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물 정 자에 대한 어떤 기억이
복정역을 지나는데 합정역을 떠오르게 한다

틈만 나면 틈이 나지만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다
뚫고 나갈 틈도 없다

단어 하나 토씨 하나
헤집어 들여보낼 수도
토해 내보낼 수도 없다

도무지

내가 틈이고
내가 균열이고
내가 갈라짐이다

그러나 틈이 나면
잘 하면
어쩌면
이 벽이
이 문이

생강빵등산맨

생강을 다듬으며 생각한다
생강빵맨은 생강이면서 빵이면서 맨이구나
큐브의 도를 나는 결국 완성하지 못할 것이다
생강빵맨 생각이 오늘 내가 한 생각의 전부였다
나는 물질이면서 슬픔이면서 정신이었다
물질을 다듬는 심정으로 산길을 걸어다닐 것이다
나는 큐브 맞추는 물질이다
마지막 서술어
슬프다

그날 그날

어느날에는 이 변기 속 똥물이 와락 그리워질지도 모른다 나는 누구인가 싸고 싸고 내려도 내려도 싸지지 않고 내려지지 않는 이…

몇 개의 감탄사와 말줄임표로 버티는 나날

그날 그날

생강

일요일 이 시간이면 멸치 육수를 낸다. 이것저것 넣고 끓이다가 맛을 본다. 약간 쓰다. 이 쓴 맛은 멸치 내장에서 비롯된 것인가. 모른다. 육수는 끓고 어제도 그제처럼 밤을 도모한 식구들은 아직 잔다. 육수 맛을 본다. 생강을 평소보다 한 조각 더 넣었음에도 생강 맛이 약하다. 국물에 우러난 생강맛은 국물에 우러난 생강맛이다. 그 맛이 약하다. 지난 주에도 맛이 이래서 오늘은 특별히 생강을 한 조각 더 넣었는데도 이렇다. 지난 봄에 잘 다듬어서 조각 내어 냉동실에 보관해 둔 생강은 이제 생강이 아니라 얼어 말라 비틀어진 생강 미이라인가 보다. 자유가 아니면 생강을 달라.

시간이 엉켜 있는 페이지

일요일 새벽. 또 잠에서 깬다. 다 포기하고 그가 가기 전에 쓴 글을 읽는다. 2011년 8월 15일의 글 다음에 8월 17일이 글이 있고, 그 다음에 8월 16일의 글이 있다. 문제의 페이지는 62, 63쪽이다. 편집상의 실수인지 뭔지 모르겠다. 뭐 중요한 것도 아니다.

한 겹 전기 장판이 아니었다면 지난 새벽은 못내 추웠을 것이다. 빈 속이 쓰리다. 멸치 육수 내서 국수를 말면 오전은 다 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