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봄이다
스마트폰이나 들여다보는
봄이다
생각해 보니
생각해 봐야겠다
생각해 보니
생각할 게 없다
생각해보니
생각하지 말아야겠다
쓰러진 쓰레기통을 세우고
쏟아진 쓰레기를 주어 담는다
봄이 뭐냐
벚꽃이 다 뭐냐
꽃은 시들고
언제든 어디서든
스마트폰이나 들여다 봐야겠다
다시, 봄이다
스마트폰이나 들여다보는
봄이다
생각해 보니
생각해 봐야겠다
생각해 보니
생각할 게 없다
생각해보니
생각하지 말아야겠다
쓰러진 쓰레기통을 세우고
쏟아진 쓰레기를 주어 담는다
봄이 뭐냐
벚꽃이 다 뭐냐
꽃은 시들고
언제든 어디서든
스마트폰이나 들여다 봐야겠다
낳아놓기는 아내가 덜컥 낳아놓았는데 뒤치닥거리는 왜 내가 해야하는 것이냐. 미세먼지 자욱한 봄날, 어쩌다가 막내하고 둘만 남아 점심 챙겨준답시고 비빔국수를 해먹인다. 녀석, 맛 있다고 먹는다. 암, 맛 있겠지. 설탕을 두 삽이나 넣었는데.
니 엄마는 해준 게 없으나 이 아빠는 네놈에게 비빔국수도 해주고 김치부침개도 해주고 칼국수도 해주고 수제비도 해주고 만두도 해준 적이 있음을 기억하거라. 니 엄마는 고작해야 카레라든가 빵이라든가 샐러드라든가 순대볶음이라든가 수육이라든가 잡채라든가 뭐 이딴 거 밖에 해준거 없다. 너 나중에,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한 30년 쯤 뒤에 오늘을 생각하면서, 아 그때 내가 어렸을 때, 그러니까 중학교 땐가, 울 아버지하고 나하고 단둘이 있던 어느 해 봄, 일요일에 아버지가 해줬던 비빔국수 겁나 맛 있었는데, 아 먹고 싶다, 하도록 하여라, 알겠느냐, 하며 있는 생색, 없는 생색 다 내가며 비빔국수를 먹인다.
이 말에 녀석이 대답한다. 토요일인데요.
나는 아무런 할 말이 없는 것이다. 더 먹어라, 아들아.
2016년 봄, 나는 43번 국도의 고양이포에 대해서 씁니다. 한때는 부피였으나 얼떨결에 면적이 된 짐승에 대해서 씁니다. 찻길을 무단횡단하던 생명체의, 흔적에 대해서 씁니다. 되도록 수식어를 발라내고 씁니다. 고양이는 왕복 4차선 도로의 저쪽으로 건너가고 싶었습니다. 고양이는 저쪽에 당도하지 못했습니다. 2016년 봄, 43번 국도, 차들은 달리고 고양이포는 타이어와 노면 사이에서 점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나는 고작, 어스 투 어스, 애쉬스 투 애쉬스, 더스트 투 더스트, 라고 씁니다. 더 쓸 게 없으니 다 썼습니다. 저쪽으로 건너가 보겠습니다.
곶감 빼먹고 싶다. 어제 밤부터 지금까지 일곱 개나 빼먹었는데 곶감 또 빼먹고 싶다. 잠든 저것들이 눈 비비고 일어나 물 마시러 왔다가 다 빼먹기 전에 얼른, 얼른, 하나라도 더, 빼먹어야 한다. 방금 하나 또 빼먹었다. 나는 곶감 빼먹으러 세상에 왔다. 그것이 명분이며 그것이 본질이며 그것이 아이덴터티다. 곶감의 제1법칙은 내가 빼먹지 않아도 금방 사라진다는 것이다. 옷은 빨아 입고 칼은 갈아 쓰며 곶감은 빼먹어야 한다. 책상 정리 해야겠다.
크리스마스 이브에는 문상을 가서 친구들을 만났다. 한 친구는 “얘네 어머니는 신사임당 같은 분이신데 저 자식은 여기저기 다니면서 율곡사업 같은 사업만 벌이다가 개망했다”고 말해 좌중을 웃겼다. 크리스마스에는 오랜만에 하루 종일 빈둥거리다가 돼지목살 사들고 놀러온 딸의 친구들에게 베란다에서 숯불 피워 고기 구워주고 난 다음, 아내와 스타워즈를 보고 왔다. 크리스마스 다음 날에는 딸 안경을 맞추고, 시집을 한 권 사고, 부모님을 찾아 뵙고, 더불어 연예인 지망생 선생 노릇을 하는 조카도 보고 왔다. 크리스마스 다다음날에는, 그러니까 지금은 새로 산 시집을 읽고, 외출하는 아내를 지하철역까지 태워다 주고, 김치 부침개 해서 아이들 먹이고 나도 먹고, 커피 한 잔 내려서 마시면서 이거 쓰고 있다. 이거 다 쓰면 볕이 좋으니 산책을 나갈 것이다. 모종의 슬픔과 모종의 안식이 교차하는 날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