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위는 너무 어려워

1.
친구가 전화를 해서는 아 글쎄 이 자식이 언제 술 사냐 애들은 잘 크냐 요즘도 싸가지 없냐 이제 인간 좀 됐냐 하는 의전도 허례허식도 없이 대뜸 한다는 소리가 따위는 너무 어려워 하길래 갑자기 이게 무슨 새우가 고래 잡아 먹고 금붕어 한테 자랑하는 소린가 싶었지만 꾹 눌러 참고 너도 따위넷 보냐 했더니 쉽게 살아 하더라

2.
생각해 보면 호환보다 마마보다 무섭다는 음란 비디오 한 번 보는 게 우리들의 애절한 소원이었던 그때 그 빌어먹을 시절에는 ‘삼푸의 요정’이 있었다. 이제 그 꽃답던 삼푸의 요정은 나 늙어 ‘삼푸의 아줌마’가 되었으니 탓할 것은 세월이요 나오느니 한숨이요 흐르느니 눈물 뿐이다. 오호 통재라.

3.
어느 고등학교 어느 수업시간에 어느 선생(님 자는 정말이지 붙이고 싶지 않다)이 무슨 얘기 끝에
─ 니들 멘스 멘스 하는데 사전에 멘스라는 말은 없어 이 무식한 새끼들아 그건 말이야 멘스투레이숀을 줄여서 말하는 거야 알아 엠이엔에스티알유에이티아이오엔 떠들어도 뭘 좀 알고나 떠들어 그래가지고 뭐가 될래
라고 말(씀 하셨다고라고는 정말이지 쓰고 싶지않다)했다 (지껄였다고 말할 걸 그랬나)
내가 누군가 그런 건 꼭 찾아서 확인해야 직성이 풀리는 미련 곰탱이 같은 모/범/생/이 아니었던가
생각난 김에 책가방에서 에센스 영한사전을 꺼내서 뒤적이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 야 거기 맨 뒤에 고개 숙이고 있는 새끼 너 이리 나와
나오라고 해서 나갔다
─ 너 뭐했어
물어서 대답했다
─ 사전 찾았는데요 방금 말씀하신 멘스 그거…
친구들이 와르르 웃었다
─ 뭐 이 새끼야 지금이 영어시간이야 그런 건 이따가 쉬는 시간에 찾아보란 말이야 잠만 퍼자지 말고
그러더니 그 선생은 주먹을 쥐고 검지와 중지로 가뜩이나 품격있는 내 코를 움켜쥐고 좌삼삼 우삼삼 비틀다가 마지막에는 손목에 스냅을 주면서 가뜩이나 품격있는 내 코를 순간적으로 잡아 뽑았다
씨발,
이라고 그때는 왜 말하지 못했을까

사전에서 course를 찾을 일이 있었다 (그렇게 영어를 배우고도 이런 단어를 찾아봐야 하다니 어머니 왜 저를 낳으셨나요 왜 나는 조기유학 안 보내주셨나요) 차근차근 읽어내려가는데 이런 게 눈에 띄였다
─ 13.( ~s) 월경(menses).
그랬다. 그 선생 말은 거짓말이었다.

순간 옛날 생각이 났고 그때 잡힌 내 품격있는 코 끝이 다시 빨개졌다 그런데 나는 왜 그때 menses라는 단어가 정말 있는지 없는지는 확인해 보지 않았을까.

그 선생의 별명은 ‘해골’이었다. 본명은 잊었다.

4.
눈에 띄길래 무심코 넘겨본 <<아침형 인간>>의 표3에 이런 감동이 따따블로 몸서리치다가 쓰리고에 피박에 양광박 씌울 문장이, 아참 흔들었다, 적혀 있었다.

“아침잠은 인생에서 가장 큰 지출이다 ─ 카네기”

지금 나 잔다. 아니 지출한다. 그러니 나 깨우지 마셔.
아니 나 지금 자는 거 아니거덩. 지출하는 거거덩.
나는 야 자도 자도 졸린다. 하늘엔 조각구름 떠있고
지출은 즐겁다. 오 즐거운 인생 예에 ↗

오, 오, 오 자로 시작되는 말

오역, 오해, 오산, 오판, 오차, 오류, 오진, 오입, 오자, 오심, 오답 …
이 모든 말들이 다 어딘가가 뭔가가 어떻게든 잘 못되었다는 걸 의미한다.
그럼 오줌은 어떨까? 글쎄다.

