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기고 시끄러운 신호 sparse & noisy signal

사건의 지평선 망원경 Event Horizon Telescope 으로 블랙홀 사진을 찍은/합성한 Katie Bouman이 칼텍 Caltec 에서 강연하는 영상을 유튜브에서 보았다. 무슨 말인지 하나도 알아들을 수 없었다.

다만 그가 처리해야 했던 신호가 아주 성기고 아주 잡음이 많았다고 말하는 것은 용케도 알아들었고, 그 표현에 뭔가 시적인 데가 있다고 느꼈다. 과학은 시하고 내통하는 것이라고 내 마음대로 아무거나 아무데나 갖다붙이고 싶어졌다. 당신의 신호는 가물가물하고, 게다가 주변은 시끌시끌하다니! 소주 한 병의 안주 단어로는 손색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얘기, 아무한테도 하지 않는다. 이런 얘기, 듣는 귀가 이제는 없다. 당신에게 내 근황을 말해주겠다. 나는 물리학 책 읽고, 수학 책 일고, 철학 책 읽고 그러면서 지내고 있다. 심오한 거 읽는 거 아니다. 정적분이나 상대성이론, 플라톤의 동굴의 비유, 뭐 이런 거 읽는다. 벚꽃 구경도 좀 했다. 시집 같은 거 안 사고, 소설도 읽지 않는다. 아이폰에 메모는 곧잘 하는데 따위넷은 잊었다.

애 셋 가운데 두 분은 대학생이 되셨다. 어엿한 거 같지는 않다. 막내는 엊그제  4.16에 제주도에 있었다.

아르투르 쇼펜하우어(지음), 김욱(옮김), <<쇼펜하우어 문장론>>, 지훈, 2005.12.26(초판 1쇄), 2008. 2. 29(초판 6쇄).

쇼펜하우어는 헤겔이가 몹시 꼬왔다. 별것도 없는 놈이 잘 나갔기 때문이다. 그래서 깠다. 다음의 인용문을 읽어보자.

“이 같은 목적[무의미한 단어를 사상으로 위장한 후 독자의 지갑을 열게 하려는]을 달성하고자 그들은 의미를 알 수 없는 단어를 둘러대고, 복잡한 부호 등을 활용해 마치 지성인인 것처럼 행세한다. 이것은 그들에게 결코 지성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반증하는 증거에 지나지 않는다.” (102쪽)

“지금도 이해할 수 없는 것은 그들의 호주머니 속에 이런 종류의 가면이 수도 없이 저장되어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보다 더 중요한 사실은 이 같은 현상이 독일에서만 통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독일에 이런 가면을 소개한 장본인은 피히테였고, 셀링이 완성했으며, 헤겔을 통해 전성기를 맞게 되었다. 현재까지도 그 매출은 엄청난 수치를 자랑하고 있다.” (103쪽)

“나[쇼펜하우어]는 칸트에서 중단된 이 궤도를 다시 한번 연장하려고 시도했다. 그러나 칸트와 나의 중간에 해당되는 피히테, 셸링, 헤겔 같은 사이비 철학자에 의해 주전원의 원리가 완성되어버렸다. 여기서 그들과 함께 달린 일반 독자들은 이 끝없는 원운동의 출발선상에 자신들이 서 있다는 처참한 사실을 곧 깨닫게 될 것이다.” (213-214쪽)

쇼펜하우어는 시니컬한 사람이다. 내가 받은 인상이 그렇다. 당대의 베스트셀러 따위에 눈돌리지 말고 고전을 읽으라 하고, 사색하라 하고 간결하게 쓰라 하고, 그랬다.

옮긴이는 “이 책은 쇼펜하우어 만년(63세)의 저작인 인생론집 <<여록과 보유 Parerga und Paralipomena>>(1851) 중에서 사색, 독서, 저술과 문체에 관한 부분을 옮기고 제목을 <<쇼펜하우어 문장론>>으로 정했음을 밝혀둔다”라고  밝혀두었다.

먹구 대학생

“먹구 대학생”. 예전에 어머니가 내게 하시던 말씀이다. 자식 둘을 대학에 보내고 보니 이 말이 무슨 뜻인지 이제 알겠다. 기억이 하얗다.

25시

’25시’란 낱말은 이제 거의 쓰이지 않는다. 80년대에는 무려 ‘시어’로도 쓰였다. 나는 한번도 써본 적이 없다. 마르크스. 엥겔스.

일기

카톡으로, 누군가의 대표이사 취임 소식을 전해 듣고, 카톡으로 누군가의 부음을 듣는다. 일요일 아침이고 아내는 성당에 간다. 큰 아들은 친구집에서 자고 온다 했다. 막내는 식탁에서 빵 먹는다. 딸은 잔다. 입안에 남은, 식은 커피맛이 쓰다. 축하합니다, 라는 문장이 단톡방에 몇 개 뜬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라는 문장이 잠시, 다른 단톡방에 줄지어 뜬다. 나는 누군가의 블로그의 오래 전의 글 몇 개를 검색해서 읽는다. 가슴 아픈 글이다. 나는 위로하는 문장도 축하하는 문장도 쓰지 못한다. 고양이는 경계를 늦추지 않는다. 블라인드를 뚫고 들어오는 겨울 햇살이 하얗다. 나는 부끄럽고 죽고 싶고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