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일 VI

책을 새로 대출하기 위해 물어야 하는 연체료는 300원이었다. 아니면 사흘 뒤에나 책을 빌릴 수 있었다. 나는 하루에 100원씩 3일이라 300원인 것이냐며, 만일 내일 대출을 하고자 하면 200원을 내는 것이냐 물었다. 사서 선생님1, 2는 그렇다고 했다. 그나마 연체된 게 한 권이라 그렇지 두 권이면 600원, 세 권이면 900원일 것이라 말했다. 나는, 완전 고스톱 쌍피 더블 시스템이네요, 라고 말해 거스름돈 200원을 챙겨주는 사서 선생님1을 피식 웃겨드렸다.

옆에 있던 사서 선생님2가 연체하시는 분들이 워낙 많아서요, 하며 변명 아닌 변명을 했다. 나는 즉시 리액션을 해드렸다.

“나쁜 놈들…”

사서 선생님2가 빵 터질까 말까 망설이다가 입가에 허망한 미소를 짓는 선에서 마무리 하는 게 보였다.

여기에 나는 나의 ‘음지의 선행’을 기록해 두노니 사람마다 하여 수비 니겨 다만 피식케할 따라미니라.

고양이

이씨, 다 뱉었어.

삼켜. 삼켜. 삼켜.

아내가, 말못하는 병든 짐승에게 억지로 뭐라도 먹이며 하는 소리다.

뭐냐, 이게. 다 흘리고. 이그.

아이고오. 조금만 먹어. 알았지?

미수가루

밤에 보니 식탁 우에 콩가루가 놓여 있다.

아침이다. 사모님이 말씀하신다.

“저거 미수가루야.”

그렇구나. 콩가루인 줄 알았는데 미수가루구나.

“그래? 타줘.”

“나 어떻게 타는지 몰라. 타먹어.”

그럴 수도 있지. 미수가루 타는 법 모를 수도 있지. 나는 슬프다.

아, 내가 저따위한테 너무 야박하게 굴었군, 하고 반성하신 사모님 미수가루를 타다 주신다.

“야.”

그저, 고맙습니다, 하고 먹으면 될 걸 나는 또 묻는다.

“잘 저었어?”

이번에는 국물도 없다.

“저어 먹어.”

봄이다. 미수가루 먹는다.

아래 문자는 사이시옷용 시옷이다.

ㅅㅅㅅㅅㅅㅅ

어떤 잔해

육신에서 언어가 빠져 나가고 있다. 좋은 현상이다. 나는 늘 이런 상태를 꿈꿔 왔다. 언어 없는 의식. 그저 짐승. 그저 물질. 잔해.

2월28일

텔레비전을 틀었는데 영화 한다. 엇그제 본 영화다. 이상하고 유치하고 재미 없는 영화다. 멍하니 또 본다. 지나가던, 다 커서 징그러운 막내가 묻는다.

다른 데는 뭐해?

왔다. 기회가 왔다. 왔다. 찬스가 왔다. 왔다. 카이로스가 왔다.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한다.

다른 거.

막내가 피식 웃는다. 이제 쌤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