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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 발생
큰 일 났다. 딸아이가 파김치 맛을 알아버렸다. 내 연양갱도 보는 족족 뺏어먹더니 이제는 내 파김치까지! 그 옛날 훈장 선생님이 꿀단지를 숨겨두고 드신 이유를 이제야 알겠다. 자물쇠로 잠궈둘잠가둘 수 있는 김치통을 발명해야겠다. 오늘 밤에도 파김치가 바람에 스치운다.
조셉 콘래드의 아내
윌리엄 케인(지음), 김민수(옮김), <<거장처럼 써라>>, 이론과 실천, 2011
“조셉 콘래드는 글을 쓰기 위해 매일 자기 방에 틀어박혀 아내에게 밖에서 문을 잠가달라고 했다. 그래야 비로소 글에 집중할 수 있었다. 몇 시간 후 점심을 먹기 위해 방에서 나오자 아내는 그에게 오전 내내 무슨 작업을 했냐고 물었다. 그는 ‘쉼표를 하나 뺐소’ 라고 대답했다. 점심을 먹은 후 그는 다시 방에 틀어박혔고 아내는 또 문을 잠갔다. 몇 시간 후 콘래드가 다시 저녁을 먹기 위해 방에서 나오자 아내는 오후에는 무슨 작업을 했냐고 물었다. 콘래드는 ‘오전에 뺐던 쉼표를 다시 집어넣었소’ 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조셉 콘래드의 아내는 이렇게 말했다. 으이구, 이 화상아!
멜빌은 글을 썼다
일 하다가 짬을 내어 책을 읽는다. “열아홉 살 때 멜빌은 종종 다락방에 있는 자신의 책상 앞에 앉아 글을 썼다.” 앞의 문장을 만나자 나는 ‘다락방’이 부러워진다. 내 유년에도 다락방이 있었으면 하며, 밑줄을 긋는다. ‘다락방에 있는 자신의 책상’까지 긋는다. 다음 순간 ‘다락방에 있는 자신의 책상 앞에‘까지 줄을 쳐야할 것 같다. 그렇지. 모름지기 인간이라면 책상 앞으로 가야지, 하는 생각에서다. 다시 다음 순간, 책상 앞에 앉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에 ‘다락방에 있는 자신의 책상 앞에 앉아‘까지 밑줄을 연장한다. 이어서 다시 ‘글을‘이 눈에 들어오고, 제길, 결국 ‘썼다‘가 들어온다. 못 볼 걸 본 것이다. 결국 나는 ‘다락방에 있는 자신의 책상 앞에 앉아 글을 썼다’까지 밑줄을 긋고 만다. 그리고 문장에서 살을 발라낸다. ‘멜빌은 글을 썼다.’ 그렇구나. 멜빌은 글을 썼구나. 그리고 나는 참담해진다.
어르신이 있는 풍경
광화문 네거리, 베레모를 쓴 구부정한 노인이 은빛 스텐 카트를 끌고 횡단보도를 건넌다. 카트에는 검은색 확성기가 실려 있다. 풍경이 기이하여 자세히 살펴보니 확성기에 붉은색 십자가가 자리하고 있다. 죄 지은 자 많은 거리에서 천국과 지옥을 외치러 가시는 길인가. 어르신, 날도 쌀쌀한데 감기조심 하세요. 아무개 에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