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전남편

봄날, 삶의 기억이 아무렇게나 으깨지고 있다
이 폐허가 된 기억을 쌓으려고 나는 살았는가
내게도 바람과 통정하던 시절이 있었으니
그 시절은 오랜 지병과도 같다
나는 바람의 전남편이다
불어라 나는 이제 늙어 기억의 야적장이 되었다
불어라 바람이여 나의 창녀 나의 전처여
나는 바람도 의미도 품을 수 없는 거미줄이었다
오늘은 날이 좋으니 기억이나 빨아 널어야겠다

봄나무

지난 해 언젠가 인부들이 아파트 단지의 나무들을 마구 자르고 있는 게 보였다.
알아보니 새로 부임해 온 관리소장이 조경차원에서 자르라고 지시를 했다 한다.
마음에는 무지 안 들었지만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 갔다.
베란다에서 밖을 내다보다가 저 나무가 눈에 들어와 사진을 찍었다.
나무들이 마구 연초록을 밀어올리는 봄인데 아파트 곳곳에 저런 불구의 나무들이 서 있다.

부활절 아침

아이들 등쌀에 단발 고무줄총을 급조하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린다.
아이들 다 데리고 13:30까지 성당으로 오라는 아내의 명령이다.
물론 나는 삐딱하다.
“왜? 내가 왜 그래야 하는데?”
아내가 재빠르게 대답한다.
“계란 준대.”
“오, 계란을 공짜로 줘? 그럼, 가야지. 알았어.”
전화를 끊고 나니 왠지 당했다는 느낌도 들고
내가 사실은 퍽 단순한 인간이라는 자각도 든다.

계란 얻어 먹으러 가려면 앞으로도 70분이나 남았다.
이 사실을 공표하면 저것들이 좋다고 시끄럽게 떠들어댈터이니
출발 직전까지 비밀에 부쳐야겠다.
그리고 오늘 밤에는 이렇게 써야겠다.
오늘 밤에도 낮에 먹은 계란이 바람에 스치운다

실수에 대처하는 아들의 자세

초등학교에 입학 한 지 한 달, ‘우리들은 일학년’을 떼고 4월 들어 읽기, 쓰기, 즐생, 바생, 슬생을 줄줄이 배우기 시작한 아들 녀석은 그 첫 주가 지나기도 전에 두 번이나 교과서를 제대로 챙겨가지 않아 담임 선생에게 전화가 오게 만들었다.

아니, 집에서 애 교과서도 안 챙겨주고 대체 뭐하자는 거예욧!
그러게 말입니다. 죄송합니다, 선생님.

그러나 어쩐 일인지 나는 녀석의 그런 띨띨함이 좋다. 지 어미의 전언에 의하면 교과서를 가져다 주러 가서 보니 녀석이 코를 훌쩍이며 울고 있더란다. 참으로 아쉽고도 안타까운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이를 테면 큐대 좋고, 다이 좋고, 자세 좋고, 각도 좋고, 회전 좋고, 그리하여 거의 예술구 수준으로 쓰리 쿠션을 돌렸는데 아뿔싸 막판에 그만 쫑이 나버린 거다. 학생이 어쩌다 교과서 따위는 잊고 올 수도 있는 거 아니냐는 듯, 그게 무슨 대수냐는 듯 당당하고 뻔뻔하게 굴었더라면 더 바랄 게 없는데 말이다.

야, 이 녀석아. 훌쩍 거리고 있는 너를 바라보고 있는 또 다른 네가 있다고 생각해봐. 울고 있는 너가 멋있게 보이겠냐 아니면 씩 웃는 네가 더 멋있게 보이겠냐, 자고로 여자애들 앞에서 훌쩍거리면 인기가 급락한단다, 하면서 앞으로 그럴 땐 씩 웃으라고 말해주는데, 그러면 선생님한테 더 혼난다고 반성의 빛을 띠고 있어야 하는 거라고 지 누나와 지 어미가 극구 반대하고 나선다. 듣고 보니 그도 그렇다.

선생님 말씀 잘 듣는 착한 어린이라고 칭찬만 받고 무럭무럭 자라난 게 나는 못내 억울하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하루도 안 빠지고 그 빌어먹을 학교에 가서 월남에서 베트공들을 무찌르고 계신 백마부대 국군장병 아저씨들을 자랑스러워하라고 배운 나는, 국민교육헌장을 달달 외우고, 민방위의 노래를 합창하고, 떠들었다고 칠판에 이름 한 번 적힌 적이 없는 나는, 여자애들 고무줄 한 번 끊어본 적이 없는 나는, 무릎 꿇고 앉아 걸레에 왁스를 묻혀 교실 바닥에 광을 내면서 구멍 난 양말 때문에 영 스타일 구겼던 나는, 그런 내 국민학교 시절이 못내 억울하여 아들을 통해서 보상받으려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실로 문제 아빠가 아닐 수 없다.

생각해보니 선생님한테 야단 맞고 집으로 휙 가버린 여자애가 았었다. 안경 쓰고 피아노 잘 치던. 아, 저럴 수도 있구나. 저래도 되는 거구나. 그러나 끝끝내 일탈 한번 하지 못했던 내 꽃다운, 빌어먹을 소년시절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