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험 삶의 현장. 독신남으로 하루 버텨보기.

어제 아내가 아이들을 데리고 친구집에 가버렸다. (내가 그 전날 술먹고 늦게 들어왔다고 항의차원에서 가출한 건 아니다.) 어제 까지는 좋았다. 나는 혼자 저녁밥 챙겨 먹고 혼자 TV 좀 보다가 혼자 운동하러 다녀와서 혼자 몇 좀 하다가 혼자 잤다. 평화도 그런 평화가 없었다. 집안이 고요했다.

아침이다. 뭔가가 잔뜩 결핍된 아침이다. 문을 열고 들어와 올라타는 놈도 없고, 울음소리도 부스럭거리는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아, 그렇지. 나 혼자 아침 먹어야 하는 날이지. 밥은 어제 밤에 다 먹어치웠는데. 아, 밥하기 귀찮다. 귀찮아도 굶으면 나만 손해니 쌀을 씻어 안친다. 취사버튼을 누르고 집안 가득 뮤직을 깐다.

음, 전화 한 통화 없군. 그래, 니들끼리 재미있는데 놀러갔다 이거지. 지금이 열한시 반인데 아직 베란다 커튼도 안걷었고, 밥 다 되려면 아직 멀었다. 이런, 점심은 또 뭐해먹나. 저녁 전에는 오겠지.

고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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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로지 자신의 힘만으로 고집스럽게 계단을 오르(겠다)는 손주 녀석을 뒤를 살피며, 어머니는 녀석의 아비되는 자의 어린 시절을 추억하신다. 어머니 보시기에 둘은 닮았다. “어쩌면 그렇게 똑 같니?” 하신다.

그러나 대물림되는 것이 어디 고집뿐이랴. 가끔은 내 대에서 제발 끊어버렸으면 하는 형질이 아이들 속에 살아 숨쉬는 걸 본다. 그럴 땐 내가 나 자신을 ‘증오’했던 만큼 아이도 미울 때가 있다. 나는 무겁고 어두운 의식을 품고 살았다. ‘더러운’ 성격하며.

한편, 나에게는 결핍되었던 형질이 아이들 속에 구현되어 있는 것도 있다. 가령, 음정과 박자를 맞추어서 노래를 부른다든가 나무를 보고 나무를 그렸는데 그게 나무처럼 보인다든가 하는 거. 아내를 닮은 것이다.

어떤 아이도 제 부모를 골라 태어나지 않듯이, 어떤 부모도 제 자식을 가려 태어나게 하지 못한다. 그건 그냥 주어지는 것이다.

아내는 사랑해서 만났다. 내 부모와 나는, 나와 내 자식은, 어쩌다 만난 것일까?

We are the gangst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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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_야, 니가 우리 동생 한테 뭐라 그랬어?

__아니 그게 아니고.

__아니긴 뭘 아냐. 다음부터 조심해. 알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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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_별것도 아닌 게 까불구 있어. 가자.

__알았어. 누나

아내가 파견하는 터미네이터들

아침이다. 나는 잔다. 지난밤에도 나는 지구방위사령부와 연락을 취하며 지구의 안위를 걱정하느라 늦게 잠들었다. 그러니 아침이 와도 나는 잔다. 그래야 오늘밤에 또 지구를 지킨다. 예전에 지구를 지키던 동료들은 다 어디 갔는지 모르겠다. “지구를 지켜라”가 흥행에 실패해서 그런 모양이다.

아무튼 아침이다. 나는 잔다. 아내는 나에게 터미네이터 원을 파견한다.

__언아, 아빠 깨워.

언이가 온다. 낑낑거리며 문을 열고 언이가 와서는

__빠. 잉나.

한다. 나 꿈쩍도 안한다. 조금 있다가 아내가 터미네이터 투를 파견한다.

__엽아, 아빠 깨워.

엽이가 온다. 조용히 문을 열고 들어와서는

__아빠, 일어나.

한다. 나는 꿈쩍도 않는다. 그러면 그는

__엄마, 아빠가 안 일어나.

하고는 가서 TV나 본다. 나는 잔다. 조금 있다가 아내가 터미네이터 쓰리를 파견한다.

__나우야, 아빠 깨워.

우가 온다. 조심해야 한다. 터미네이터 쓰리는 웬만해선 직접 나서지 않지만 한 번 나서면 확실하게 해치운다. 터미네이터 쓰리는 방문을 거의 발로 걷어차고 들어와서는 그대로 몸을 날린다. 내 비만의 몸뚱이 위로.

그러니 조심해야 한다. 나는 터미네이터 쓰리가 오는 발걸음 소리에 벌써 잔뜩 긴장하고 있다. 문이 열린다. 나는 비굴하게 일어나 앉아 있다. 터미네이터 쓰리는 내가 일어나 앉아 있는 모습을 보더니 휙 돌아나간다. 별것도 아닌 게 까불고 있어, 하는 갑다.

