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가는 아이들, 점점 집에서 멀리까지 갔다 온다. 어떤 날은 아침 일찍 나가 밤 늦게 온다. 아직은 내가 가본 곳에만 간다. 인사동, 광장시장, 홍대앞. 더 크면 더 멀리 갈 것이다. 내가 가본 적도 들어본 적도 없는 곳에 갈 것이다. 토요일에 지 엄마한테 옷 사달래서 새옷 얻어입고, 일요일에 어디를 하루종일 싸돌아 다니다 다저녁에 들어온, 오늘은 친구와 노량진에 간다던 1호는, 작전이 변경되었는지, 아직 잔다. 한 시간 전에 롯데월드 간다고 아침도 아니 먹고 현관문을 나선 녀석은 2호다. 3호는 아직 어디 안 간다. 학교, 집, 학교, 집, 어쩌다가 친구집, 이게 전부다. 토요일에 동창 여남은 명과 초등학교 적 선생님 찾아 뵙고 짜장면 곱배기 얻어 먹고 온 3호는 지금 거실 쇼파에서 스마트폰으로 만화 본다. 늦은 밤에, 그러니까 밤 열두 시도 넘은 시각에 막내 하복 상의 두 벌을 다림질하며 텔레비전을 보던 아내도 잔다. 2호가 현관문 여는 소리에 잠이 깬 나는 ‘파파’ 하며 집으로 돌아온 베로니카를 생각한다. 부처님오신날 아침, 구구꾹쿠 구구꾹쿠, 비둘기 우는 소리 들린다.
오늘의 문장
“철새는 우리나라에 찾아오는 시기와 머무는 시간에 따라 다시 여름철새, 겨울철새, 나그네새(통과철새), 길잃은새(迷鳥, 미조)로 나눈다. 여름철새는 봄에 와서 번식한 후 여름과 가을에 월동지로 이동하며, 겨울철새는 가을에 와서 겨울을 지낸 뒤 이듬해 봄에 번식지로 이동한다. 나그네새는 우리나라 이외의 번식지와 월동지를 오가다가 봄과 가을에 우리나라에 잠시 들르는 새를 말하며, 길잃은새는 이동 경로상 우리나라에 규칙적으로 오지 않지만 길을 잃거나 경로를 이탈해 우연히 찾아든 새를 말한다.”
–박진영(글.사진), <<새의 노래, 새의 눈물>>, 필통 속 자연과 생태, 2010, 27쪽
이태원 낮술
더운데 시원하게 맥주 한 잔 하자며 낮술 얘기가 나왔다. 나는, 낮술이라는 제목의 시가 있는데 “이러면/안 되는데”가 전문이라고 말했다. 맞은 편 여자는 날더러 글 쓰시는 분이냐고 물었다. 나는 심리적으로 켁켁거렸다. 너나 드시라는 둥, 나는 얼굴이 빨개져서 못 먹는다는 둥, 시원해서 좋다는 둥, 모두들 한두 마디씩 보탰다. 누군가 이태원 얘기를 꺼냈다. 경리단길이 좋다고 거기 한번 가보시라고 내게 권하는 이도 있었다. 나는 경리단 길은 가로수길 보다 좀 나은가 물었다. 가로수길은 연전에 가봤는데 영 번잡스럽기만 하고 정신머리 사나워서 그저 그랬던 기억이 있다. 경리단길은 괜찮다고 그는 말했다. 이태원에서는 낮술을 마셔도 괜찮다고 그는 말했다. 이태원 낮술, 뭔가 낭만적인 데가 있다.
