밖에 봄이 왔음?
‘or’의 포괄적 의미와 배타적 의미
“여기에는 고려해봐야 할 문제가 있다. ‘이거나(or)’하는 단어에는 두 가지 서로 다른 의미가 있을 수 있다. 보통 ‘p거나 q다’는 p와 q 가운데 적어도 하나가 참이거나 둘 다 참인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이거나’라는 단어의 ‘포괄적’ 의미라고 불린다. 논리학에서는 보통 이 의미로 사용된다.
그러나 때로 ‘이거나’를 ‘배타적’ 의미로 쓰기도 한다. 즉 ‘p거나 q다’는 p와 q 가운데 적어도 하나가 참이지만 둘다 참은 아니라는 의미일 수도 있다. 예를 들어 ‘그들은 육로로 오거나 해로로 올 것이다’는 그들이 동시에 육로와 해로로 오지는 않을 것임을 시사한다. 이 경우는 만일 그들이 어느 한 길로 온다면 다른 길로는 오지 않는다고 추론할 수 있다.
선언 삼단논법은 ‘이거나’가 어떤 의미로 쓰이는지에 상관없이 타당하다. 검토해보라. 그러나 ‘p거나 q다’와 같은 진술에서 추론해낼 수 있는 어떤 것이 있다면 그게 무엇이든 구체적인 ‘p거나 q다’라는 전제에서 ‘이거나’가 어떤 의미로 사용됐는지에 달려 있다. 당신이 p를 알고 있을 때 ‘q가 아니다’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을지 여부를 가릴 때 특히 그렇다. 이 점을 주의하라!”
그 많던 싱아 같은, 내 오징어채무침은 누가 다 먹었을까
이런 불효자식을 봤나. 나는 오징어채무침을 한 가닥 한 가닥 아껴 먹는데 녀석은 한번에 수십 가닥을 덮석덥석 집어먹는다. 오매 아까운 거. 네 몫은 다 먹었으니 이제 그만 먹으라며 녀석의 손이 닿지 않는 곳으로 반찬을 옮겨 놓는데 아뿔사, 거기는 아내의 젓가락 사정권이다. 할수없이 오징어채를 원위치시킨다. 나는 나의 유치함에 치를 떨며 독백을 시작한다.
“나는 나쁜 아빠야. 나는 나쁜 남편이야. 나는 나쁜 인간이야. 나는 나쁜 동물이야. 나는 생물이야. 나는 나쁜 물질이야. 나는…”
“아, 시끄러!”
꽥, 아내가 소리를 지른다. 뭐 내 생각해도 시끄러우니 별 불만은 없다. 더구나 ‘물질’까지 갔으니 단어도 금세 동날 판이다.
“나는 시끄러운 물질이야.”
나는 잔뜩 움추러들며 모기 소리만하게 말한다. 딸아이가 먼저 피식 웃고 아내도 덩달아 피식 웃는다. 나는 웃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오늘의 카피
졸업식은 어수선했다. 아이들은 자기 자리에 아무렇게나 앉아 있었고 어른들은 교실 뒤쪽에 아무렇게나 서 있었다. 교실 앞 모니터에서는 학교 어디선가 벌어지고 있는 행사가 중계되었다. 누군가 송사를 읽었고 누군가 답사를 읽었다. 누군가 바이올린을 연주했고 몇몇 남학생들이 나와 “내 사랑 오 마이 러브 투 유”를 불렀다.
방송으로 중계되는 행사가 끝나고 각 교실에서는 2부 행사가 이어졌다. 담임 선생은 학생들을 한 명 한 명 호명해서 졸업장과 앨범과 롤링페이퍼 따위를 나누어 주고 악수를 청했다. 학부모들은 대개는 핸드폰으로, 더러는 캠코더로 그 모습을 찍었다. 마지막으로 담임은 ‘지지자 불여호지자 호지자 불여낙지자’라면서 제자들에게 당부의 말을 했다. ‘무릎팍 도사’ 동영상도 하나 보여주었다.
끝으로 어느 학생이 편집한 동영상을 보게 되었다. 반 친구들 사진을 한 장 한 장 띄우고 거기에 그 아이와 관계된 글이 짧게 짧게 지나가는 평범한 영상이었다. 그걸 보며 아이들은 웃었다. 동영상 끝부분에 ‘안녕 친구들’, ‘안녕 3학년 9반’하는 문구가 떠올랐다. 아쉽지만 이제 졸업인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에 ‘안녕 중학교’라는 말이 보였다. 그 순간 아이들은 아, 하며 탄식을 했고, 나는 뭔가 뭉클했다.
졸업식이 끝나고 운동장에 나와 사진을 찍는 아이를 기다렸다가 중국집에 가서 짜장면을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