아무튼 또 아침이다. 아침형인간은 나의 원수다.

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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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 셋을 데리고 식당엘 가면 사람들이 흘낏흘낏 쳐다봅니다. 딱 두 종류의 시선이죠. 저집 엄청 부자인가보다 혹은 참 안됐다! 웬만한 시선은 그러려니 합니다. 한 번은 뒷 테이블에서 손가락질까지 하면서 하도 노골적으로 쳐다보는 바람에 제가 심기가 불편해져서 아주 대놓고 쏘아보아준 적도 있습니다. “뭘보냐? 사람 처음 보냐? 니가 나 애 셋 낳는데 정액 한 방울 보태준 거 있냐?” 뭐 이런 식이었죠.

저날은 최악이었습니다. 최선의 날도 물론 있었어요. 연세 좀 넉넉히 자신 노인네 부부가 자기들 드시려고 주문한 파전 한 판을 반으로 뚝 잘라 넘겨주시더군요. 애들이 귀엽다고 말입니다. 고맙지요. 없는 살림에 파전 반 판! 그게 어딥니까?

아무려나 어제 저녁에도 외식을 했습니다. 저희 패밀리 외식 메뉴는 딱 두 종류입니다. 칼국수 혹은 뼈다귀해장국! 오늘 메뉴는 뼈다귀해장국이었습니다. ‘원당헌’이라고 잘 하는 집 있습지요. 뼈다귀 싹싹 발라 맛있게 잘 먹고, 아이들은 또 자판기에서 코코아 한 잔씩 뽑아 주고, 집에 와서 나우와 기엽이는 또 컴퓨터 하겠다고 달겨들어 컴퓨터 켜주고, 기언이는 졸려하여 재웠습니다. 물론 아내가 재웠습니다.

저는 귀찮기는 하지만 싸나이 뜻한 바가 있어 운동을 하러 갔습니다. 한 바퀴에 700m 씩이나 되는 트랙을 무려 다섯 바퀴나 돌았습니다. 뛰다가 걷다가 하면서요. 뛰면, 아 이제 내가 여기서 쓰러지는구나, 하는 한계지점에 곧 도착하니 쓰러지지 않기 위해서 걷지요. 걸으면, 기왕 하는 건데 인텐시브하게 해야 ‘뜻’이 이루어지지 않겠어, 하는 심정에 다시 뛰지요.

네 바퀴 반을 그렇게 돌고 한 지점에 멈추어서서 마무리 운동에 들어갑니다. 팔굽혀펴기 수십회, 양팔 크게 벌려 앞으로 회전시키기 수십회, 양팔 크게 벌려 뒤로 회전시키기 수십회, 중에서 10회 쯤 했는데…

주머니 속에서 핸드폰이 부르르 떨었습니다. 아 누가 술 사준다고 나오라고 하는 구나, 하고 냉큼 받았습니다. 웬 걸. 아내였습니다.

__지금 빨리 집에 와 줄 수 있어?
__엉, 왜?
__나 턱 밑에가 찢어졌어.
__뭐? 알았어. 당장 갈게.

하고는 집에 까지 냅다 뛰어왔습니다. 뛰면서 어느 놈 때문일까, 많이 다쳤나, 응급실엘 가야하나, 애들만 집에 남겨 둘 수도 없고 노인네를 오시라고 할까 고모에게 부탁할까, 오만가지 잡생각을 하면서 집에 왔습니다.

집에 와서 상처를 살펴보았습니다. 사진과 같습니다. 아 오해마십시요. 저건 원래는 아내 보여주려고 찍은 겁니다. 여기 올리려고 찍은 거 아닙니다. 아무튼 고모에게 전화를 걸어 애들을 부탁하고 부랴부랴 병원 응급실엘 갔습니다.

불철주야 격무에 시달리시는 병원응급실 관계자 분들 피로를 잠시 잊으시라고 너스레를 좀 떨었습니다. “저기, 수술 하려면 전신마취해야하나요?” “우리 부부가 원래는 부부싸움 같은 거 잘 안하는데…” “저, 제 아내가 곧 탤런트 될거거든요. 즉 얼굴로 먹고 살아야하니 흉터 안 남게 해주세요.” “떨지마. 내가 옆에서 손 꼭잡고 있을게”

무려 7바늘 꿰맸습니다.

응급실의 레지던트와 간호사들이 묻더군요. 어쩌다가 다쳤느냐고 말입니다. 어쩌다 다쳤을까요? 저도 그게 참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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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연인즉 이렇습니다. 아 글쎄, 저희 싸모님께서 몸짱 되시겠다고 수십년동안 거들떠 보지도 않던 AB 슬라이더를 하시다가 그만 슬라이딩을 하신 거 였습니다.

지금 큰 수술 받으시느라 고생하신 싸모님 주무십니다. 애들도 곤히 잠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