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텔라

카시오페이아를 봤다. 지난 봄까지는 밤하늘의 왠만한 별의 이름은 대충 알았는데, 이제 가을에 접어들면서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 가득 찬’ 별들의 이름은 아는 게 거의 없다. 별 공부를 게을리한 탓이다. 산책을 나와 밤하늘을 보는 건 좋다. 자주 그렇게 하도록 하자.  

  

아마도 그건 토요일 아침이었을 거야

토요일 아침, 라면 먹는다. 일종의 해장이다. 아내가 라면 덜어먹을 그릇 챙겨주며 설거지 좀 하라고 말한다. 나는 아내에게는 관심이 많지만 설거지 따위, 청소 따위, 빨래 따위에는 관심이 없다고 말한다. 그런 식으로 우리는 토닥거린다. 어제 23시 20분 꺼 예매해 달래서 영화 보고온 딸은 잔다. 아들 둘은 내가 끓인 라면 먹는다.

그러다 내가 그 잘 부르는 노래로, 아마도 그건 사랑이었을 고야, 를 흥얼거린다. 아내가 그게 무슨 노래드라, 하다가 아마도 그건, 이라고 말한다. 아내가 가수가 누구더라, 궁금해 한다. 나는 유투브를 검색해 아마도 그건, 을 듣는다. 박보영의 목소리로 듣는다.

듣고 나니 조승우, 손예진 나오는 영화에 사용된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이 유투브 목록에 보인다. 누른다. 영화의 한 장면이 시작된다. 나는 재생을 멈춘다. 조승우가 눈먼 사람 연기하는 장면은 보고 싶지 않다. 손예진은 예쁘지만 내 스타일은 아니다.

이제, 목록에 에일리가 부른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이 보인다. 재생버튼 누른다. 끝까지 본다. 듣는다. 그러다가 문득 너무 아픈 가난은 가난이 아니었음을, 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라면 먹다가 스마트폰으로 이거 쓴다. 라면 다 불었다.

에일리의, 며칠 전 라디오에서 들었던 노래를 듣고 싶지만 제목도, 가사도 생각나는 게 없다. 그만 쓰고 라디오 듣다가 가사를 메모해둔 걸 열어 가사를 검색해 노래 제목을 알아내서 에일리의 노래를 듣기로 한다.

p.s.

하여 검색해 보았더니, 그 노래는 에일리의 노래가 아니었다. 노래 제목은 말해주지 않겠다.

***

윗집 안방에서 부부싸움하는 소리

크게 들린다.

아침

앞으로 도로에서 다른 차가 내 심기를 심히 불편하게 만드는 운전을 하면, 아 새끼 또… 호수같은 내 마음에 물수제비 뜨네, 하고 말겠다. 저 대사는 만화가 김보통의 D.P 개의 날, 에서 본 것이다.

아, 오늘은 또 어떤 자식이 내 마음에 물수제비 뜨려나. 어저께 너 소나타 운 좋은 줄 알어.

아침 대신 먹으려고 단호박을 쪘는데, 이건 뭐, 당췌 뭐, 단호박이 아니라 맹물호박이네.
너 이놈의 호박 새끼, 이 여름에 광합성한 당분 다 어디다 꼬불쳤어. 응. 엉.

언어가 덥다

김애란의 소설에 나는 이러저러한 사람이다, 라는 문장이 반복 되는 게 있다. 제목은 잊었다. 편의점 어쩌구 했던 것도 같고 아닐 지도 모른다.

가끔 나는 이러저러한 사람이다, 라는 문장을 흉내 낸다. 표절이다. 방금도 그랬다. 아내가 세탁기 안의 빨래가 다 내 꺼라고, 날더러 널라고 그러고 외출을 하고 난 뒤, 빨래를 널다보니 오우 마이 갓, 내 것이 아닌 빨래가 섞여 있는 거다.

아니 내 빨래 아닌 게 있는데 왜 다 내 꺼라 그런 거야, 아 내 빨래가 대부분이라는 뜻이었구나. 아내가 처음부터 그런 뜻으로 말한 걸 내 몰랐던가. 그럴리가. 나는 언어가 괴로운 사람이다. 나는 언어가 덜 자란 사람이다. 나는 피곤한 사람이다.

나라

새삼스럽지만 나라에 역병이 창궐하고 있다. 6월 23일, 문제의 ‘그 병원’에 진료예약이 되어 있다. 때가 때이니 만치 한 달 뒤로 미루려고 ‘그 병원’에 전화를 건다.

