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박, 혹은 남의 집 모니터로 보는 따위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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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hotoed by 걸식이

집은 멀고
아내에게 죽을 일은 가깝다.

알콜이 약진하는

(사이에 끊어진 필름…보이지? 안보여? 보여야 하는데…)

일어나보니 아침이다.
얼른 집에 가서
이걸 지워야겠다.





먹통 개통

따위 핸드폰 재개통! 번호 전과동! 카메라 없음. MP3 안 됨. 즉, 꼬짐.

어린이날

언이가 집에서 젖병떼기 특수 훈련을 받고 있는 동안, 이미 오래 전에 젖병을 뗀 나머지 선수들은 어린이날을 맞이하여 “품격”을 있는대로 높여서 미술관으로 출동했다. 어린이 날을 맞이하여 세계 각국의 어린이들의 그림을 모아 모아서 전시중이라는 일급첩보를 입수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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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우와 기엽이 그리고 엄마가 그림을 감상하며, 21세기의 새로운 미술사조와 최근 프랑스 화단의 화풍 및 한국미술시장의 불황에 대해서 심오한 의견을 교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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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옆 동물원”하고는 아무상관 없는 미술관 찻집에서 코코아와 아이스 녹차와 커피를 마셨다. 다른 가족이 싸온 볶음밥을 얻어 먹다가 찻집주인에게 쫑크 먹었다. 교양없다고…그때 처마 끝에서 풍경이 땡강땡강 울었다. 시끄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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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 경내를 산책 중인 모자의 단란한 한 때

젖병 2

어른들이 어느 날 느닷없이 내린 모진 결정에 아이는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그야말로 온몸을 던져 성심껏 성의껏 저항했다. 아이는 정말 열심히 울었다. 하긴 제 까짓게 할 수 있는 게 그거 말고 또 뭐가 있겠는가. 부조리한 세상! 그저 우는 시늉만 해도 득달같이 가져다주던 우유를 이제는 아무리 열심히 울어도 주지 않으니 부조리도 그런 부조리가 없고 불합리도 그런 불합리가 없을 것이었다.

오늘 아침에 아이의 할머니는, 아이가 울다 지쳐서 설핏 잠들어서도 “우유…우유…”하면서 중얼거렸다고 말했다. “얼마나 애처로운지 아니…”라고 덧붙이시는 걸 잊지 않았다. “그 애처로운 걸 왜 시작하셨어요. 어머니. 그냥 애가 더 이상 안 먹겠다 할 때까지 주구장창 먹이면 안 되나요.” “예전에 그렇게 키운 아이는 서당 가서 천자문 읽고 와서는 제 어미 앞가슴을 풀어헤치고 젖을 먹었다고 하더라. 어차피 언젠가 한번은 거쳐야할 과정이란다.” 나는 할 말이 없었고 마음이 짠했다.

이제 이틀이 지났다. 나우도 기엽이도 이런 과정을 한 번씩 거쳤다. 그때도 내가 이랬던가. 잘 모르겠다. 하기는 밤에 나 자는데 시끄럽지만 않으면 애가 젖병을 떼거나 말거나 나하고는 ‘무관한’ 일이었을 것이다. 내가 아이 젖병하나 끊는데 이 유난을 떠는 건, ‘죽이는’ 꿈이나 꾸면서 잠들었다가 애 울음소리에 깨어나 보면 우는 아이 달래려고 쩔쩔매고 있는 ‘노인네’를 보는 일이 안쓰럽고, 마음 약해서 우는 아이를 업어주고 있는 아내가 안쓰럽고, 그래서 그런 것뿐이다.

자동차 사고는 ‘하이카’가 다 알아서 해주고, 아이 키우는 건 아내가 다 알아서 해주고…그러면 얼마나 좋은가. 에구구. 잠을 설쳤더니 졸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