젖병

1998년 8월, 나우가 태어난 후 2004년 5월, 지금까지 거의 만 6년이 다 되어가는 동안 우리집 주방 한켠에 자리잡고 있던 게 젖병이다. 더러 삶다가 태워 먹기도 하고 없어지기도 하고 해서 새 젖병을 사기도 했겠지만, 거개가 첫애부터 셋째까지 물려쓰고 있는 것이니 젖꼭지는 숱하게 갈았으되, 어쩌면 4년전에 나우가 물고 자던 젖병을 바로 어제 밤까지 언이가 물고 잠들었을 터.

오늘, 아이들의 할머니가 ‘크게 뜻한 바’가 있어 우리집에 오셔서 그 젖병을 다 치워버렸다. 젖병 떼기가 시작된 것이다.

방금 전까지 언이가 우유달라, 우유달라, 젖병에 닮긴 우유가 아니면 바나나도 싫고, 업어주는 것도 싫다, 나는 우유 줄 때까지 울란다, 하면서 통곡에 통곡을 하고, 땡깡에 땡깡을 부리다가, 종국에는 울다 지쳐 잠이 들었다.

그게 15분 전이다. 지금 집안이 아주 조~용하다. 내가 이거 쓰느라고 타이핑하는 소리가 제일 큰 소리다. 사실은 이 정적을 틈타 나도 얼른 들어가서 눈을 붙이는 게 좋다. 언이가 언제 깨서 울지 모른다. 그러면 오늘 밤에 잠은 다 잤다.

그나마 지금은 곱게 잠든 축에 속한다. 이 녀석이 자다가 깨서 우유달라고 하는 데 얼른 안가져다 주면 아주 가관이다. 깽판도 그런 깽판이 없다. 무서운 것도 없고 겁나는 것도 없느니 우유 줄 때까지 울 것이다.

우유 줄 때까지 우유 외쳐라, 우유 줄 때까지 우유 외쳐라.

그런데 어쩐다냐, 언아. 어른들이 너에게 더 이상 젖병을 주지 않기 위해 합심하여 구국의 강철대오로 대동단결한 것을. 그러니 언아, 미안하지만 이번에는 니가 좀 져 줘야겠다. 그리하여 마침내 우리집에서 젖병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좀 해보자.

생각해 보면 아내는 무려 6년 동안을 잠 자다가 일어나서 아이들에게 우유를 타 준 셈이니, 엄마라고 큰 소리 떵떵칠만하다. 나? 물론 나도 애 셋 아빠니 더러, 아니 아주 가끔 자다가 우유를 타주기도 했었다. 대개는 성질이나 팍팍 부렸지만.

아, 지금 이따위 블로그가 문제가 아니다. 언이 깨서 울기 전에 얼른 자야한다. 이 전격 젖병 떼기 작전이 어떻게 진행될 지 바야흐로 (나만) 흥미진진!

경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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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년 5월 2일, 종마목장

길을 걷다가 걸음을 멈추고 너는 본다.
무얼 보는가. 무엇이 그리 경이로운가.
네 시선 끝을 따라가 보면
내 눈엔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구나.

내 눈은 늘 보던 것만 보고
내 귀는 늘 듣던 것만 드고
내 입은 늘 하던 말만 하고

나는 이제 낡았구나.

15. 딴소리하면 웃긴다

다음은 어는 소설에서 발췌한 구절이다.

어부는 선착장에서 늙은 구장을 만났다.
인자 나가는가?
예, 인자 나가요. 밥은 자셨소?
구장은 그의 아버지의 친구로 친구들이 모두 죽고 홀로 남은 이가 흔히 그렇듯 훨씬 더 늙어 버린 관계로 잠시 정신이 오락가락했기에 그는 목소리를 잔뜩 높였다.
요즘 갈치가 무는가, 돔이 무는가?
암것도 안 무요.
이, 그라믄 나도 한 마리 좀 낚어다 주소.
어르신, 바다에서 고기가 한 마리도 안 문단께라.
죽어야 쓰는디.
정신의 오락가락은 말의 오락가락으로 바뀌기 쉬웠다.
무슨 말씀이요. 오래 사시야지.
죽는 것이 좋아. 죽어 삐린 것이 좋당께.
죽는 것이 뭐가 좋습니께. 이승 강아지가 죽은 정승보다 낫다고 안 그랍디여.
다들 죽어 삐리잖어. 죽어 뿔고 나서 죽어 간 디가 고약타고 돌아온 사람이 있능가?
그는 낚시 채비들 내려놓고 늙은이를 내려다봤다. 눈물과 눈곱이 항시 머물러 있는 그곳에는 그러나 보기에 무슨 기운이 지나가는 듯도 했다. 이제 죽어야 할 때를 알아차린 듯도 했고 어쩌면 산 귀신이 되어 가는 듯도 했다.
이? 봤냐고. 거그가 싫다고 온 사람을.
그 말도 맞소.
어부는 대답을 작게 했다.
어부는 그쯤에서 대꾸를 멈추고 배의 밧줄을 끌어당겼다. 늙은이 만큼이나 늙은 배가 느릿느릿 다가왔고 그는 잠시 배의 움직임이 구장의 걸음걸이와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배 갑판이 간밤의 이슬로 촉촉해서 늙은이의 입에서 끊임없이 흘러내린 침을 꼭닮아 있었다.
그렇다믄 어이, 나 참짱애(장어)나 한 마리 낚어다 주소이? 그놈 이나 한 마리 과서 묵으면 좀 살 것 같네 이.
늙은이는 아주 짧은 순간에 죽을 것에서 살 것으로 돌아와 있었다.
그놈을 들지름 쪼깜 놓고 뽁아 갖고는.
늙은이의 말은 거기서 멈췄다. 입을 다문 게 아니라 기계소리에 묻힌 것이다. 어부가 그의 오래되고 작은 배의 기계를 돌리고 나서도 늙은이의 말은 뭐라고 구시렁구시렁 계속되었던 것이다. 늙는다는 것은 어쨌거나 젊은 것들이 짐작하기 어려운, 죽음이나 또 다른 삶에 대한 쪼가리 같은 샛길을 발견해 가는 중이라 할 만한데 그래서 그들은 수시로 이곳을 떠나 저곳으로 잠시 다녀오는 버릇이 생긴 것이다. 여전히 늙은이는 서서히 꽁무니를 빼는 배를 바라보며 뭐라고 궁시렁대는 중이었다.*

정치인들이 가끔 웃기는 건 딴소리를 잘 하기 때문이다. 딴소리를 잘 하려면 일관성이 없어야 하고 조금전에 했던 말을 붕어처럼 잊어버리면 된다.

*출처: 2000년도 24회 이상문학상작품집 <돗낚는 어부> 중에서, 한창훈 281~282쪽, 문학사상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