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미여인의 키스

마누엘 푸익, 송병선(옮김), <<거미여인의 키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7, 2004(13쇄)

짧게 쓴다. 재밌다.

그러므로 이하 사족.

몰리나: 동성애자, 여성성 강함, 미성년자 보호법 위반, 징역 8년, 즉 잡범, 영화광, 야부리 선수, 즉 이빨꾼, 같은 깜빵에 있는 발렌틴에게 영화 얘기를 해주고, 즉 썰을 풀고 나쁘게 말해서 그를 따먹음. 좋게 말해서 그를 사랑함. 사랑하게 됨, 그래서 나중에 게릴라의 총에 맞아 죽게 됨. 슬픔.

발렌틴: 혁명가, 즉 정치범, 판결대기중, 허구헌 날 몰리나에게 영화 얘기 해달라고 조름, 몰리나가 교도소장에게 구해온 맛있는 거 염치없이 얻어만 먹음, 몰리나가 교도소장에게 맛있는 거 얻어올 수 있었던 이유는, 국가가 몰리나를 이용해 발렌틴의 조직을 때려잡으려고 공작을 펼치는 와중이었기 때문임. 국가는 발렌틴의 음식에 설사제를 쳐넣기도 했음. 국가가 공작을 위해서 몰리나를 가석방하게 되자 몰리나에게 자기 조직에게 연락을 취해줄 것을 요청하여 결과적으로 몰리나를 죽음에 이르게 함. 몰리나가 죽고 난 뒤 전기고문을 당함. 간호사가 놓아준 몰핀, 즉 뽕을 맞고 애인 마르타를 꿈 속에서 만남. 슬픔.

소설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건 몰리나와 발렌틴의 대화임. 그 중 하나.

발렌틴: “그녀(마르타)는 날 몹시도 그리워했다는 뜻인데, 우리는 서로 깊은 애정을 느끼지 않기로 약속했어.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행동을 해야 할 순간에 서로를 옴짝달싹 못하게 하거든”
몰리나: “행동한다는 것은 도대체 뭐지?”
발렌틴: “행동한다는 것, 그건 목숨을 건다는 거야”
몰리나: “그렇구나……”
발렌틴: “누군가가 우릴 사랑한다는 생각을 우리는 절대로 할 수가 없어. 그건 우리가 살기를 원하는 것인데, 그러면 죽는 것을 두려워하게 돼. 아니 두려움이라기보다는 우리가 죽게 되면 고통 받을 사람이 있다는 것이 괴롭다는 건데……”

나는 이런 이유로 헤어진 커플을 알고 있다. 80년대에.

아주 지긋지긋하다. 국가보안법 철폐하라.

세계 사진사 32장면

최봉림 지음, <<세계 사진사 32장면>>, 디자인하우스, 2004(1판 2쇄)

부끄러운 얘기지만 나는 역사에 도통 관심이 없었다. 남의 탓 먼저 하자면 어린 시절의 교육 때문이었을 것이다. 곰이 마늘 먹고 인간이 되었다는 둥, 박혁거세가 알에서 나왔다는 둥, 형이 죽으면 동생이 형수를 데리고 산다는 둥, 소도는 죄짓고 도망가 숨기 좋은 곳이라는 둥 도통 이상한 소리만 해대니 역사란 참 현실하고는 거리가 먼 것이로구나, 했었다.

대학을 가기 위해서 국사를 배우기는 했었다. 그러나 그 때 외운 지식들은 말 그대로 단편적인 것이어서 지금도 내 머릿속에서는 빈 도시락 속에서 젓가락 달그락거리듯 시끄럽게 달그락거릴 뿐 체계적인 거 하고는 영 거리가 멀다. 선죽교에서 충신 정몽주가 악의 무리에 의해 철퇴를 맞고 테러를 당해 죽었는데, 이성계가 위화도에서 회군을 하고, 무악대사가 오백년 도읍지를 필마로 돌아들었다는 식이다. 내가 미친다.

