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신에서 언어가 빠져 나가고 있다. 좋은 현상이다. 나는 늘 이런 상태를 꿈꿔 왔다. 언어 없는 의식. 그저 짐승. 그저 물질. 잔해.
2월28일
텔레비전을 틀었는데 영화 한다. 엇그제 본 영화다. 이상하고 유치하고 재미 없는 영화다. 멍하니 또 본다. 지나가던, 다 커서 징그러운 막내가 묻는다.
다른 데는 뭐해?
왔다. 기회가 왔다. 왔다. 찬스가 왔다. 왔다. 카이로스가 왔다.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한다.
다른 거.
막내가 피식 웃는다. 이제 쌤쌤이다.
2월 24일
아내가 저녁 먹은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연신 뭔가를 먹어대는, 이제는 다 커서 징그러운 막내에게 묻는다.
아이고 우리 아들 뱃속에 뭐가 들었어?
막내가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한다.
내장.
오늘의 문장
“몸은 몰라도 마음만은 서로 말고는 달리 갈 데가 없으니 헤어지고 나면 오갈 데 없는 신세가 되는가 싶어 차마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고.”
—김정선, 《동사의 맛》, 가다/오다 편 중에서
2일
사정이 있어 아내가 먼저 M6 좌석을 예약했다. 영화관 어플이 M7을 허하지 아니하여 나는 M8을 예약할 수밖에 없었다, 우려대로 결국 누군가가 M7을 예약하며 부부지간을 갈라놓으려 했다.
영화관 창구에서 M6 자리를 그때까지 비어 있는 M9로 바꾸어 줄 수 있는지 물었다. 창구 직원은 그게 뭐 어려운 일이냐는 듯 그렇게 해주었다. 그리하여 따위 부부는 M8, M9에 나란히 앉아 영화를 보게 되었다.
내가 들어가 앉았을 때 M7에 먼저 앉아 있던, 잘 생겨도 못생긴 남자는 일어나 다른 자리로 가버렸다. 그리하여 따위 부부는 좌우간격을 널직하게 벌린 자리에서 영화를 관람할 수 있었다.
영화를 보고 나오는데 아내가 정우성은 역시 멋있다고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