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자식키격문

가소롭도다. 니가 아직 일개 휴먼으로서의 형상도 갖추지 못한 고작 한 알의 미미한 수정란이었을 때조차, 이 아버님은 이미 사서삼경을 마스터 하시고, 기소불욕물시어인을 실천하시매 그 인품의 고매하심과 그 지성의 번뜩이심이 세계만방은 물론이거니와, 저 아득한 우주의 사건의 지평선 너머에까지 익히 능히 알려진 분이거늘, 니가 이제 고작 그까짓 육신의 키가 이 아버님보다 고작 겨우 애걔 몇 밀리미터 높아졌다 하여, 아버님 소자 오늘 부로 아버님 키의 저보다 쪼매남을 삼가 업수이여기겠나이다, 하는 낯빛을 지으며 씩 웃다니, 내 도무지 분하고 도무지 원통하고 도무지 치가 떨려, 결코 가볍지 않은 네 죄를 묻자면 22세기까지 네 놈의 후회가 이어지도록 아주 가늘고 질기고 긴, 긴 벌을 내려야 마땅할 것이로되, 다만 너와 나 어쩌다 부모자식으로 만난 연을 특별히 이번 딱 한 번만 감안하여, 앞으로 석 달하고 열흘을 굶는, 도무지 벌 같지도 않은, 그냥 애들 소꿉장난 같은, 경미한 벌을 눈물을 머금고 내리는 것이니, 너는 오로지 반성하고 참회하고 회개하여 다시는 그런 어처구니 없는 언행을 하지 않도록 수신제가치국평주둥아리 해야 할 것이다. 알겠느냐, 이 20세기에는 존재치도 아니하였던 여드름 덕지덕지 중3 막내놈아.

착한 일 V

병원 간다. 내 피부는 백옥 같은데 저 자식 피부는 누굴 닮아 저 모양인지 모르겠다. 지 엄마 닮았나 보다. 피부과에 사람이 많다. 아주 줄을 섰다. 접수하면 한 시간 기다려야 한다. 못한다. 못 기다린다. 귀찮은데 잘 되었다. 그냥 가자. 무좀이 뭐 죽을 병도 아니고.

피부과를 돌아나왔는데 아 글쎄 이 녀석이 이번에는 바로 옆 소아청소년과로 쏙 들어간다. 목도 아프단다. 뭐 그러시다면야. 이 병원은 좋다. 환자가 한 명도 없다. 아픈 어린이도 없고 아픈 청소년도 없는 평화로운 토요일이다. 나는 마음이 아주 환하다. 아들 녀석이 바로 진료실로 들어간다. 나는 소파에 앉아 기다릴 참이다. 

안에서 의사 선생님이 편도선이 어쩌구 염증이 저쩌구 하는 소리가 들린다. 들어가 봐야겠다. 아임 유어 파더. 선생님이 아이에게 피부과 왔었느냐고 물으신다. 내가 끼어들어 설명한다. 선생님이 허면 무좀약도 주시겠다 한다. 아주 좋다. 착하게 살아야 한다. 원 하스피탈 투 프리스크립션즈, 원 스톤 투 버드즈.

나는 의사 선생님과 간호사 선생님을 웃겨드린다. 먹는 무좀약이 간에 무리를 줄 수 있다 하길래, 우리 아들 간 되게 안 좋다고 말해 웃겨드리고, 무좀균이 옮는다길래 아들 녀석에게 나가살라고 말해 웃겨드린다. 뭐 아주 재밌지는 않지만 중간은 가는 유머다. 위트면 좋겠지만, 위트 사라진지 오래다.

의사선생님이가 웃으시다가 아이에게 말씀하신다. “아빠 재밌으시다. 하하.” 아이는 웃지도 않고 지 아빠가 창피하다는 듯 무심하게 대꾸한다. “매일 보면 질려요.” 하긴 나도 내가 질리는데 넌들 아니 질리겠느냐. 오늘 착한 일은 좀 실패다, 마침표.

오늘의 문장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과 의견이 다르고, 헤겔은 칸트와 의견이 다르다.”

좋은 문장이다. 철학사에 이름을 남긴 A, P, K, H가 다 들어 있는, 보기 드문 명문이다. 자주 인용해야겠다.

