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은 엄마만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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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이다. 나는 한가하다. 나는 토스트 먹으며 신문보고 커피 마시며 신문보다가 또 신문지 들고 어딘가로 향한다. 한 마디로 나는 나 하나만 챙기면 된다. 이만큼 컸으니 나는 혼자서도 잘 한다.

아침이다. 아내는 바쁘다. 나 토스트 만들어 줘여지, 나 커피 타줘야지, 애들 깨워야지, 애들 빵에다 꿀 발라 먹겠다면 빵에다가 꿀 발라 줘야지, 애들 빵에다 쨈 발라 먹겠다면 쨈 발라줘야지, 애들 옷 입혀 주어야지, 나우 머리 묶겠다면 머리 묶어 줘야지, 나무 머리 따겠다면 머리 따줘야지, 엽이 옷입혀 줘야지, 엽이 양말 신겨줘야지, 애들 가방 싸주어야지, 애들 유치원에 데려다 줘야지, 할 일이 하나 둘이 아니다. 아내는 바쁘다.

평소에 나는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다. 짤없다. 엄마는 안되는 것도 금방 된다. 이런 식이다.

__엄마, 나 아이스크림 먹어도 돼?
__안 돼.
__으힝. (아이들 삐진다.)
__그럼, 딱 하나만 먹어.
__네. (아이들 아이스크림 맛있게 먹는다.)

엄마가 “안 돼”에서 “딱 하나만 먹어”라고 말하는 데 까지 걸리는 시간은 30초면 충분하다. 그러니 아이들은 엄마만 찾는다. 그러니 엄마는 피곤하다. 나는 짤없다.

아침마다, 아이들은 늑장이다. 그 중 TV도 한 몫한다. 이 와중에 막내는 막내대로 설쳐댄다. 오줌 싸고, VTR 틀어달라하고 아주 가관이다. 오늘 아침. 아내가 아이들의 모든 요청과 어리광과 생떼를 다 받아주다가는 이렇게 소리친다.

__니들이 이렇게 엄마말 안 들으니까 엄마가 아프지.

(그랬다. 엄마는 어제 아팠다. 하늘(에서 많이 모자라는 것)같은 남편이 와도 거들떠도 안보고 초저녁부터 잠자리에 들어서 내리잤다. 나는 맘이 짠했다.)

사태 해결을 위해서 내가 끼어든다. 나는 고작 이렇게 한다.

__니들 내일부터 아침에 TV 보지마. 알았어?
__…
__대답 안해?
__네.
__너는 왜 대답 안해? 내일부터 아침에 TV 보지마 알았어?
__네.

그러나 나는 안다. 아내는 아이들이 TV를 보겠다 하면 보라고 할 것이다. 나는 또 모르는 척 내버려 둘 것이다. 그러다가 아내가 또 힘들다 하면 아이들에게 아침에 TV 보지 말라고 소리나 지를 것이다.

흔히 부모가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일관성, 거 참 좋은 말이다. 근데 그게 잘 안 된다.

어떤 열등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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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나우가 이런 포즈를 취하더니 찍어달라고 했습니다. 유치원에서 배운 동작인 모양입니다. 저로서는 정말 부러운 유연성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아무튼 이 사진을 찍어서 그냥 보관만 하고 있었는데, 어제밤에 나우가 이 사진을 보여달라고 하더군요. 보여주었습니다. 사진을 보며 나우가 한 마디 하더군요.

“삼각형이다.”

순간 저는 모종의 열등감을 느꼈습니다. ‘이 녀석은 구도라는 말도 모르면서 구도를 보는구나.’ 하는…

돼지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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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_아빠. 내가 돼지코 보여주까.
__그래.
__아빠. 봐봐.
__하하. 멋지다. 사진찍어주까.
__응.
__또 해봐.
__이렇케.
__응.
__또 해봐.
__이 렇게.
__응. 어떻게 나왔나 볼래.
__응.
__어때. 잘 나왔어.
__응.
__맘에 들어.
__응.

하하. 바구니 만들어 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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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대에서 디비 자는 데 ‘우’가 깨우더니.

__아빠.
__응.
__바구니 만들 줄 알어?
__바구니?
__응.
__글쎄.
__아빠. 바구니 만들어 줘.
__아빠 바구니 못 만드는데…
__아이, 빨리 만들어줘.
__알았어. 색종이 가져와.

해서 바구니를 만들어 주었겠다. 잠도 깨고 해서 거사를 치루는 데
‘엽’이가 쪼르르 오더니

__아빠.
__응.
__나도 바구니 만들어줘.
__지금?
__응.
__알았어. 색종이 가져와.

해서 또 거사를 치루다 말고 바구니를 만들어 주었겠다.
맘 놓고 일을 보는데 밖에서 들려오는 소리.

__엄마.
__응.
__이거 오릴 줄 알아?
__몰라.
__아이, 엄마 이거 오려줘.
__아빠한테 해달라고 그래.
__알았어.

하더니 쪼르르 달려 온다.

__아빠. 이거 오려줘.
__그게 뭔데.
__이거, 응 하트하고 별하고…응 또 이거하고

해서 보니 그런 모양이 새겨진 자를 들고 있다.
할 수 없이 자를 색종이에 대고 칼로 도려냈다.

사진은 그 결과물이다.
그나마 꼬맹이가 자서 그렇지.
안 그랬음 저런 바구니를 세 개나 만들 뻔 했다.
역시 자업자득!
혹은 애 셋 아빠의 가혹한 운명.

상처가 아문 자리…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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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는 이게 상처야. 더 이상 아프지는 않아. 하지만 흔적은 남아.”

라고 말하며 제 팔뚝의 상처를 보여주던 친구가 있었습니다.

그 때는 그 비유가 참 멋있다고 생각했었습니다.

이제 와 다시 생각해 보니, 다 나아서 아프지 않은 자리는

상처가 아니라 ‘흉터’라고 해야 하는 게 맞는 거 같습니다.

사람이 사람에게 상처가 되고 사람이 사람에게 흉터로 남는

세상, 얼마나 더 ‘분신’해야 이 흉터가 지워지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