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를 사랑합니다, 를 보다가 옆에서 훌쩍거리는 고3대우 중1 딸에게, 지금 네가 느끼는 그런 감정을 파토스라고 하는 거야, 영어로는 pathos라고 쓰고 페이소스라고 읽기도 한단다, 라고 가르쳐 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떠오르는 나는 이미, 돌이킬 수 없게 화석화 된 꼰대인 것이다.
파라오 원정대
1.
형, 구슬 옥 자도 쓸모가 있다.
뭔데?
으응, 자리 좌 자와 합쳐서 옥좌.
2.
이야기의 힘은 강하다. 아이가 요즘 들어 부쩍 레고, 레고 하길래 왜 그런가 했더니 이야기 때문이다. 한동안은 레고에 닌자 이야기를 더한 닌자고에 몰입하더니 오늘 아침에는 이집트로 고고학 탐험씩이나 떠나고 계시다. (앞문장의 주어는 막내다. 요새는 주어가 없다고 시비 거는 분들이 믾아서 이렇게 괄호 열고 쉴드 친다.) 이름하여 파라오 퀘스트. 이 녀석아, 파라오 다 죽고 없거든!
옛날 어떤 시인은 화장실에 쭈그리고 앉아 신문 보는 더리한 모습을 시로 승화시켰다. 그러니 어쩌면 변기 위에 앉아 아이폰으로 한 모음, 한 자음, 정성스럽게, 눈물겨운 부정을 타이핑하고 있는 지금의 내 모습도 어쩌면 한 폭의 아름다운 시일지도 모른다.
고래
천명관 (지음), < <고래>>, 문학동네, 20??
천명관의 소설 < <고래>>에는 법칙이 많다. 아래 인용된 두 번째 문장, 즉 “그것은 관성의 법칙이었다”를 읽는 순간에 앞 부분 어딘가에 비슷한 문장이 있었다는 걸 인지했고, 세번 째 문장 “그것은 유전의 법칙이었다”를 읽는 순간부터 모종의 예감에 사로잡혀 해당 문장과 쪽수를 메모하기 시작했다. 다음은 그 결과물이다. 내가 가장 애정했던 법칙 앞에는 괄호로 추임새를 넣어 놓았다. 혹시 누락된 법칙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처음 메모한 상태에서 다시 하나하나 확인해 보지 않았으므로 쪽수가 틀릴 수도 있으며, 내가 읽은 책은 도서관에서 대출해온 것으로 판권 페이지가 뜯겨나가 몇 번째 판인지 모른다. 따라서 당신이 가지고 있는 책과는 쪽수가 다를 수도 있다. 구차하게 도망가기 바쁘다. 뭔 상관이람.
그것은 세상의 법칙이었다. p. 23
그것은 관성의 법칙이었다. p.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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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정 천국 감시 지옥
토요일 오전, 편안히 늦잠 주무시는 아내님 곁에 누워 있는데 방문을 열고 들어오던 막내가 보더니, 지금 안방에서는 미성년자 관람불가 신이 연출되고 있사오니 출입을 자제해 주시기 바랍니다, 라고 드립을 치고 나간다. 이어 그위의 형이란 놈이 들어 오더니, 뭐 이 정도 가지고 그러냐, 면서 그대로 몸을 날려 내 위에 올라 타서는 스타2 좀 해도 되느냐고 조용히 묻는다. 허락해 주지 않으면 애정행각은 이걸로 끝이라는 뜻일 터. 협상을 마친 녀석이 득의양양해져서 나가고 난 뒤, 이제 영화 좀 본격적으로 찍어볼까 하는데 이번에는 아내님이 일어나 나간다. 나가 버리신다.
그리하여 나는, 애들한테 컴퓨터도 빼앗기고 나는, 살찐, 낡은 소파에 처량하게 기대 앉아 아이폰으로 블로그에 이 따위 청승맞은 글이나 올리고 있는 것이다.
외로워라. 이 내 몸은 뉘와 함께 영화 찍을꼬.
@_@
1.
막내를 붙잡고 뭐 좀 가르쳐볼까 했더니 녀석이 급하고 중요한 일을 할 게 있다고 핑계를 댄다. 그럼 가서 너 할 거 해라, 했더니, 야호, 해방이다, 하면서 간다.
2.
최규석 단편집 <<공룡 둘리에 대한 슬픈 오마주>>를 아이들이 좋아한다. 의외다. 역시 아이들은 나와는 다른 세계에 살고 있는, 이해할 수 없는 족속들이다. 저것들은 내버려 두고 나는 내 인생이나 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