통화 불가. 전화가 많아 통화가 불가하다, 잠시 후 다시 걸어 달라, 고 기계가 답하며 기계가 전화를 끊는다. 아쉬운 건 나니까 기계가 시켜도 군말 없이–사실 군말을 해도 들어줄 기계도 사람도 없으므로–잠시 후 다시 건다. 잠시 전과 달라진 게 없다. 통화 대기음 듣다가 통화 불가. 때가 때이니 만치 통화 불가. 기계가 응답하는 똑 같은 메시지를 반복해서 듣느라 얼마 되지도 않는 내 한 달치 음성 통화 시간의 절반을 써도 통화 불가. 통화 불가. 통화 불가. 포기. 이게 오전 상황이다.

오후에 다시 시도한다. 마찬가지다. 달라진 게 없다.

맞다. 어플이 있었다. 나는 뒤늦게 스마트한 생각을 떠올린다. 앱스토어에서 병원 어플을 검색해서 설치한다.

내키지는 않지만 회원가입, 더 내키지는 않지만 주민등록번호 입력. 회원 가입창 양식에 슬쩍슬쩍 들어 있는, 문자 수신 동의, 메일 수신 동의 따위의 칸 집요하게 선택 해제. 가입 완료. 드디어 로그인, 진료예약 변경 페이지 추적, 드디어 예약 변경 시도. 

“동일과 내 진료예약 변경은 사전에 전화 문의하여 주십시오.”라는 멘트와 함께 전화 번호가 나와 있다. 훌륭한 어플이다. 어플에 나온 번호는 내 진료카드에 적힌 대표번호나 예약번호와 다른 번호다. 직통번호인가 보다. 건다, 전화.

통화 안 된다. 뭔가. 이게 뭔가. 다시 한 번 건다. 가까스로 연결 된다. 눈물이 다 난다. 그런데,

헐.

전화 받으신 분 하시는 말씀. 자기는 해줄 게 없으니 전화 번호를 하나 알려줄테니 그쪽으로 전화하란다. 그 번호는 내가 지금까지 통화하려고 무수히 걸었으나 통화하지 못했던 바로 그 번호다. 뭐지? 돌고 돌아 제자리다. 뫼비우스의 띠인가? 그러면 그렇지.

역시 역병이 창궐하는 아름다운 나라의 초일류병원 답다.

전화에 대고 나는 다시 설명한다. 여차저차 하다. 나 전화 할 만큼 했다. 그런데 나더러 전화를 받을 때까지 죽어라 전화를 걸라는 말이냐, 니들은 웨이팅 리스트도 없냐, 오늘 18시 지나면 그나마도 전화 업무 종료할 거 아니냐, 오늘 성공 못하면 내일 전화 걸고, 내일 성공 못하면 모레 걸고, 그렇게 걸고 또 걸라는 거냐. 이렇게 말한다. 구차하다.

담당 직원은 죄송하다는 말만 한다. 아마 그는 내가 전화를 끊을 때까지 죄송하다고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안 되겠다. 나도 못 물러 선다. “이렇게 된 이상 청와대로 간다.”

나는 상급자를 바꿔 달라고 요구한다. 누구요? 당신의 보스와 통화 하고 싶다. 안 되면 보스 찾는 거, 나쁘다. 아, 나 새끼는 나쁜 새끼, 우, 또라이 새끼 나 새끼. 그는 기다리라 한다. 기다린다. 내가 기다리는 동안 지루하지 않게, 또, 따 다다 다다다다단, 따 다다 다다다다단, 하고 음악이 나온다. 기다린다.

마침내 누가 여보세요 한다. 그는 좀 전에 전화 받은 자신의 아랫직원과 같은 말을 반복한다.

에이, 여보슈.

그러니까 저더러 그 번호가 전화 받을 때까지 전화하라구요? 오늘 하다 안 되면 내일 하고, 내일 하다 안 되면 모레 하고? 그렇게 될 때까지 하라구요? 그게 말이 돼요? 왜 그래야 하는데요? 웨이팅 리스트 만들어서 오늘이든 내일이든 그쪽에서 전화 걸 수 있을 때 전화 걸어주면 되잖아요? 그게 그렇게 어려운 일이에요?

그러자 그는 지금 당장 피드백 전화를 드려도 되는 게 아니라면 자기가 메모를 전달해 주겠단다. 나는 다시 묻는다. 그러니까 그게 원칙상 메모를 전해주는 게 안 되지만 내가 하도 ‘지랄을 해대니까’ 귀찮아서 메모를 전해주겠다는 거냐, 고 묻는다. 그는 아니라고 대답하지만 그런 게 맞는 거 같다. 문제를 해결하려면 지랄을 해야한다.

어쨌든, 이리하여, 병원님, 귀측에서 시간이 나실 때 모쪼록 이 못난 환자한테 전화 좀 해주십시오. 오늘이든 내일이든 모레든 소인은 그저 전화만 걸어주시면 황공하옵니다요, 라는 진료예약변경 요청 메모를 전달. 이게 뭔가.

그러고 이십 분 후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진료예약변경 해준단다. 고맙다. 기분이 매우 좋지 아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