그댄 정형외과를 무척 좋아하나요
아이가 아파 온 병원에서 차례를 기다리는 동안
럭셔리 잡지를 본다. 2014년 9월호를 본다
이번 호에는 “얼굴, 손, 발, 다리, 허리, 모발에 있어서는
최고를 자랑하는 모델들”이 나와 있다
이들은 “각종 광고와 잡지 화보를 휩쓰는” 이들이다
명단은 다음과 같다
세련된 이목구비의 조화, 박슬기
감정이 풍부한 ‘모델 천재’, 진아름
감정을 담은 손, 최현숙
당당하게 드러낼 수 있는 발, 김한나
‘태’가 나는 허리 라인, 안시현
빛나는 머리카락의 품격, 장윤정
각종 광고를 섭렵한 늘씬한 다리, 박주형
모두들 어떤 이미지의 일부이다
진찰을 마친 아이는 물리치료를 받으러 가고
나는 영혼까지 럭셔리해진다
내 똥구멍에서는 이제 장미향이 난다
대기실에는 할머니 둘, 할아버지 한 분이
정성을 다하는 국민의 방송 KBS, 뉴스를 보고 있다
검찰은 엄정히 대처한다고 한다 훌륭한 검찰이다
거리에 봄비는 내리고 나도 김건모처럼 괜시리 마음만 울적하다
주차단속요원이 주차단속하며 지나가면 안 된다
심은하처럼 예쁜 주차단속요원에게 주차단속 당하고 싶다
거리에 봄비는 내리고
연상은 지겹다
꽃이 진다 꽃은 잊자
목련에 대하여
나도 목련꽃 그늘 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지를 읽고 싶었지만 애석하게도 베르테르는 나에게 편지는 커녕 그림 옆서 한 장 보내주지 않았다. 독재자의 아내와 친하게 지낸 시인에게나 편지를 보내주는 베르테르라면 그딴 편지는 받고 싶지도 않다. 아니다. 거짓말이다. 받고 싶다.
목련을 목련이라고 말하기는 쉽다. 목련을 보고 그냥 목련이라고 말하면 된다. 제발 이 단계에서 멈추자. 이것은 스스로 하는 부탁이자 경고이다. 여기서 더 나아가면 안 된다. 더 나아가면 돌이킬 수 없다.
부탁을 거절하고 경고를 무시하겠다면 좋다. 후회하지 마라. 이것은 스스로 선택한 것이다. 더 말해 보겠다. 아니 계속해 보겠다. 앞의 문장은 최근에 읽은 황정은의 소설, 계속해보겠습니다를 연상시킨다. 이로써 우리는, 혹시 당신이 ‘우리’에 포함되어 기분 나쁘시다면 기꺼이 당신을 제외한 우리는, 연상을 자제하지 못하면 글이 산만해 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어쨌든 계속해 보겠다.
목련에도 종류가 많다. 목련, 백목련, 자목련, 자주목련, 별목련, 분홍목련, 별분홍목련, 일본목련 따위가 있다. 지금 내 눈 앞에 목련 한 그루가 있다. 나는 저 목련을 어떤 목련이라고 불러야 하는지 모른다. 잎이 온전하게 하얀색이니 목련, 백목련, 별목련 중의 하나일 것이다.
몇 개 남지 않는 꽃잎의 수를 세어 본다. 여섯 개다. 원래부터 여섯 개의 꽃잎으로 핀 꽃인지 봄비에 봄바람에, 제길, 꽃잎이 떨어져 여섯 장만 남은 것인지 확인해야 한다. 이름을 제대로 불러주자면 확인할 게 많다. 나에게로 와 꽃이 되게 만들려면 확인할 게 많다.
나는 스마트폰 앨범에서 며칠 전에 목련이라고, 확실히, 죽어도, 정말, 무슨 일이 있어도 목련임에 틀림없다고 동정하며 찍은 사진을, 내 눈 앞의 목련꽃과 비교한다. 똑같다. 똑같을 것이다. 똑같은 것이라 생각하고 싶다. 백퍼 믿고 싶다. 나는 정말이지 백퍼라는 말만은 쓰고 싶지 않다. 나는 늙었다.
저 목련은 그냥 목련이다. 자목련도 아니고 백목련도 아니고 그냥 목련이다. 목련을 그냥 목련이라고 말하기는 쉽지만, 목련이 정말 무슨 목련인지 확인하고 목련이라고 말하는 것은 어렵다. 그나마 꽃이 피었기에 이거라도 할 수 있다. 꽃이 진 목련나무들은 무슨 수로 구별하나.
꽃이 진다. 꽃은 잊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