그 많던 도깨비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비오는 숲속에 도깨비가 나왔다 아니다 그런게 아니다 사실은 비오는 숲속에 도깨비는 나오지 않았다 그렇지만 비오는 숲속에 도깨비가 나왔으면 얼마나 좋을까 좋을까 좋을까 난 참 바보처럼 아니다 지금 노래 부를 때가 아니다 아무튼지 비오는 숲속에 도깨비가 나온다면 내 그를 맞아 이 포도를 따먹으면 두 손은 함뿍 적셔도 아니다 지금 청포도 따먹을 때가 아니다 아무튼지 비오는 숲속에 도깨비가 나온다면 나와만 준다면 오 나는 그와 더불어 세월도 세상도 모르고 장난칠 수 있을 텐데 그러나 비오는 숲속에 도깨비는 나오지 않았다 그 많던 도깨비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이런 제길 이런게 또 어딨어

혼자말

공원을 산책하는 데 어디선가, 어떤, 모르는, 초로의, 아낙이 불시에 나타나며 여기 이런 게 있었어! 한다 돌아보니 주위에는 그이와 나밖에 없다 나는 그 소리가 나 들으라고 하는 소리인가 싶어 순간 의아하다 순간 모르셨어요? 하는 대꾸가 나도 모르게 저절로 삐져나올 뻔 했다 그러나 그건 그이의 혼자말이다 누구더러 들어달라는 소리가 아니라 그저 저도 모르게 저절로 삐져나온 소리일 뿐이다 그러나 혼자 있으면 혼자말도 안 하게 되는 게 사람이다 아낙은 벌써 저만치 가버렸는 데 나는 그이의 혼자말이 새삼 쓸쓸하다 나는 입술을 움직여 혼자말을 해본다 가령, 오늘 밤에도 혼자말이 바람에 스치운다, 라고 해본다 그러나 이건 영 혼자말 같지 않다 나는 다시 정직하게 혼자말을 한다 미친 놈

날림 비행기

airplane1
날림 비행기가 식탁 위의 하늘을 자랑스럽게 선회비행하고 있다.
보라. 프로펠라가 용맹하게 돌아가는 모습을. 알흠답지 않은가.

airplane2
비행을 마친 날림 비행기가 식탁위의 하늘에 자랑스럽게, 그리고 이게 중요한데 처량하게 매달려 있다.

<재료>
비행기 날개: 음료수 캔을 가위로 오리고 대충 접어서 씀.
비행기 몸통: 교보에서 파는 1,000원에 세 개 들이 형광 목걸이 포장용 플라스틱을 사용.
프로펠러: 교보에서 파는 500원 짜리 연필에서 뜯음.
모터와 스위치: 나우 장난감 중 어린이 치과 놀이 세트에서 뺌.
빨래 집게: 스위치를 ON 시킬 때 씀.
건전지 끼는 것: 지금은 쓰지 않는 소형 녹음기를 부수어서 씀.
전선: 아무거나 잘라서 씀.
나무 막대기: 비행기를 매달아 뱅뱅 돌아가게 하기 위해서 씀.
녹차 깡통: 비행기 반대 쪽에 무게의 평형을 맞추기 위해서 씀.
도미노 조각: 녹차 깡통에 넣어 무게를 조절하기 위해서 씀.
식탁 위 조명에 매달린 철선: 미술관에서 그림 벽에 걸 때 사용하는 것을 아쉬운 대로 씀.
찍찍이와 클립: 프로펠러는 모터축에 고정시키고, 비행기를 나무막대에 매다는 데 씀.
건전지: 디카에 넣었던 것을 빼서 씀.

<제작 방법>
대충 만듬.

<필요 공구>
이것 저것.

이상. 책임 돌팔이 엔지니어. 따위