명절이다. 부모는 늙고 병들고, 자식은 크고 철드는 명절이다. 명절은 명절적으로 보내는 게 좋다. 명절적으로 보내는 명절이란 어떤 명절인가. 어디에 있든 누구와 있든 오늘이 명절이라는 걸 의식하고 각자의 하루를 잘 보내는 것이 명절을 명절적으로 보내는 것이다. 각자에게는 각자의 명절이 있다. 각자의 안이비설신의 명절이 있고, 각자의 색성향미촉법 명절이 있다.

에릭 호퍼(지음), 방대수(옮김),<<길 위의 철학자>>, 2014(개정판1쇄), 이다미디어

“나는 1920년 4월에 로스엔젤레스에 도착했다.”
“하룻밤 사이에 나는 온상에서 빈민가로 굴러떨어지고 말았다.”
“저축한 돈이 얼마간 있어서 나는 1년 동안 그 돈을 쓰면서 일을 그만두기로 했다. 1년이라는 세월은 내가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를 궁리하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25센트를 주고 다량의 수산염을 샀다. 그래서 [자살]준비는 하루 만에 끝났다.”
“나는 자살을 감행하지 않았지만, 그 일요일에 노동자는 죽고 방랑자가 태어났다.”
“나는 다시 길 위로 돌아갔다.”
“나는 길로 돌아가기로 결심했다. 수확철이 다가오자 나는 그녀들에게 작별 인사도 하지 않고 버클리를 떠났다.”

훌륭하신 분이다. 이렇게 늘 떠나셨다. 그리고 늘 읽고 늘 쓰셨다.

“어느해 나는 산 위로 올라가야 했는데, 쌓인 눈에 오랫동안 발이 묶일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그래서 일이 없는 동안에도 시간을 허비하지 않기 위해 읽을거리를 충분히 준비하기로 했다. 나는 1,000페이지 정도의 두꺼운 책을 사기로 마음먹었다. 두껍고 활자가 작고 그림이 없으면 어떤 책이건 상관없었다. 나는 헌책방에서 그런 책을 찾아 1달러를 주고 샀다. 제목에 눈을 돌린 것은 책값을 치르고 난 뒤였다. 표지에는 <<미셀 몽테뉴의 수상록 Essays of Michel de Montaigne>>이라고 적혀 있었다. 에세이가 무엇인지는 알고 있었지만 몽테뉴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었다.”

발이 묶일 것이라는 예감은 적중했고, 그래서 그는 몽테뉴를 읽는다. “3번이나.” “그 책의 언어는 정확했고” 그는 “훌륭하게 다듬어진 문장속에서 독특한 매력들을 발견했다.”

날이 풀리고 하산하신 이분, 이제 입만 열면 몽테뉴를 인용하신다. “동료들도 좋아했다. 여자나 돈, 동물, 음식, 죽음 등 어떤 것에 대해서건 논쟁이 벌어지면 그들은 ‘몽테뉴는 뭐라고 말했나?라고 물을 정도였다. 책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나는 그 구절을 정확하게 찾을 수 있었다.”

“몽테뉴는 뭐라고 말했나?” 나는 이런 장면이 좋았다.

신경망 점화

“의식적인 생각은 느리게 진행된다. 또 이것은 폭이 매우 좁은 병목을 지니고 있다. 무슨 말이냐 하면, 의식적인 생각을 두 가지 이상 동시에 진행하기 매우 어렵다는 말이다. 이에 비해서 무의식적인 생각은 매우 빠르게 진행되며, 또 이 무의식의 영역에서는 병목 현상 따위는 일어나지 않는다.”

—<<승자의 뇌>>>, 117쪽

당신은 소리가 나지 않는다, 에서 용각산으로, “용각산은 소리가 나지 않습니다”로 연결된 연결은 방금 연결된 연결인가, (방금 연결된 연결인가, 다음에 순간적으로 또다른 연결이 연결되었지만 그만 연결하자.) 당신은 소리가 나지 않는다, 다음에 내가 생각했던 문장은 어디로 갔는가. 조금 전까지 거기 있었는데, 어쩌면 지금도 거기 있을 거 같은데, 나는 왜 연결을 잃었는가. 왜 연결하고 싶은 연결은 연결되지 않고, 왜 연결되지 않아도 좋을 연결은 연결되는가. 당신은 소리가 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