가장 참담한 건 아직도 술에 취하거나 하면 “양이침범비전즉화주화매국”이라는 척화비를 외운다거나 성삼문 박팽년 말고 사육신이 또 누가 있더라, 하는 따위로 술주정을 하게 되는 경우다. 추태도 이런 추태가 없다.

남의 탓은 이정도로 하고 내 탓을 하자면 다 내가 못난 탓이다. 그래도 국사는 제도 교육을 받는 동안 지겹도록 들어서 대충 까막눈은 면했다 쳐도 세계사는 특히 쥐약이다. 세계사는 재수하면서 학원에서 들은 게 전부다. 지금 기억나는 건 딱 하나나. 세계 3대 법전은? 함무라비 법전.(다른 건 모른다.) 요즘은 일본, 미국, 유럽 등의 역사책을 읽어볼까 생각중이다. 어느 세월에 그러겠냐만.

무슨 까닭인지 하룻밤에 읽는 세계사, 한국사 이야기 100장면, 세계사 이야기 100장면, 이런 류의 책 지금까지 딱 한 권도 읽어 본적이 없다. 아마도 이런 책은 정통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 인지도 모르겠다.

세계 사진사 32장면 이 책도 우연히 읽게 된 것이다.

이 책을 펼치면, 중앙선(짝수쪽의 오른쪽과 홀수쪽의 왼쪽이 만나는 선)부근에 1년을 눈금하나로 나타내는 방식으로 하여 1820년부터 1960년까지 눈금이 그어져 있다. 보기 쉽게 하기 위하여 매 10년 마다는 긴 눈금을 그었고, 그 사이의 5년에 해당하는 눈금은 중간길이이다. 쉽게 ’30센티미터 자의 이미지’를 생각하면 된다. 그리고 32장의 사진이 제작된 해에는 굵은 선으로 표시했다. 폰트로 치면 볼드체다. 이 방법은 각 장에서 제시된 사진이 사진의 역사에서 어디쯤에 있는 건지 극명하게 보여준다. 혹은 그 사진이 사진의 역사의 한 획을 그은 사진이라는 의미를 전달하고자 했는 지 모르겠다. 아니면 편집자의 꿈보다 독자의 해몽이 좋은 건지도 모르고.

프랑스 사람 조셉 니세포르 니엡스(1765-1833)가 1816년에 “오목 렌즈가 달린 약 16cm의 정방형 암상자로 자기 방 창문 앞에 있는 가금장을 촬영”하여 ‘최초의 사진’을 만들었다하니 인류역사에 사진이 등장한지는 이제 190년이 조금 못되었다. 그 기간동안 그 많은 사람들이 찍은 그 많은 사진들 중에서 딱 32장만 골랐으니 그야 말로 ‘영재 중의 영재’들만 선발된 셈이다. 그 선발 기준을 평가할 만한 식견이 나에게는 없으므로 제대로된 선발인지 아닌지는 판단할 수 없다.

나는 이 책을 보먼트 뉴홀의 <<사진의 역사>>와 비교하며 읽었다. 저자도 뉴홀의 책을 자주 언급하거나 인용한다. 더불어 <<발터 벤야민의 문예이론>>도 옆에 두면 좋다. 역사라는 게 하루밤에 읽어서 알게 되는 게 아니니 몇 번은 다시 읽어볼 생각이다.

여담으로 내 인생의 32장면을 뽑아봐야겠다. 처음으로 외롭다고 생각한 날, 처음으로 몽정한 날, 처음으로 대가리 박은 날, 결혼한 날, 내 자식 태어난 날, 술먹고 처음 필름 끊긴 날, 뭐 찾아보면 많겠지.

무거운 단어들

나는 그들의 입에서 나오는 단어들이 무거워 조용히 귀를 닫았다 그러자 이번에는 눈으로 무거운 단어들이 들어왔다 나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러자 이번에는 그 불길한 단어들이 내 피부를 헤집고 들이닥쳤다 결국 내 몸은 그 무거운 단어들 때문에 납작해졌고 지금도 납작하다 이리하여 나는 납작하게 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