 바가지씩 덜어내어 방문턱을 지나 부엌 문을 열고 밖에 버렸다.

점심시간이 되자 엄마는 허리까지 불은 개울물을 위태위태하게 가로 질러 집에 왔다. 난 그때까지 계속 바가지로 물을 퍼나르고 있었다. 가끔씩 걸레로 방바닥에 튀는 빗물을 닦아내 가면서. 내가 아직 국민학교에 들어가기 전의 일이니 아마도 지금의 나우만했었나 보다.

2.
나는 들국화 노래 ‘사노라면’의 2절이 1절보다 좋았다.
“비가 새는 판자집에 새우잠을 잔대도
고운님 함께라면 즐거웁지 않더냐.
새파랗게 젊다는 게 한 밑천인데
째째하게 굴지말고 가슴을 쫘악펴라.
내일은 해가 뜬다. 내일은 해가 뜬다.”

3.
78Kg.
달리기를 시작한지 4개월 만에 가져보는 몸무게.
감량목표치의 딱 절반을 줄였다.
더구나 이틀전부터 허리띠를 한구멍 안쪽으로 매게 되었다.
오늘도(혹은 밤 열두시가 지났으니까 어제도) 나는 뛰었다.
처음 뛰기 시작할 때 한방울 두방울 떨어지던 비는 다섯바퀴를 돌 때 쯤엔
굵은 빗줄기로 바뀌었다.
나무 밑을 지날 때마다 후두둑 빗소리가 났다.
비를 맞으며 달리는 기분 상쾌도 하다아. 종이 울려서. 장단 맞추니~
마음 같아서는 한 옥타브 위에서 노래라도 부르고 싶었지만
숨이차서 헉헉거리기도 힘들었다.
쫄딱 젖었다.

4.
내가 좋아하는 말 하나;
“젖은 자는 비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일본 속담으로 기억한다.

5.
비가 오면 하고 싶은 거 두 가지;
거리가 내려다 보이는 2층 창가에 앉아 뜨거운 빨간 체리 차 마시기.
고음으로 아주 까마득하게 올라가는 바이올린 듣기.

6.
헐.
비 맞고 한 번 뛰었다고 이거 너무 센치해졌다. 하니,
고마 해라. 많이 묵었다 아니가, 할랬더니 유행지났다 아이가. 고마
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