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우스트> 제2부 제3막

연금술과 점성술에 조예가 깊은 파우스트 박사는 모든 이론은 잿빛이라는 둥 가끔가다 그럴듯한 드립을 치는 메피스토펠레스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 고대 그리스의 헬레네 미녀를 아내로 맞아 오이포리온 아들을 낳아 금이야 옥이야 애지중지 길렀는데 아 글쎄 이 불효자식이 좀 컸다고 나대지 말라는 부모 말 안 듣고 지가 무슨 이카루스라고 하늘 높이 날아 오르는 코스프레하다가 부모 발치에 떨어져 죽었다고 한다.

풍운아

서울 모처에서 거사를 도모하다가 산 넘고 물 건너 새벽 두 시에 기어들어 왔더니 아내가 어디 갔다 왔느냐고 물었다.

“바람 따라 구름 따라.”

나는 천상 풍운아답게 답하였다. 영혼 없는 내 대답에 아내는 뭐가 웃긴지 킬킬킬 웃었다.

뭐가 웃기냐고 했더니 내 대답이 웃기다고 그랬다. 아니, 세상에 웃길 게 없어서 바람 따라 구름 따라, 라는 말이 웃기단 말인가, 라고 생각하면서 나는 부엌으로 가 물을 마셨다.

웃기기는 어느 도서관에서 본 “담배는 재떨이에서 피우세요” 같은 문장이 웃긴 거지. 치솔에서 이를 닦읍시다, 라든가 피임은 콘돔에서 하세요, 라든가 강도는 은행에서 하세요, 라든가 커피는 자판기에서 마시세요, 라든가.

새 새

‘새’ 자 들어가는 건 다 개좋다.
새누리당도 개좋고 새정치민주연합도 개좋다.
고백하거니와 새마을운동도 개좋았다.
더 새마을 무브먼트 비갠 인 나인티세브니원, 이라는 문장을 영어 선생한테 두들겨 맞아가며 배웠다.
이, 나라가 아닌 나라는 곧 새나라가 될 것이고
이, 국민이 아닌 국민은 곧 새국민이 될 것이다.
그리하여 새 봄의 새 하늘을 날아다니는 한 마리 새 새

07-060

어쩌다가 “환경정비용마대”가 된 전직 플래카드가 한때 자신이 세상에 대고 발음했던 자모음들을 50리터 들이 내면에 구겨넣은 채 가엾은 짐승처럼 웅크리고 앉아 있는 07-060 버스 정류장

아빠의 본분

나는 본의 아니게 아빠다. 귀찮지만, 아이의 배고픔을 해결해 주어야 한다.

“아빠는 뭐 좀 먹을 건데 넌 어떻게 할래?”

“난 짜파게티 먹을래.”

“그러자. 그럼 지금 두 개 끓인다.”

“지금?”

“응.”

“난 지금 씻을 건데…”

“그럼 씻고 나서 니가 끓여, 두 개.”

“그래.”

이로써 나는 배고픔도 해결하고, 귀찮음도 면하고, 아빠 노릇도 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