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잠 늘어지게 주무신 사모님께서 아침을 차려주신다. 감사히 먹겠습니다아.
3호: 미역국은 없어?
사모님: 줄까?
3호: 네.
사모님: 엽이는?
2호: 주세요.
사모님: 파더도 드려요?
따위: (스트롱리)안 먹어! (사이) 남편의 권위가 팍팍 느껴지지?
사모님: 별로.
3호: 별로.
2호: 전혀.
그런데 1호는 어디 갔을까?
늦잠 늘어지게 주무신 사모님께서 아침을 차려주신다. 감사히 먹겠습니다아.
3호: 미역국은 없어?
사모님: 줄까?
3호: 네.
사모님: 엽이는?
2호: 주세요.
사모님: 파더도 드려요?
따위: (스트롱리)안 먹어! (사이) 남편의 권위가 팍팍 느껴지지?
사모님: 별로.
3호: 별로.
2호: 전혀.
그런데 1호는 어디 갔을까?
1.
5월의 나뭇잎을 11월까지 운반해 온 나무들 사이에 5월의 이삿짐을 11월까지 날라 온 사람 하나가 나무 코스프레를 하며 서 있습니다. 관념의 가지에는 세속의 칼로리가 들어 있지 않습니다. 11월의 나무가 끝나면 12월의 나무가 시작될 것입니다. 우리 이러지 말고 르불규칙 용언의 정신분열적 활용에 대해서 주술관계가 불명확한 문장으로 이 시대가 다 지나갈 때까지 얘기해 볼까요.
2.
소녀시대의 아홉 멤버가 다 내 후궁이었으면 좋겠다. 내 그들을 단체 관광으로 맞아 이 청포도적 호두를 까먹으면 두 손에서 열불이 나도 좋으리. 여봐라, 게 아무도 없느냐, 하면 싸이가 말춤을 추며 달려와 아뢰옵기 황공하오나 오빤 내시 스타일!, 을 외치며 머리를 조아리고… 막,
3.
아무 말도 하지 마라. 무슨 말을 하든 나는 그 이하를 말하게 될 것이다. 아무 짓도 하지 마라. 무슨 짓을 하든 나는 그 이하를 하게 될 것이다. 그 이하의 말과 그 이하의 행동, 이것이 나의 상식이며, 나의 이념이며, 나의 언행일치이다. 주체가 물이 되면 타자는 물에 빠져 죽고, 주체가 불이 되면 타자는 불에 타 죽을 것이로되 당신의 똥구멍은 달았다.
4.
신은 과연 지금 여기를 모니터링 하면서 지금 거기도, 이를테면 지금 블랙홀의 내부도 모니터링하고 있을까요. 신은 과연 지금 여기를 모니터링 하면서 그때 여기도, 그러니까 이를테면 신석기시대 때 여기도 모니터링 했고있는가요. 그러면서 때려 죽일 놈들을 필터링 했고있는가요. 컴퓨팅 능력 쩌네요.
5.
태양계가 안드로메다를 중심으로 우주를 한 바퀴 도는데 걸리는 시간을 원 코스모스라고 합니다. 이 당구사적 전환기에 새로운 시간의 단위를 정하는 건 순전히 내 마음이지만 천체물리학적으로는 물론 아무런 의미도 없습니다. 아쉬우면 이 시대가 후련하게 다 지나가고 난 다음, 한두 코스모스 뒤에 만납시다. 그때를 대비해 나는 나무 코스프레 사진 몇 장, 구름 저편 순수초월적 코스모스 클라우드에 업로드해 두겠습니다.
“아빠, 맛탕 드세요.” 해서 먹으러 나갔다. 나, 방에서 예술하고 있었다. 맛탕 맛있다. 아이들, 식탁에서 포크에 맛탕 찍어 자꾸 후라이팬 쪽으로 간다. 가서 요리당인지 꿀인지 찍어먹는다. 저 질긴 욕망을 누가 막으랴. 야 이놈들아 육신의 당분만 탐하지 말고 영혼의 당분을 탐하란 말이다. 영혼으로 욕망을 단일화하란 말이다. 그리하여 나는 솔선수범하여 맛탕을 책에 찍어먹었다. 껍질을 벗기지 않고 요리해 껍질 벗겨가며 먹기 귀찮다고 투덜거리면서./아내는 말했다, 껍질벗기면 고구마 형체가 다 흩어진다고, 껍질에 미네랄이 많은데 내가 껍질 싫어해 미네랄이 부족해 성격이 그렇게 괴팍한 거라고. 그러면서 내 마음이 찢어지게 나를 노려봤다. 나는 이승복 어린이가 공산당보다 더 싫어한 게 있었으니 그것은 다름아닌 껍질이었다고 응수했다. 그러면서 4월도 알맹이만 남기고 껍데기를 벗어버렸던, 해서 그곳까지 드러냈던 저 고릿적 아사달 아사녀를 생각했다. 아, 나는 고구마의 그곳을 드러내 부끄럼 빛내며 맞절을 해가며 맛탕을 책에 찍어 먹었다. 그런 다음에 말 한 마디 툭 던져 아내의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려 놓고 아내가 자기 마시려고 타놓은 커피를 성공적으로 슬쩍해서 방으로 왔는데—아내는 2초만에 자신이 당한 걸 알아차렸다—커피가 너무 묽어 돌려주었다. 길 건너 중국집에서는 개업 11주년 기념으로 짜장면을 4,000원에 팔고 있다.
경부고속도로 상행선 서초에서 잠원 방향 우측 방음벽 위 표지판에 주거지역, 줄 바꿔서, 소리제한이라고 씌어 있다. 주거지역은 장소를 나타내는 부사어이며, 소리는 목적어이고 제한은 동사라는 생각이 반사적으로 떠오른다. 나는 안 된다.
서울추모공원, 줄 바꿔서, Seoul Memorial Park라고 씌어 있는 표지판을 보고 서울을 왜 추모하지, 서울이 죽었나, 서울이여 명복을 빈다, 라고 생각한 게 불과 몇 킬로미터 후방이었다.
그러니 이 모양이다.
버스가 남산1호터널을 지나 백병원 앞에 도착한다. 거기서 나는 또 중앙차로 버스전용이라고 씌어 있는 표지판을 본다. 보고 만다. 의식 속에서 메타-언어가 구더기처럼 들끓는다. 가끔 그런 날이 있다. 문법이 언어에 선행하는 날.
멈춘다. 멈추지 않으면 길이 없다.
스물하나를 세는 것이 왜 그리 중요한가. 거리에서 흔하게 마주치는 21세기음악학원, 21세기공인중개사, 21세기의원, 21세기약국, 21세기속독학원 따위의 간판들을 그는 결코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서였을 것이다, 그가 매번 여자에게 차인 것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