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추행
미학희롱
수학상납

1.
제 형보다 일찍 하교한 막내는 심심하다. 아빠한테 놀아달라고 해봐야 아무 소용없으니 컴퓨터 하다가 만화책 보다가 뒹굴다가 하면서 막내는 그냥 저 혼자 논다. 잘 논다. 집은 조용하고 세상은 평화롭다.

드디어 꿈에 그리던 형아가 학교에서 온다. 막내는 산소 만난 불길처럼 확 살아난다. 입을 열어 말도 안 되는 말을 중얼 거리기 시작하고 형아에게 어리광을 부리기 시작한다. 형아는 같잖아 하면서도 대적을 해준다. 둘은 잘 논다. 아빠는 셋을 제작해 놓기를 잘 했다고 잠시 착각을 한다.

이제 고학년 되었다고 친구들하고 산으로 들로 안드로메다로 싸돌아 다니느라 귀가가 점점 늦어지는 누나까지 돌아오면 집은 아이들 천하가 된다. 시끄럽고 어지럽다. 심약한 사람은 조심해야 한다.

2.
안 되는 말이란 건 이를테면 이런 거다.

형아, 100 더하기 1000은?
그걸 내가 말해주면 뭐 해줄 건데?
응, 똥 싸줄게, 형아 머리에.

**
형아의 컴퓨터에게도 맹세할 수 있어?
엉.
진짜지?
엉.
정말이지?

좋아. 이번 한번만 더 믿어 주겠어.

거 학부형 노릇하기 힘들다

엊그제 공교육 공장에 마지막 원자재를 납품했다. 첫째 입학식 때는 나도 이제 학부형인갑다 하면서 뿌듯한 마음이 콩알 맹키는 없지 않았으나, 셋째 차례가 오니 심드렁할 뿐이다. 입학식날 하늘만 푸르더라. 아무튼 뭐 시에서 첫째, 둘째 급식비는 지원해준다카고 또 셋째는 특기적성비를 얼마쯤 지원해준다카니 빈한한 가계에 큰 보탬이 되었음이다.

오늘 다저녁엔 낯선 사람으로 부터 문자를 받았는데, 내용인즉슨 아무개 아버지라카면서 합심해서 모범반을 만들어 가잔다. 모범반 거 조오치. 근데 이게 뭔 문자래? 연유를 확인해 보니 이거 이거 자식놈이 애먼 감투 하나를 쓴 것이었다. 내일은 팔자에 없는 임원 학부형 자격으로 아줌마들 틈에 섞여서 꼼짝없이 담임 선생한테 인사하게 생겼음이다.

가서 개성을 드러내자니 그렇고, 죽치고 앉아 있자니 그렇고, 변란이 따로 없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