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의 마지막 문장

수상한 바람이 떼로 몰려오는 밤

목 매달기 딱 좋은 나무 밑 의자에 앉아

흔들리는 나무를 보고 있으면

문장 따위는 쓸 수 없어 좋았다

본격적으로

시작하려다가 마는

바람

시시한 시간을 견디면

본격적인 슬픔이 온다

좀처럼 오지 않는

본격적인 본격

온다

시시껄렁한 시간을 견디고 견디다가

드디어 크게 한 번 흔들리고

꺾여 쓰러진 나무

나무는 괜찮은 문장을 쓰고 죽었다

현수막 앞에서

산길에 굼벵이 농장 현수막이 걸려 있다. 오래전 성읍민속마을에서 본 굼벵이 생각이 난다. 나는 자식을 군대 보낸 굼벵이의 심정을 분말과 환과 엑기스로 표현해 본다. 굼벵이는 살아서 기거나 구르거나 꿈틀거렸다. 굼벵이는 죽어서 분말이 되거나 환이 되거나 육즙이 되었다. 나는 산길을 걸었다. 가슴속에서 굼벵이가 계속 기거나 구르거나 꿈틀거렸다.

“시학”과 ‘가오’

“어, 있다!”

오늘이 레포트(혹은 리포트) 마감일이라는 걸 깜박한 대학생이 내 책장을 살피다가 말한다. 그는 A4 다섯 장 분량의 글을 급조하다가, 뭔가 참조할, 그러니까 베낄 게 필요했던 것이다.

다른 대학생이 그 모습을 안타깝게 고소꼬소해 하며, 무슨 과목이냐고 묻자, 대학생은 미학 어쩌구저쩌구, 라고 대답한다. 대답을 들은 다른 대학생은 이렇게 반응한다.

“내 친구가 듣지 말라고 한 과목이 있었지. ‘인간’이 들어간다. ‘윤리’가 들어간다. ‘이해’가 들어간다. 내 친구가 인간 윤리의 이해, 를 들었으니까.”

대학생은 피식 웃어보이고는 다만 내게 묻는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은 없습니까?”

오, 네가 시학을 물었느냐. 있다, 시학. 우리집에 뼈대는 없지만 시학은 있다. 시학 말고, 양자역학도 있고, 철학도 있고, 컴퓨터 공학도 있고 다 있다. 나는 대학생에게 시학을 찾아준다. ‘가오’가 확 산다.

똥, 이라는 말만 들어도 까르르 웃던 것들이 어느 결에 자라서 이제 미학이니 윤리니 이런 낱말을 입에 올리다니. 무려, 가르친 보람이 있도다. 내친 걸음에 박사까지 가기다. 그러기다. 꼭이다.

여기까지 쓰니 한물 간, 유명한 드라마 대사가 생각난다.

“감당하실 수 있겠느냐 물었습니다, 어머니.”

너는 아무 생각이 없구나

어제 미대생이 출타한 틈을 타 그의 작품을 재미삼아 망가뜨려놓은 고양이, 오늘 미대생이 방에서 나오자 쪼르르 달려가 야옹야옹 거리며 운다. 쓰다듬어 달라는 것이다.

미대생은 그 작품으로 학점을 받아야 하는데, 오오, 고양이여, 고양이여, 너는 정말이지 아무 생각이 없구나. 시월이고 비 온다.

어제 뭘 좀 썼다. 그건 스마트폰 메모장 밖으로 발행될 수 있을까. 그건 글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