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모님이 화장대에서 꽃단장을 하신다. 어디 좋은 데 행차라도 하실 모양이다. “가지마. 날 두고 어딜 가.” 나는 사모님에게 가 엉긴다. 사모님, 귀찮아 하시는 표정이 역력하다. 사모님, 기어코 한 마디 하신다. “올해는 두 가지만 해.” 당할 줄 뻔히 알면서 와서 엉긴 내 불찰이 크다. 1절만 하셨으면 좋겠다. “첫째는 살을 5킬로그램만 빼.” 뭐 이 정도 멘트야 들어도 싸다. 나머지 하나는 무엇일까. “그리고 제발 좀 말 좀 이쁘게 해.” 듣고 보니 사모님, 바람이 참 소박하기도 하시다. 내 말본새가 본디 좀 그렇긴 하니까.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니 이거 영과 육을 동시에 환골탈퇴하라는 거 아닌가. 결국 날더러 새 사람이 되라는 거 아닌가.
스도쿠
스도쿠를 하다 보면 안다. 어떤 숫자가 그 칸에 들어갈 정확한 답인지, 아니면 일단 넣어 놓고 보자는 심산으로 써넣는 숫자인지. 전자의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나면 성취감이 파도를 치며 몰려드는데 반해, 후자의 방법으로 문제를 풀고나면 어쩌다 운이 좋아 문제를 푼 것이라는 자각에 뒷맛이 영 개운치가 않다. 체스 천재를 다룬 <위대한 승부>라는 영화에 보면 사부님이 제자에게 체스판의 말들을 모조리 쓸어버린 다음 빈 체스판을 앞에 두고 수를 읽는 방법을 가르치는 장면이 있다. 스도쿠도 저 영화에 나오는 방법으로 어떤 칸에 들어갈 숫자를 콕 찝어내기 전에는 손을 움직이지 말아야 하리라. 오늘도 나의 스도쿠에는 빈 칸이 너무 많다.
<<어느 작가의 오후>>
페터 한트케 (지음), 홍성광 (옮김), <<어느 작가의 오후>>, 열린 책들, 2010
작가님, 글쓰기를 마치고 외출을 하신다. “정원으로 통하는 문으로 가는 도중에 작가는 갑자기 발걸음을 돌렸다. 그는 다시 집안으로 들어가, 후닥닥 서재로 올라가서는 거기서 어떤 단어를 다른 단어로 바꾸었다.” 천상 작가다.
작가님, 목하 외출중이시다. “그는 눈은 카메라, 귀는 녹음기라고 생각하며 걸었다.” 병이다. 직업병.
작가님, 몸은 타자기 앞을 떠나셨으나 마음은 그러질 못했다. 생각이 많고, 질문이 많다. 그리하여 “이러한 질문에 다음과 같은 대답을 할 수 있다. 글을 쓰기 위해 나는 이미 오래 전에 나를 격리시키고 옆으로 밀어 놓으면서 사회인으로서 나의 패배를 시인했다. 나는 평생 동안 자신을 다른 사람들로부터 배제시켰다. 그들의 비밀을 잘 알고 있는 내가 환영받고 포옹받으며, 여기 사람들 사이에 끝까지 앉아 있을지라도 나는 결코 그들에게 속하지 않을 것이다.” 아무렴. 그래야지. 그래야 작가님이시지.
작가님, 외출에서 돌아오셨다. 피곤하시다. 피곤하면 누워 양이나 세시지 누가 작가 아니랄까봐 또 생각의 탑을 쌓으신다. “나는 뭐하는 사람인가? […] 내가 아무 것도 아닌 것이 아니라고 누가 내게 말하는가?” 맨날 묻기만 하면 뭐하나? 써야지. 써야 작가지.
작가님, 하물며 또 다짐도 하신다. “일에 실패하지 말자고. 다시는 언어를 잃어버리지 말자고.”
얇은데 지겹게 읽었다.
고민
우: 아빠, 나 따위넷 좀 봐도 돼?
따위: ?
우: !
따위: 봐라. 음, 그게 따위넷은 원칙적으로 만인에게 공개 돼 있는 거고 너도 만인 가운데 1인이니 봐도 된다.
2003년 12월에 따위넷을 열었는데 이런 날이 왔다. 내 자식이 따위넷을 읽는다? 이건 좀 깊이 생각해 볼 문제다.
오스람
“1919년 독일의 대표적인 전구 제조사인 AEG, 지멘스, 아우어 사가 전구 생산을 위한 공동 기업 ‘오스람’을 발족했다. ‘오스람’이라는 이름은 필라멘트에 사용된 금속 오스뮴과 텅스텐의 뜻을 담고 있다. 이 두 금속은 융해점이 극히 높다. 그래서 필라멘트가 더 뜨거워지고, 그래서 더 환하게 빛나는 것이다.”
*** one more ***
“이것[합성수지]은 경멸조로 불릴 때는 ‘플라스틱’, 좋은 의미로는 ‘인조 섬유’, 가치 평가가 담기지 않고 전문가들에게 명명될 때는 ‘폴리머(중합체)’라고 불린다. 이 세 가지는 다 동일한 것을 뜻하며, 이것은 우리의 문명을 지탱하고 유지시키는 역할을 한다.” ibid, p.202
*** and one more ***
“시멘트란 본질적으로 구워진 석회석이기 때문이다.” ibid, p.1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