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버스 정류장에서
딸아이가 내 비만의 본체에 올라타 쿵쾅거리며 나를 부팅하는 아침 마음이여, 다시 켜졌구나 지난 밤에도 나는 어딘가로 누군가에게로 치달았을 것이다 서로 모르는 사람들, 서로 딴 생각하며, 서로 멀찌감치 떨어져 버스를 기다리는 가을 아침의 정류장에도 지난 밤 내 마음의 갈대밭에 불던 쓸쓸한 바람이 불고 은행나무에서 졸속으로 터져 나온 낙엽들, 차들이 지나가며 일으킨 파장 속으로 붕 떠올랐다가 도로 양 사이드 경계석 밑으로 밀려나며 착지한다 생각해 보니 오직 나로만 평생을 살아야 한다는 걸 나는 너무 오랫동안 끔찍해했구나 언제든 어디서든 바람이 저 혼자 이리저리 부는 게 오류가 아니듯 내가 나로 사는 게 오류가 아니기를 수천 RPM의 자의식으로 기원하는 아침, 저기 버스가 온다 나를 신촌으로 실어갈 버스가 온다 나는 이 정류장에 나를 남겨두고 저 버스를 타고 떠날 것이다
소통 疎通
내가 먹은 것을 네게도 먹여주고 싶은 것, 소통에의 욕망이란 그런 것이다. 그러나 어쩌랴. 내가 좋아하는 그 옛날의 홍탁을 너는 냄새난다고 쳐다보기도 싫어하는 것을. 너 아구찜은 좋아하니? 아니면 비오는 날의 파전은 어때? 동동주는?
난 더 이상 애기가 아니예요.
텔레토비 보던 세 살 언이
헤헤 웃는 해가 떠오르자
_야, 애기다
하더란다. 엄마가 이 말을 듣고는
_애기는 니가 애기지
했더니, 언이가
_나 애기 아냣!
하더란다. 엄마가
_그럼 뭐야?
했더니
_나 어린이야!
하더란다.
끙
방금 나우가 전화를 걸어서는 울먹이며 말했다.
_아빠.
_어. 나우구나. 왜?
_있지. 기엽이가 기언이 국자로 세 대 때렸어.
_뭐? 아니. 왜?
_몰라. 그리고 나도 국자로 한 대 때렸어.
_알았어. 아빠가 지금 집에 갈게.
_응. 빨리 와.
무슨 일인지 몰라도 사단은 벌써 벌어졌나보다.
가서 자초지종을 듣고 혼낼 생각하니 우울하다.
끙.
p.s._______________________
세 피고인의 말을 들어보자.
나우: 응 내가 이렇게 팔하고 다리로 터널을 만들어가지고서 있는데 응 기언이가 지나가고 나서 응 기엽이도 밑으로 지나갈라고 해서 응 내가 못지나가게 했거든 그리고 나서 나는 방에 들어와서 몰라
기엽: 응 내가 소파 뒤에서 놀고 있는데 언이가 와서 내가 언이더러 쫍다고 말했는데 응 언이가 공룡으로 날 먼저 때려서 응 내가 국자로 응
나우: 그게 아니고 엽이가 나를 먼저 국자로 한대 때린 다음에 응
아빠: 너는 방에 들어가 있었다며.
나우: 응 내가 방에 들어간 거는 맞는데 으응 엽이가 내가 이렇게 만든 터널로 지나가서 내가 응 지나가지 말라고 그랬더니 응
아빠: 그 얘기는 조금 전에 했잖아. 그러니까 언이가 공룡으로 기엽이를 먼저 때렸어?
기엽: 응.
아빠: (언이에게)니가 엉아 먼저 공룡으로 때렸어? (언이 끄덕끄덕) 왜 때렸어?
기언: 응 언이가 엽이 공룡으로 때렸어.
아빠: 왜 때렸어?
기언: 응 공룡으로 때려쪄.
아빠: 어느 게 먼저야 언이가 공룡으로 엽이를 때린 게 먼저야? 아니면 엽이가 국자로 누나를 때린 거 먼저야? 아니면 엽이가 국자로 언이를 때린 게 먼저여?
나우: 나는 몰라. 나는 마루에 있고 엽이가 방에 들어가 있었는데 언이가 울어서 내가 가보니까.
아빠: 좀 전에는 니가 방에 있었다며?
[……]
이런 영양가 없는 취조를 한 30분간 하다가 포기하고
나란히 팔들고 서있기 벌 세운 다음에
니들이 같이 놀다가 같이 싸웠으니까 다 잘 못했어,
라고 말한 다음에 손바닥 한 대씩 때려주었다.
손들고 있을 때는 멀뚱멀뚱하더니만
한대씩 매를 맏더니 셋이 동시에 울음을 터뜨렸다.
뭘 잘 했다고 울어!
소리를 꽥 질러 주었다.
10분후 애들 손바닥은 멀쩡한가 살펴보았다.
멀쩡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