펠로폰네소스 농담사

#

그저께부터 ‘펠로폰네소스 농담사’라는 말이 자꾸만 머리속(안다, ‘머릿속’인 거)을 맴돈다. “아이고 의미 없다.”

 

##

<속보> 아무일 없음

# 냉장고 속에서 오래 오래 오래 묵은 음식이 썩어 가듯, 그렇게, 뭔가가 내 속에서 천천히 문드러지고 있다. 밀폐용기에 밀폐된 채 망가져 가는 것, 그것은 젊은 날의 흑사랑일 수도 있고 관념적인 인간의 관념일 수도 있고 또는 그거일 수도 있다.

# 어제는 첫 눈이 내렸고, 그제는 세 조각의 햄을 아이들에게 한 조각씩 나누어 먹였다. 나는 먹지 않았다. 오늘은, 두어 달 전에 아내가 마트에서 눈 흘기며 사 준 과자 상자에서 다 먹은 줄 알았던 오레오 한 봉지를 발견했다. 아비된 자로서 햄을 자식들에게 양보했다고 계룡산 산신령님이 복을 주신 것이니 이 오레오는 나 혼자 다 먹을 것이다.

# 보름쯤 전에는 “너무 많아 도무지 감당할 수 없을 지경의 부사를 문장 여기저기에 꾸역꾸역 마구마구 쑤셔넣은, 도대체 말도 되지 아니 하고 아무런 의미도 없는 글”을 쓰고자 했었다.

# 창고에서 10년 쯤 전의 물건을 하나 꺼내 잘 닦고 기름 쳐서 책상에 올려두었다.

# 일주일 전에는 친구와 <태안 해변길>을 걸었다.

# 나는 잘 밀폐된 밀폐용기다.

# 밀폐용기를 열고 오레오를 넣자.

피로파괴

요새, 뭔가를 제작중이다. 그러자니 이미 알고 있는 걸 다시 깨달아 간다. 별거 아니다.

그제, 어떤 생각이 떠오른다. ‘그 부분’이 꼭 있어야 하는 건 아닐 지도 모른다. 어제, 그 생각대로 도면을 그리고, 그 도면대로 나무를 잘라 테스트를 한다. 나무가 힘없이 부러진다. 욕심이 과했다. 애초에 안 되는 아이디어였다. 외관상 불필요하지만 기능상 필요한 부분은 그대로 남겨 두어야 한다. 꼭 필요한 부분이 없으니 나무가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하는 것이다. 나는 전날 떠오른 생각을 버린다. 미련이 남는다. 미련하다.

오늘, 나는 엇그제 자른 나무판을 다시 본다. 딴 거 하다가 우연히 다시 본다. 지금까지는 미처 못본 게 보인다. 그건 결이다. 그제서야 나는 내가 나무결을 고려하지 않고 나무를 잘라 테스트했다가 실패했다는 걸 자각한다. 결대로 잘랐더라면 나무가 그처럼 허망하게 부러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어제 남은 미련이 오늘 다시 꿈틀 댄다. 미련하다.

나무로 뭔가를 만들 때는 반드시 나무결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게맛살도 결대로 찢어지지 않더냐. 내가 나무를 다시 잘라 테스트를 하게 될까. 아직은 알 수 없다. 아마 그러지 않을 것이다. 결대로 자르면 나무가 스트레스를 그저 좀더 오래 견디는 것 뿐이니까. 피로가 쌓이면 파괴되기 마련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